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옆 길 막고 50m 식탁 차린 남자
유럽에 한국 식품을 유통해 온 김직 대표는 “김치는 알아도 먹을 줄 모르는” 현지인에게 한식 경험부터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만찬을 연 그 거리에 한식 매장을 열었다.
루브르 옆 길 막고 50m 식탁 차린 남자
유럽에 한국 식품을 유통해 온 김직 대표는 “김치는 알아도 먹을 줄 모르는” 현지인에게 한식 경험부터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만찬을 연 그 거리에 한식 매장을 열었다.

문상덕 에디터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저녁, 프랑스 파리 퐁뇌프 거리의 약 120m 구간에서 차량 통행이 막혔다. 센 강의 퐁뇌프 다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길로, 루브르 박물관 바로 동쪽에 있다. 차로 한가운데에는 길이 50m의 식탁이 놓였다. 한국과 프랑스 각계 인사 120명 안팎이 이 식탁에 앉았다. 한국계 입양인으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 전 장관, 1989년부터 파리에서 숯으로 작업해 온 이배 작가 등이 참석했다. 미식 평가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한국 의장인 최정윤 난로학원 의장도 자리했다. 김직 루에랑 대표는 식탁 한쪽 끝에 세운 리프트에 올라 확성기로 인사말을 전했다.
루에랑은 한국 식품을 유럽에 유통하는 회사다. 이날 만찬은 한불 수교 140년과 이 회사의 외식 브랜드 ‘코리안 스트리트 마켓(KSM)’ 파리 매장 개점을 함께 기념해 열었다.

한국에서 퐁뇌프는 프랑스 감독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 《퐁뇌프의 연인들》(1991)로 잘 알려져 있다. 극중에서 공사로 통행이 끊긴 이 다리는 거리의 두 연인이 사는 집이 된다. 그러나 제작진은 영화의 대부분을 이 다리를 본뜬 세트에서 찍었다. 시 당국에 촬영 협조를 요청했지만, 시에선 통행 문제를 들어 거절했다.
지금 이 다리 북쪽변은 영화가 나온 당시보다 한층 북적인다. 유서 깊은 백화점 라 사마리텐은 2005년 안전 문제로 문을 닫았다가, LVMH가 건물을 고쳐 2021년 다시 열었다. 같은 건물에는 LVMH의 호텔 슈발 블랑이 들어섰다. 퐁뇌프 거리 2번지에는 루이비통 본사가 있다. 루에랑의 김직 대표는 이 일대를 “LVMH 타운”이라고 불렀다. 퐁뇌프 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지하철과 광역철도 여러 노선이 만나는 샤틀레-레알역이 나온다. 그런 만큼 퐁뇌프 다리에서 이어지는 이 거리는 항상 북적인다.
김 대표는 이 거리를 다섯 시간 빌리는 인허가가 행사의 “가장 큰 허들”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 거리를 ‘한국 거리’로 꾸며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겠다며 시 당국을 설득했다. 그렇게 석 달 만에 행사를 열었다. 이날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 시장과 권혁운 주프랑스 한국대사가 식사 전 만찬장에 들러 인사를 건넸다.
그는 “시 당국을 많이 괴롭혔는데, 행사 당일 시장님이 오셔서 ‘끈기 있게 해냈다’며 덕담을 건넸다”고 돌이켰다.


당일 요리는 KSM의 총괄 셰프인 이영훈 셰프가 냈다. 이 셰프는 프랑스에서 미쉐린 스타를 받은 첫 한국인 셰프로, 리옹의 ‘르 파스 탕’에서 10년간 별을 지켰다.
첫 요리로는 팬에 구운 푸아그라와 감자 뇨키가 말린 멸치 국물에 담겨 나왔다. 메인으로는 돼지갈비 쌈과 김치볶음밥이 나왔다. 와인은 보르도와 쥐라산을 냈고, 키소주(KHEE Soju)도 곁들였다.
메인 다음에는 ‘시크릿 메뉴’로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이 나왔다. 직원들이 큰 바구니에 치킨을 담아 식탁을 돌며 하나씩 나눠줬다. 소스는 네 가지였다. 양념·간장 소스는 한국에서 가져왔고, 대파 소스와 어니언 페퍼 소스는 이 셰프가 만들었다. 식탁에는 젓가락도 놓였다. 그래도 손님 대부분은 포크와 나이프로 치킨을 먹었다. 김 대표는 “손님 반응이 가장 좋았던 건 치킨”이라고 했다. 이날 만찬은 밤 11시를 넘겨 끝났다.
행사를 연 루에랑은 식당이 아니라 식품 유통 회사다. 2020년부터 한국 식품을 유럽 대형마트에 공급해 왔다. 프랑스 까르푸에 한국 식품 전용 매대를 처음 만들었고, 지금은 유럽 20여 개국에 100여 종을 공급한다. 2023년 매출은 300억 원을 넘었다. KSM의 파리 매장은 만찬을 연 이 거리에 행사 보름여 만인 10월 7일(현지시간) 문을 열었다.
김치는 아는데, 먹는 법을 모른다

김 대표는 프랑스의 시골 슈퍼마켓 매대에도 한국 식품이 한두 개씩은 진열돼 있다고 했다. 다만 들여놓은 만큼 팔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현지에서 한국 식품을 먹어본 경험이 많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했다.
그는 김치를 예로 들었다. 직접 납품처를 찾아 설문해 보니 김치를 다른 음식에 곁들이지 않고 애피타이저나 간식처럼 김치만 먹는 사람이 많았다. 김 대표는 “김치가 한국 음식이라는 건 열에 여덟은 안다”며 “그런데 어떻게 먹는지 아는 사람은 열에 둘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한식 경험은 한식당에서 가장 잘 제공할 수 있다고 그는 본다. 식당에서 먹어본 사람이 마트에서도 같은 음식을 찾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한식당 수는 유럽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적다. 그는 “파리의 한식당은 많아도 400곳”이라며 “그마저 파리를 벗어나면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파리에서 처음 낸 한식 브랜드는 ‘메종 드 코레(한국의 집)’였다. 이후 한국의 길거리 음식을 콘셉트로 한 식품 브랜드 ‘코리안 스트리트’와 레스토랑 브랜드 ‘코리안 스트리트 마켓(KSM)’을 새로 냈다. 김 대표는 “우리가 사랑했던 서울의 기억과 맛, 태도를 세계 여러 도시에 맞게 옮기는 것이 이 브랜드의 목표라고 말했다.
루에랑의 뿌리는 만두 공장이다. 부친 김호수 대표가 2006년 전북 남원에 세운 지엠에프는 냉동만두를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납품해 왔다. 수출에도 일찍 나섰지만 고기만두는 수출 길이 막혀 있었다. 김 대표는 “육가공품은 무역 장벽 때문에 수출할 수 없어, 부친이 초창기에 채소만두와 비건 만두를 개발했다”고 했다. 해외 한인을 상대로 시작한 수출은 영국 아스다·모리슨스 같은 현지 대형마트로 넓어졌다. 지엠에프는 냉동만두 수출 국내 1위 업체로 꼽힌다.
건축을 전공한 김 대표는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다 2011년 지엠에프에 들어왔다. 부친이 허리 디스크로 출근하지 못하던 때였다. 잠시 돕겠다던 그는 해외사업부를 맡아 수출 거래처를 넓혔다. 지금도 지엠에프 상무다.
그는 “부친이 해온 것에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야 제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지 않겠느냐는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제조업은 생산량만큼 큰다. 회사를 키우려면 공장을 더 지어야 한다. 그가 찾은 다른 길은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유통하는 사업이었다. 브랜드를 세울 곳으로는 뉴욕·런던·파리를 놓고 고민하다 파리를 택했다. 그는 “브랜드에는 약간의 판타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가장 잘하는 곳이 파리”라고 했다.
잠봉뵈르에 고추장 버터


김 대표는 KSM 파리를 “프리미엄 패스트푸드”라고 정의했다. 점심에는 냉장 진열대에서 음식을 골라 들고 가는 손님을 받는다. 메뉴는 프랑스인에게 익숙한 점심에서 출발했다. 햄과 버터를 넣은 바게트 샌드위치인 잠봉뵈르에 고추장 버터를 바르는 식이다. 비빔밥은 밥 대신 퀴노아 같은 곡물을 넣은 ‘비빔볼’로 바꿨다. 김 대표는 “익숙한데 조금 다르다고 느낄 정도면 된다”고 했다.
매장의 다른 한쪽에선 커피와 건강음료를 판다. 김 대표는 이 커피를 “한국식 커피”라고 불렀다. 그는 “한국은 이제 커피 문화에서도 일가견이 있다”고 했다.
저녁에는 퇴근길 손님을 겨냥해 치킨과 맥주를 낸다. 치킨을 어떻게 낼진 아직 고민이다. 김 대표는 “여기 사람들은 바게트를 손으로 뜯어 길에서 먹지만, 뜨거운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는 건 익숙지 않아 한다”며 “치킨에 손잡이 같은 걸 붙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문상덕 기자 mosadu@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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