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중독성 성격이 아니어서 괜찮다.”
술자리에서, 도박이나 쇼핑을 두고 흔히 나오는 말이다. 반대로 술이나 약물, 도박에 빠진 사람을 두고 “원래 중독성 성격”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통념부터 경계한다. 술·약물·도박·쇼핑 등에 유난히 쉽게 빠지게 하는 단 하나의 성격 유형이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중독은 유전, 뇌와 신체의 반응, 정신건강, 생활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생긴다.
미국 노트르담대에서 중독 문제를 연구하는 라이언 카펜터 심리학과 교수는 “특정 성격 유형이 중독에 취약하다는 생각은 오래됐지만, 과학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중독성 성격(addictive personality)’은 의학적 진단명이 아니다. 일부 성격 특성이 중독 위험과 연관될 수는 있지만, 이를 하나의 성격 유형으로 묶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것이다. 미국 노스웰 헬스 주커 힐사이드 병원 중독정신의학과장인 마나사 하니 박사는 “중독성 성격이라는 꼬리표가 말하는 것보다 실제 사정은 훨씬 복잡하다”고 했다.
충동성도 가족력도, 위험 요인일 뿐
중독 위험과 관련이 보고된 성격 특성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충동성이다. 여러 중독 질환에서 충동성은 공통 위험 요인으로 거론된다. 새로운 자극이나 위험을 찾는 성향도 중독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정서적 불안정성도 관련이 있다. 신경증 성향이 높거나 불안·우울을 자주 겪는 사람은 술이나 약물, 특정 행동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도박처럼 행동 자체가 중독 대상이 되는 경우에는 강박적 성향도 위험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어디까지나 위험 요인이다. 충동적이라고 모두 중독에 빠지는 것은 아니고, 신중한 성격이라고 안전한 것도 아니다. “나는 원래 절제가 되는 사람”이라는 자기 판단이 오히려 경고 신호를 놓치게 할 수 있다.
중독은 성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술이나 약물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판단력과 감정 조절, 대인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중독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도 하는데, 바뀐 모습을 보고 “원래 그런 성격이었다”고 거꾸로 해석하기 쉽다.
가족력도 중요한 변수다. 부모나 형제자매 가운데 알코올·약물·도박 문제를 겪은 사람이 있다면 개인의 위험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가족력이 곧 운명을 뜻하지는 않는다.
중독을 결정하는 단일 유전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족 중 중독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위험을 더 일찍 점검할 이유는 된다.
안정적인 주거와 경제적 기반, 삶의 목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중독의 보호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런 조건도 완전한 방패는 아니다. 직장이 안정돼 있고 가족·친구가 많아도 중독은 생길 수 있다.
중독은 대개 조금씩 시작된다
중독의 위험은 갑자기 드러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술 한 잔, 소액의 베팅, 밤늦은 쇼핑처럼 보일 수 있다. 문제는 그 행동이 점차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고 통제 범위를 벗어날 때다.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이어진다면 주의해야 한다.
▶줄이거나 끊으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술·약물·도박·쇼핑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직장·학교·가정에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건강·돈·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행동을 계속한다.
▶특정 물질이나 행동을 향한 강한 갈망이 반복된다.
▶사용량이나 빈도가 갈수록 늘어난다.
카펜터 교수는 “이것들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삶의 여러 영역을 잠식할수록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알코올의 경우 성격과 별개로 개인별 신체 반응도 위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술을 마셨을 때 각성감이나 기분 좋은 효과는 크게 느끼지만 졸림·피로 같은 진정 효과는 덜 느끼는 사람은 음주 문제가 생길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 같은 양의 술을 마신다고 해서 모두 같은 위험을 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낙인보다 조기 개입을
‘중독성 성격’이라는 말은 양쪽 모두에 해롭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으면 위험 신호를 무시할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을 중독되기 쉬운 사람으로 낙인찍으면, 도움을 요청하거나 치료를 받는 일을 미루게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격 진단이 아니라 현재의 변화다. 술·약물·도박·쇼핑·게임이 시간과 돈, 건강과 관계, 일상생활을 잠식하기 시작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불안·우울·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ADHD, 만성 통증 등 동반 질환이 있다면 함께 치료해야 한다.
중독은 의지박약의 증거도, 특정한 사람만의 문제도 아니다. 중독을 예고하는 단일한 성격 유형은 없지만, 위험 신호는 있다. 중독은 조기에 알아차리고 치료할수록 회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글 Stacey Colino
한국어판 편집 문상덕 기자 mosadu@tim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