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4사 재활용 선언, 닻 올리자마자 좌초했다
환경을 위한 약속은 발표하는 것보다 지키는 일이 어렵다. 5년 전의 약속은 모습을 감췄지만, 2030년이라는 시한은 여전히 남아 있다.
화장품 4사 재활용 선언, 닻 올리자마자 좌초했다
환경을 위한 약속은 발표하는 것보다 지키는 일이 어렵다. 5년 전의 약속은 모습을 감췄지만, 2030년이라는 시한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장유정 에디터

화장품 대기업 4곳과 대한화장품협회가 2021년 선언한 ‘2030 화장품 플라스틱 이니셔티브’가 출발하자마자 좌초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간 목표로 지난해까지 ‘재활용 어려움’ 판정을 받은 용기의 10%를 기업에서 직접 거둬들이기로 했지만, 무산됐다. 그새 자율 과제는 K뷰티 확장을 위협하는 규제가 됐다. 유럽연합(EU)은 이르면 2030년부터 재활용 기준을 못 맞춘 포장재는 시장에 들이지 않겠다고 지난 8월 예고했다.
이니셔티브에 참여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로레알코리아 등 4사는 “협회 측에 문의해 달라”며 이후 이행 상황에 대한 답을 피했다. 협회는 “이니셔티브 선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를 개별 이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본지에 밝혔다.
앞서 2021년 1월 협회는 로레알코리아, 아모레퍼시픽, 애경산업, LG생활건강과 함께 2030년까지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를 100% 제거하는 등 4대 목표를 내건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중간 목표로는 2025년까지 재활용이 어려운 용기 중 기업에서 자체 회수하는 비율을 10%로 높이겠다고 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려 성과를 점검하고, 매년 보고서를 내겠다는 계획도 냈다. 그런데 화장품 4사와 협회는 별다른 이유도 내놓지 않고 선언 직후 약속을 번복한 것이다.
이니셔티브가 왜 출발하자마자 좌초했는지는 선언 직전의 사정에서 드러난다. 당시 과정을 지켜본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당시 화장품 업계의 주요 현안이었다”며 “업계가 개선 노력을 할 테니 표시는 유예하거나 면제해 달라는 취지가 컸다”고 했다.
환경부는 2019년 12월 포장재 등급평가 제도를 시행했다. 포장재를 재활용하기 쉬운 정도에 따라 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 4개 등급으로 나누는 제도다. ‘어려움’ 등급을 받으면 2021년 3월부터 제품 겉면에 그 사실을 표시해야 했다. 기존 재활용 체계로 처리하기 어려운 포장재를 소비자에게 알리고, 그 부담을 만든 기업에 지우려는 취지였다. 플라스틱을 덜 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줄이고 남은 플라스틱이라도 재활용이 안 되면 결국 쓰레기로 남는다.
화장품 용기는 이 제도의 주된 표적이었다. 여러 재질을 함께 쓰거나 구조가 복잡한 데다 내용물까지 남아 있어 대부분 재활용이 어렵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화장품 용기의 90% 이상이 ‘어려움’ 판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는 대부분 제품에 이 표시가 붙으면 브랜드 이미지가 떨어지고 수출 경쟁력도 약해진다고 반발했다. 용기를 바꾸는 일도 쉽지 않았다.
AI 기반 재활용 기업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는 “화장품 용기는 기능뿐 아니라 마케팅 수단으로도 쓰이다 보니 재활용 친화적 설계가 뒤로 밀리기 쉽다”고 설명했다.
환경부가 내놓은 절충안이 ‘자체 회수 10%’였다. 기업에서 ‘어려움’ 등급 용기의 10% 이상을 직접 거둬들이면 표시를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당시 “용기의 재질 구조를 바꾸는 게 제도의 목표이기 때문에 역회수와 재생원료 사용 등을 통해 화장품 업체들이 용기의 재질을 재활용에 용이하게 개선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표시 면제라는 인센티브로 기업들을 유도하겠단 구상이었다.
환경단체들은 곧장 반발했다. 녹색연합 등 4개 단체는 회수율 목표가 너무 낮다고 봤다. 나머지 90%는 여전히 재활용되지 않는데 표시만 빼 주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화장품 업계가 재활용 안 되는 용기를 생산하면서 표시만 하지 않겠다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니셔티브는 이런 반발 속에 2021년 1월 나왔다. 그리고 한 달 만에 판이 바뀌었다. 환경부는 그해 2월, 행정예고를 냈다. 자체 회수 체계를 갖춰 2025년 기준 회수율 30%(2030년 70%)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장관이 인정한 기업에만 표시를 면제한다는 내용이다. 업계와 약속한 ‘2025년 10%’의 세 배였다. 인센티브의 허들이 높아졌고, 결국 3월부터 화장품 용기에도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붙었다.
홍 소장은 여기에 참여 기업 간 온도차가 겹쳤다고 봤다. 그는 “국내 업계 전체가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 속에서 모인 상황은 아니었다”며 “가뜩이나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표시 예외라는 혜택까지 무산되면서 이니셔티브를 끌고 갈 동력이 상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화된 기준을 통과한 곳은 드물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제도 시행 뒤 역회수 계획을 낸 업체는 3곳이었고, 승인을 받은 곳은 1곳이었다. 이 업체는 2021년 하반기 연간 의무량의 4.7%를 회수했다. 2022년에는 3분기까지 한 건도 회수하지 못했다.
규제가 된 과제
기업들은 각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포장재 관련 성과를 공개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해 공병 119톤을 수거했다고 밝혔다. 여기서의 공병은 ‘재활용 어려움’ 등급에 한정하지 않는다. 애경산업은 플라스틱 사용량 317톤을 절감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숫자들은 2025년까지 달성하기로 했던 약속과는 무관하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명예석좌교수는 “성과를 판단하려면 회수량 뿐만 아니라 배출한 플라스틱 포장재 규모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가 자율로 풀겠다던 과제는 이제 K뷰티에 적잖은 허들이 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시행된 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의 원칙은 하나다. “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포장재는 재활용 가능해야 한다.”
PPWR에 따르면, 이르면 2030년부터 재활용성 평가에서 70%에 못 미치는 포장재는 EU에서 팔 수 없다. 의약품·의료기기 포장 등은 예외지만, 화장품 포장재는 예외 목록에 없다. 공교롭게도 이니셔티브가 ‘재활용 어려운 포장재 100% 제거’의 시한으로 잡은 해도 2030년이다.
장유정 기자 chlo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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