3대 정책금융기관,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5년간 48조5천억 신규 약정

현재 수준의 금융지원이 이어지면 2030년 금융배출량이 지구 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감축 경로의 약 3배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작성 :
3대 정책금융기관,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5년간 48조5천억 신규 약정

한국수출입은행·한국산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국내 3대 정책금융기관이 최근 5년간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약정한 금융 규모가 48조500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재 수준의 금융지원이 지속될 경우 2030년 금융배출량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감축 경로의 약 3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기후솔루션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20일 ‘탄소중립의 사각지대: 한국 공적금융이 해외에 야기한 금융배출량’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 같은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탄소회계금융연합(PCAF)이 제시한 국제 표준 방법론을 적용해 금융기관에 귀속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인 ‘금융배출량’을 산정했다. 금융계약 종료 이후에도 설비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파악하기 위해 전체 가동 수명 동안의 예상 배출량인 ‘고정배출량’도 함께 추산했다.

5년간 신규 약정 48조5000억 원, 설비 배출량 29억 톤 추산

보고서에 따르면 세 기관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새롭게 약정한 화석연료 사업은 총 347건, 48조5000억 원 규모로 나타났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중에도 연간 신규 약정액은 2021년 5조1000억 원에서 2024년 13조5000억 원으로 약 2.7배로 늘었다.

연구진이 중복 사업과 재금융 등을 제외한 313건을 분석한 결과, 해당 설비가 예상 수명 동안 배출할 온실가스는 29억3460만 톤(CO₂e·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추산됐다. 기후위기 취약국인 네팔이 지난 250년간 화석연료·산업 공정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 누적량의 12~13배에 달하는 규모다.

설비의 연간 배출량은 2029년 9430만 톤으로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한국 정부가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해 해외에서 확보하려는 국제감축 목표량인 연간 2980만~3400만 톤의 약 3배다. 연구진은 한국 정부가 해외 감축사업에서 확보한 실적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포함하면서, 동시에 공적금융으로 해외 화석연료 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분석 대상 313건 가운데 294건(94%)은 운반선·터미널·파이프라인 등 화석연료 운송 인프라였으며, 운반선만 284척에 달했다. 이러한 운송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화석연료 공급망의 전체 가동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화석연료 운반선 284척이 실어 나를 화석연료가 생산·연소될 때 발생할 온실가스(운송 화물 내재 배출량)는 총 165억2390만 톤으로 추산됐다. 이는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남은 전 지구 탄소예산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행 금융지원 지속하면 2030년 금융배출량, 1.5도 경로의 3배

보고서는 향후 금융지원에 따른 배출량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분석했다. 현재 수준의 해외 화석연료 신규 금융 약정을 지속하는 경우(현행 유지), 2027년부터 중단하는 경우(즉각 중단), 2031년부터 중단하는 경우(지연 전환)다.

분석 결과 금융배출량은 2024년 연간 433만 톤에서 현행 유지 시 2030년 612만 톤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50 넷제로 시나리오(NZE)’를 바탕으로 산정한 2030년 1.5도 경로인 연간 203만 톤의 약 3배다.

반면 2027년부터 신규 약정을 중단하면 기존 금융계약의 상환에 따라 금융배출량이 감소해 2040년부터 1.5도 경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단 시점이 2031년으로 늦춰지면 해당 경로에 도달하는 시점도 2050년으로 늦어진다.

다만 금융배출량 감소가 실제 설비의 배출량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금융계약이 끝나더라도 이미 승인된 사업은 계속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7년 신규 약정 중단 시나리오에서도 기존 설비의 연간 고정배출량은 2030년 1억2390만 톤으로, 2024년의 약 4.5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2040년에는 1.5도 경로에 부합하기 위해 해당 배출량의 약 98%를 감축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신규 약정 중단 시점을 2027년에서 2031년으로 4년 늦추면 2026년부터 2050년까지 누적 고정배출량은 14억2040만 톤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진은 신규 금융지원 중단뿐 아니라 기존 설비의 조기 폐쇄와 가동률 조정 등 적극적인 배출량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금융기관 3곳, 민간 기후공시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

정책금융기관의 금융배출량 공시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금융위원회는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기후공시를 의무화하고, 2029년에는 5조 원 이상 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분석한 세 정책금융기관은 해당 의무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세 기관은 2021년 금융위원회와 함께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CFD)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으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금융배출량을 공시한 곳은 없다.

해외에서는 공적금융기관의 화석연료 지원을 제한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영국은 2021년부터 해외 화석연료 에너지 부문에 대한 공적 지원을 원칙적으로 중단했으며, 유럽투자은행(EIB)도 같은 해 말부터 배출 저감장치가 없는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을 종료했다. EIB는 다배출 기업에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전환계획의 수립과 공개를 요구하고, 이를 금융계약 조건에 반영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보고서 저자인 기후솔루션 양예빈 연구원은 “한국은 2021년 석탄금융 중단 선언 이후 오히려 화석연료 금융 규모가 2.7배 늘었다”며 “정책금융기관을 대상으로 금융배출량 공시 의무화, 신규 화석연료 금융지원 중단, 기존 사업의 단계적 정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저자인 강윤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연구원은 “공시는 전환의 출발점일 뿐”이라며 “금융배출량을 기준으로 1.5도 감축목표와 전환계획을 세우고, 같은 잣대를 차주에게도 금융 조건으로 요구할 때 정책금융기관이 전환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장유정 기자 chloe@timekorea.co.kr

이 기사 공유하기:

장유정

장유정 에디터

기사 더보기

OTHER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