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모자란 초강대국, 美국방비의 역설
111년 전 대영제국도 포탄 부족에 무너졌다. 지금 미국이 요격탄 재고를 회복하자면 3년 넘게 걸릴 공산이 크다. 그때가 되면 전장이 바뀔 수도 있다.
총알 모자란 초강대국, 美국방비의 역설
111년 전 대영제국도 포탄 부족에 무너졌다. 지금 미국이 요격탄 재고를 회복하자면 3년 넘게 걸릴 공산이 크다. 그때가 되면 전장이 바뀔 수도 있다.

문상덕 에디터

세계에서 국방비를 가장 많이 쓰는 미국이 탄약 부족에 직면했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장거리 정밀타격 미사일과 방공 요격탄을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다른 지역의 분쟁에 대응할 여력까지 줄어들고 있다. 냉전 이후 축소된 방위산업 생산 기반, 탄약보다 전투기·함정 구매를 앞세운 예산 배분, 잇따른 해외 군사작전이 겹친 결과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8월 미국이 이란과 5개월간 전쟁을 치르면서 육군의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와 정밀타격미사일(PrSM) 재고를 “거의 모두”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의 주력 순항미사일인 토마호크도 전 세계 비축량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물량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로이터는 토마호크 소진 규모를 독립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방공망도 부담을 받고 있다. 로이터가 인용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추산에 따르면, 미국은 2~7월 패트리어트 요격탄 재고의 약 65%를 사용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요격탄 재고도 전쟁 시작 때보다 최소 38% 줄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중·고성능 탄약을 “사실상 무제한”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문이 인용한 미 국방부 감찰 보고서는 이란전에서 “전략적 비축량 부족”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군 수뇌부의 재고 경고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재개하지 않은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란과의 전쟁만으로 이 정도라면 중국과의 전쟁은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CSIS는 대만 분쟁을 가정한 여러 모의전쟁에서 미군이 일부 장거리 미사일을 전쟁 첫 주 안에 소진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방공망 때문에 미군 항공기와 함정이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운 만큼, 장거리 무기가 부족하면 전투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탄약이다. 막대한 국방비가 곧 충분한 전시 비축량과 생산 능력을 뜻하지는 않는다.
111년 전 영국도 포탄 부족에 무너졌다
1915년 5월 9일, 프랑스 오베르 능선에서 독일군 진지를 공격한 영국군은 하루 만에 1만1000명 넘는 사상·실종자를 냈다. 공격을 뒷받침할 포탄이 부족했다. 특히 철조망과 참호를 파괴하는 데 필요한 고폭탄이 모자랐다. 공격 전 포격에 사용한 약 8만 발 가운데 고폭탄은 8%에 불과했다. 포격이 끝났을 때 독일군의 철조망과 방어진지는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패전은 영국의 ‘1915년 포탄 위기’로 이어졌다. 영국 정부는 군수부를 신설해 군수품 생산과 조달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그러나 정치적 위기는 이어졌고,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총리는 이듬해 말 물러났다.
미 해병대 예비역 대령인 마크 캔시언 CSIS 선임고문은 “거의 모든 전쟁에서 평시 방위산업으로는 전쟁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온다”며 “전쟁 전에 생산을 늘리고 있었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넘게 지났다. 전투기와 핵무기, 위성통신, 드론, 인공지능(AI)이 등장했다. 영국 제국이 쇠퇴한 뒤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올라섰고, 냉전의 시작과 종식, 중동의 잇따른 전쟁을 거쳤다. 그러나 전쟁을 오래 치르려면 충분한 탄약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방비 지출 상위 7개국을 합친 것보다 많은 돈을 국방에 쓰고 있다. 그런데도 초강대국이 아닌 이란과의 전쟁에서 핵심 탄약 부족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군대에 왜 싸울 탄약이 부족한 것일까.
냉전 끝나자 줄어든 국방예산
미국의 탄약 부족을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되는 사건은 1993년 미 국방부에서 열린 한 만찬이다. 당시 윌리엄 페리 국방부 부장관은 방산업체 경영진을 불러 냉전 시절의 국방예산을 더는 유지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상당수 업체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 모임은 훗날 ‘최후의 만찬’으로 불렸다.
예측은 현실이 됐다. 1988~1997년 미국 국방예산은 약 30% 줄었다. 주요 방산업체 십여 곳은 합병 등을 거쳐 네 곳으로 통합됐다. 군은 냉전 때 쌓아둔 무기 재고를 활용했고, 예산 삭감은 신규 무기 구매에 집중됐다.
돈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10년 동안 미국 국방비는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연간 1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돈을 어디에 배분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작전비와 장비 유지·보수비, 군인 급여와 퇴직급여 등 인건비가 국방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나머지 예산에서도 탄약 비축보다는 고가의 전투기와 함정 도입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방부 획득·유지 담당 차관을 지낸 윌리엄 라플랜트는 “오랫동안 국방예산을 내부적으로 조정할 때 전체 지출 목표를 맞추기 위해 탄약 예산을 깎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른 전쟁의 성격도 이런 결정을 뒷받침했다. 반군을 상대하는 전쟁에는 국가의 정규군과 싸울 때만큼 많은 미사일과 포탄, 방공 요격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러전으로 수요 폭증
상황을 바꾼 것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었다. 유럽에서 대규모 포병전이 다시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도시를 겨냥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해 방공 요격탄도 대량으로 필요해졌다.
탄약 수요는 급증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축소된 미국의 방위산업 기반과 제조 역량을 단기간에 되살리기는 어려웠다. 포탄뿐 아니라 첨단 미사일과 요격탄 생산을 늘리는 작업도 더디게 진행됐다.
수요가 늘면 공급도 늘어난다는 시장 원리가 방위산업에서는 곧바로 작동하지 않았다. 방산업체는 전쟁이 1~2년 안에 끝나 주문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을 증설하고 생산설비에 큰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일부 업체에는 공급을 제한한 채 높은 수요와 이익률을 유지하는 편이 유리할 수도 있다. 그 결과 납세자는 비싼 무기 값을 부담하면서도, 군은 전장에서 필요한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생산을 늘리기로 결정해도 시간이 필요하다. CSIS에 따르면 토마호크와 사드 요격탄 등 일부 핵심 탄약은 생산에 약 3년이 걸린다. 공장 증설을 위한 설비투자에도 18~24개월이 필요할 수 있다. 돈을 추가로 투입한다고 비축고가 곧바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탓에 이란전에서 탄약이 부족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전쟁에 필요한 무기는 상당 부분 다르다. 우크라이나의 지상전에 보낸 무기 대부분은 이란을 상대로 한 공중·해상 작전에서 쓰임새가 제한적이다.
패트리엇 같은 고성능 방공 요격탄은 예외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모두에서 수요가 높다. 패트리엇의 세계적인 공급 부족은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 우크라이나 도시의 방어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두 전쟁은 방어 비용의 문제도 드러냈다. 값싼 순항미사일과 드론을 막기 위해 수백만 달러짜리 요격탄을 발사하면 방어하는 쪽의 부담이 커진다. 테드 리우 미 연방 하원의원은 이를 “날아오는 원반에 페라리를 집어 던지는 격”이라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미 국방부와 실리콘밸리 기반 신생 방산업체들은 저렴하고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무기, 부품과 기능을 쉽게 바꿀 수 있는 무기에 주목하고 있다. 각각 ‘소모를 감수할 수 있는(attritable)’ 체계와 ‘모듈형(modular)’ 체계로 불린다.
대만 방어 구상도 이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AI로 제어하는 저가 드론을 대량 투입해 중국군의 침공을 막는다는 계획이다. 대만해협을 중국군이 통과하기 어려운 ‘지옥도’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헬스케이프’ 구상이다.
그러나 전장의 기술과 전술이 빠르게 바뀌면서 이런 계획도 곧 낡은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매켄지 이글런 선임연구원은 “현대전에서는 한쪽의 새로운 전술에 상대가 대응하는 주기가 놀라울 정도로 짧다”며 “우리는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체계 전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탄약을 더 만들 것인가, 개입을 줄일 것인가
미 국방부는 무기 도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구매 권한을 집중하고 행정 절차를 줄이는 개혁안을 내놨다.
의회에서는 반발도 나왔다. 국방부에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될 수 있고, 업체들이 납기를 앞당기는 데만 치중해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기존 조달 체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찾기 어렵다. 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군과 의회, 방산업체가 얽힌 체계를 실제로 바꾸는 작업은 또 다른 난제다.
미 국방부와 방위산업 개혁의 어려움은 흔히 ‘항공모함의 방향을 돌리는 일’에 비유된다. 거대한 조직을 새로운 전쟁 환경에 맞춰 바꾸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올해 미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호의 항로는 이 비유를 현실로 보여줬다. 포드호는 지중해에서 베네수엘라로 향했다가 다시 중동으로 이동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여러 분쟁에 잇따라 대응하면서 배치 지역도 바뀌었다.
원문에 따르면 포드호는 기록적인 326일간 해상 임무를 수행했다. 그동안 식량 부족과 오수 누출, 자칫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었던 화재까지 겪었다.
항모 운용과 탄약 비축 문제는 세계 최강의 군대에도 자원의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치르는 전쟁이 늘수록 함정과 병력, 탄약에 걸리는 부담도 커진다.
미 국방부는 핵심 탄약 14종의 생산을 우선순위에 올렸다. 그러나 탄약은 여전히 다른 대형 사업과 예산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망 ‘골든돔’, 우주 무기, 핵전력 현대화 등이 대표적이다.
원문이 인용한 추산에 따르면 골든돔에는 20년간 1조 2000억 달러가 들 수 있다. 국방예산을 1조 5000억 달러로 늘리는 방안이 추진되더라도, 이런 사업을 모두 진행하면서 현재의 전쟁을 치르고 더 큰 전쟁까지 준비하기는 쉽지 않다.
탄약 위기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도 있다. 문제의 핵심이 전쟁 준비 부족이 아니라 너무 많은 전쟁에 개입하는 데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해외 군사개입 축소를 주장하는 좌우 진영 인사들은 탄약 부족을 계기로 대외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이 지금처럼 여러 무력충돌에 관여해야 하는지, 중국과의 강대국 전쟁에서 동맹 방어 약속을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막대한 예산으로 많은 무기를 살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을 지키고, 어떤 전쟁에 개입하며, 어디에 자원을 먼저 투입할지 선택하는 문제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글 조슈아 키팅(Joshua Keating) 외교·안보 분야 저널리스트. 저서로 『보이지 않는 국가들』이 있다.
한국어판 편집 문상덕 기자 mosadu@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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