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 속 ‘들’이 남긴 질문들, <암살자(들)> [아시아의 장면들]
1974년 영부인 저격 사건을 재구성한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 실제 사건에 남은 의문과 영화가 새롭게 만들어낸 가설을 짚으며, 역사적 각색의 경계와 관객의 비판적 해석을 묻는다.
괄호 속 ‘들’이 남긴 질문들, <암살자(들)> [아시아의 장면들]
1974년 영부인 저격 사건을 재구성한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 실제 사건에 남은 의문과 영화가 새롭게 만들어낸 가설을 짚으며, 역사적 각색의 경계와 관객의 비판적 해석을 묻는다.
조예은 에디터
![괄호 속 ‘들’이 남긴 질문들, <암살자(들)> [아시아의 장면들]](/_next/image?url=https%3A%2F%2Ftime-korea-images-prod.s3.ap-northeast-2.amazonaws.com%2Farticles%2F304%2F352209d494c549eb86257fc8e06d85d2.jpg&w=3840&q=75)
아시아의 장면들
아시아 영화를 통해 지금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아시아 영화가 다루는 불안과 욕망은, 지금 우리가 매일 겪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TIME 한국판의 조예은 문화·예술 에디터가 아시아의 감수성, 그리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함께 짚어본다. 한 편의 영화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이야기한다. [편집자 주]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암살자(들). 허진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괄호 속의 ‘들’에 대해 2시간여 동안 질문을 던진다. 이는 영부인 저격 사건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조용히 숨죽이고 살게끔 진실을 오리무중으로 빠트리던 이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사건 은폐와 언론 검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던 폭력과 이에 따라 희생되던 소시민들. 문제의식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역사를 재구성하고 각색하는 ‘대안 서사’이기에 사실과 허구 역시 한데 섞여 있다. 서울 시민과 외신 기자가 바라본 5·18 민주화운동 현장인 <택시운전사>와 6월 민주항쟁의 전후를 담은 군상극 <1987>. 10·26 사태를 모티브로 삼은 블랙코미디 <그때 그 사람들>과 정치 스릴러로 구성한 <남산의 부장들>. 12·12 군사반란을 밀도 있게 따라간 <서울의 봄> 등. 모두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가상의 인물을 세우거나,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치며, 역사의 빈틈을 새롭게 메운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의 괄호 속 ‘들’을 가리킬 단서들은 어느 틈에 발생한 것일까.
사건의 틈

1974년 8월 15일 오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에서 영부인 저격 사건이 발생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던 중 객석에서 총성이 울렸고, 총을 쏜 이는 재일교포 문세광이었다. 박 대통령은 피격을 면했지만, 옆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는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받은 육 여사는 그날 오후 7시경 숨졌다. 현장에서 체포된 문세광은 재판을 거쳐 같은 해 12월 17일 사형이 확정됐고, 사흘 뒤 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사건이 그렇게 단순하게 끝나지는 않았다. 2005년 2월과 3월에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와 2021년 4월에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 2> 등은 당시의 기록과 관계자 증언을 다시 들여다보며 여러 의문을 제기했다. 행사장의 보안과 현장 감식 과정에서의 문제, 문세광이 쏜 총탄 수와 현장에서 들린 총성 및 탄흔의 불일치, 육영수 여사를 맞힌 탄환의 묘연한 행보, 그리고 범죄자의 배후에 관한 한일 양국의 조사 및 해석의 차이를 둘러싼 내용이었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먼저, 당시의 현장 보안과 탄환의 행방을 둘러싼 의혹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했다. 가령, 차량 출입증도 비표도 없이 나타난 문태광은 서울중부경찰서 형사 철구의 의심에도 경호계장의 허락을 받아 경축식장에 들어간다. 실제로도 문세광이 비교적 수월하게 행사장에 들어간 것을 두고 경호가 충분히 엄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것이 아무리 유신체제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상부의 결정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이어서, 탄흔을 살피고 녹음된 총성을 다시 들어보는 동안, 화면이 리플레이 되며 그날의 모습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오발이거나 연단을 조준하고, 불발되거나 태극기와 천장을 맞추며, 육 여사와 최승화 양에게 향한 총탄은 6번의 총성과 탄흔을 남겼다. 그러나 문태광의 총에서 발사된 탄환 수는 장전된 5발 중 4발이었다. 이러한 간극과 함께 경호실이 탄두를 먼저 수거해, 이를 미처 확인할 수 없었다던 서울시경찰국 감식계장 현도의 증언은, 당시 현장 감식 과정에 대해 이건우 감식계장이 제기했던 의문을 부각한다.
이 외에도 최승화 양이 총상을 입을 때, 실제로 총탄에 맞은 장봉화 양이 떠오른다. 철구가 속한 중부서 경찰들이 줄줄이 파면을 당할 때,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물러나야 했던 수십 명의 경찰들 역시 떠오른다. 역사적으로 밝혀졌거나, 시간이 흘러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의 이면들이 다시금 재현되는 순간이다.
각색의 틈

그러나 감독의 파헤침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말 문세광 혼자만의 범죄였을까. 그를 도운 사람이나, 그의 범행을 가능하게 만든 환경은 없었을까. 혹은 그 과정에 또 다른 묵인과 은폐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본 사건 이외의 임의적 추론이나 또 다른 외부의 배경을 이어 붙인 이야기로, 영화는 그렇게 남은 틈을 메워 나간다. 추리물로서는 치밀함을 선사하면서도, 역사물로서는 그 신빙성에 조금은 물음표가 찍히기도 하는 부분이다.
가령, 붉은 인화실 속에서 총탄의 미심쩍은 흔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철구의 태도부터 그렇다. 현도가 문태광의 단독 범행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냐’라는 듯 크게 당황하는 모습은 그 배후에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게다가 경호계장은 철구가 문태광을 경축식장으로 들여보낸 이유를 묻자 폭행하면서까지 침묵하고, 현장 탐식 결과를 조작하도록 종용한 중앙수사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재환을 ‘빨갱이’로 몰아붙이지 않았나. 이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취재원들의 증언을 통제하고, 취재자들과 그 가족 및 지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수상한 이들도 있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당연히 그 주체로 의심스러운 것은 최소가 중앙정보부, 혹은 정부의 권력자들이다.

여기에 이어서, 영화는 영부인 저격 사건의 또 다른 외부 축으로 김대중 납치 사건 이후 얼어붙은 한일 관계와 시기상 우연히 맞물리는 서울 지하철 개통의 배경을 둔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은 일본 경찰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개입을 의심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면서 한일 간 외교 문제로 번졌고, 양국 관계는 한동안 교착상태에 놓였다. 이후 두 정부가 사건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하면서 갈등은 봉합됐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타고 극 중 극동상사와 다이요 상사의 경제협력 사업이 등장한다. 재환은 영일의 형이자 극동상사 회장인 한상일에게 일본에 프랑스보다 2배 이상인 거금을 주며 지하철을 사들인 경위를 캐묻는다. 문태광의 조력자로 보이는 이와사 사토시가 다이요 상사의 직원일 수 있고, 회사의 주가가 한일 관계와 비례한다는 것을 단서로 삼아, 영부인 저격 사건 역시 이해관계 속에서 벌어진 것 아니냐 추궁한 것이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 1호선은 1974년 8월 15일에 개통했고, 건설 과정에서 일본 차관이 도입됐으며, 전동차 역시 일본 히타치에서 제작됐다. 지하철 개통식이 열린 바로 그날, 공교롭게도 육영수 여사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의 인과관계로 밝혀진 바는 없다.
더불어, 일본과의 관계를 풀 목적으로 하나의 해프닝을 일으켰다는 듯이 어림잡기에는 그 이후 양 정부가 오히려 첨예하게 충돌했기에 사실과도 다르다. 영화에서도 한번 언급되지만, 한국 정부는 문세광의 배후로 북한과 조선총련을 지목했고, 일본 정부는 조선총련의 직접적인 범행 가담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양국은 한때 국교 단절까지 검토할 정도로 대립하기도 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일련의 연결고리들은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한일 간의 복잡한 관계 속 사건들로 짜맞춰 본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한편, 문태광의 형 문태선이 영일에게 전하는 동생의 이야기도 실제 기록을 기반으로 살을 덧붙인 내용이다.
문세광은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이후, 당시 한국청년동맹(한청) 중앙본부 부의장이었던 김군부에게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에서 인질극이나 폭탄 테러를 벌이자는 취지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는 김군부의 증언도 있어, 문서의 전달 경위까지 명확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다.
영화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재일동포로서 겪은 차별과 한일 관계의 악화 속에서 극단적인 생각을 품었던 문태광의 모습을 그린다. 가령, 그는 그럴싸한 책들만 꽂아놓고 통 읽지 않았던 자로 거사를 치를 만한 ‘배포’가 있진 않던 자였다. 그런 그에게 저격을 실행할 결심과 자금을 준 것은 모두 ‘마에다’로 설명된다. 단독 범행이 아닌 누군가의 지시와 지원을 받아 움직인 인물로 가정한 것이다.
이때의 마에다 또는 이와사 사토시는 끝까지 미지의 존재로 남는다. 문태광의 호텔방에서 발견한 그의 재킷과 프런트의 전화에 ‘한국어’로 응답했다던 목소리, 문태광을 사주고 자신도 신었다던 갈색 구두와 항상 쓰고 다니는 중절모, 문태광의 형으로부터 받은 사진 속 얼굴까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는 영화 속 인물들의 구체화 된 의심이다.
또한, 자신의 뒤를 바짝 쫓던 철구에게 강한 빛으로 시야를 가리며 더 이상의 추격을 하지 말라는 듯 위협적인 언행을 하는 모습은 ‘진실’을 삼키게 하던 지난날의 고압적인 권력층을 상기하기도 한다. 가상의 인물로서 그날에 대한 의문과 그 시절을 향한 고발을 은유하는 것이다.
해석의 틈

음모론(陰謀論).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있다고 여기며 유포되는 소문이다. 어떤 정황의 원인과 이유를 특정했으나, 그것이 탐탁지 않을 때 혹은 불확실한 면이 있을 때.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진실임이 드러날 때. 특히 그 대상이 유명하고 권력과 맞닿아 있을 때, 의심은 더 쉽게 증폭된다.
실제로 이렇게 ‘음모론’을 영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적지 않다. 케네디 암살 사건을 CIA와 군산복합체 등의 관여로 구성한 올리버 스톤의 <JFK>, 영국 왕실의 역사를 무대로 공적인 기록 뒤에 가려진 사생활과 ‘왕권’의 작동 방식을 묘사한 피터 모건의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 실제 사건이 아닌 허구의 정치적 암살과 비밀 조직을 통해 공식 발표에 대한 불신과 보이지 않는 권력의 공포를 그린 앨런 J. 파큘라의 <암살단>이 그렇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실과 허구 사이에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을 지닌 <암살자(들)>은 어떤가. 이를 정치적 선전과 선동을 일으키는 하나의 ‘프로파간다’라고 볼 수 있을까. 특정한 사상이나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대중의 인식과 행동을 유도하는 강력한 힘 말이다. 그동안 정치적인 입방아에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며 그 구색을 맞춰가는 듯도 하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영화의 해석이 어디까지 창작의 자유로 용인될 수 있는지, 또 어디서부터 역사를 왜곡하는 서사가 되는지, 그 실체를 궁금해하는 관객들이 지금도 극장을 방문해 다양하게 반응 중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강경한 유도나 누군가를 향한 과도한 비난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면. 하나의 작품에서 비롯된 지난한 편 가르기를 넘어, 생산적인 논쟁의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암살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고, ‘사실’과 ‘진실’을 둘러싼 검증과 논증을 진행해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호불호의 의견이 가감 없이 드러나야 한다. 칭찬과 비판, 동의와 반박이 모두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창작자에게뿐 아니라, 작품을 수용하는 자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예은 기자 sophi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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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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