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보다 ‘약’이 먼저가 된 사연
헌재가 경고한 입법 공백을 국회는 방치했다. 법이 빈 자리에 한 병원은 약 2년간 산모 527명을 소개받아 수술비로 약 15억 원을 받았다.
[칼럼] ‘법’보다 ‘약’이 먼저가 된 사연
헌재가 경고한 입법 공백을 국회는 방치했다. 법이 빈 자리에 한 병원은 약 2년간 산모 527명을 소개받아 수술비로 약 15억 원을 받았다.

유제니 에디터
정치·사회 분야 취재 보도를 담당합니다.
![[칼럼] ‘법’보다 ‘약’이 먼저가 된 사연](/_next/image?url=https%3A%2F%2Ftime-korea-images-prod.s3.ap-northeast-2.amazonaws.com%2Farticles%2F251%2Fb3574a0c11124e40a058ceb7a2b84cdf.jpg&w=3840&q=75)
2024년 6월, 한 여성 A씨가 임신 36주에 중절수술을 받았다며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총 수술 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수술 후 회복 과정 등을 공개한 영상이었다. 수사로 드러난 건 임신중절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출생 후 살해였다.
법원의 판단은 이랬다. 병원장과 집도의는 당시 임신 34~36주였던 A씨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해 아이를 꺼냈다. 살아 있는 아이를 냉동고에 넣고 숨지게 했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사망한 뒤 나온 게 아니라, 살아서 태어난 아이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1심은 병원장에게 징역 6년, 집도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고, 산모에게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올해 7월 항소심에서 A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술을 알선한 브로커에게 아이가 사산된 상태로 나온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점이 판단의 근거였다. 임신중절을 원했다는 사실만으로, 살아서 태어난 아이를 살해하는 데 동의했다고 볼 순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임신중절은 처벌할 근거가 없다. 여성이 임신을 중절한 경우와 의사가 여성의 동의를 받아 시술한 경우를 처벌하던 낙태죄 조항은 2021년부터 효력을 잃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이 조항들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처벌을 앞세우고, 예외는 좁게 뒀다는 것이다.
초기와 후기를 가리지 않고 처벌하던 법이 사라졌지만, 둘을 구별할 법은 들어서지 않았다. 헌재가 국회에 준 개정 시한은 2020년 말이었다. 국회는 그 시한을 넘겼고, 처벌 조항은 효력을 잃었다.
당시 헌재는 해당 조항을 즉시 무효로 하면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은 현실이 됐다.
공백을 현실로 만든 건 국회다. 21대 국회에서 형법 개정안 6건과 모자보건법 개정안 7건이 발의됐다. 형법 개정안을 놓고 보면, 낙태죄를 아예 없애자는 안과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허용 범위를 정하잔 안으로 갈렸다. 하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선 더 뜸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5건 발의됐지만, 형법 개정안은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이 낸 1건에 그쳤다. 조 의원은 10주를 처벌 기준으로 정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종교계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크고 사회적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라 법안 논의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9월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걸 결정하는 순간 어느 쪽으로부터든 욕을 먹게 돼 있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 이런 경우에 아무것도 안 해 버린다”고 대통령은 꼬집었다. 국회 이야기다.
기자회견 이틀 전, 정부는 임신중절 약물(‘미프진’) 도입을 공식화했다. 임신 9주 이내 여성에 한해 복용하도록 했다. 제약사 신청을 식약처에서 심사하는 방식이라지만, 실질적으론 약물의 허가 조건이 현장의 기준을 대신하게 된다.
임신 9주 이후는 그마저도 없는 무주공산이다. 의료진 판단에 기댄다. A씨를 수술한 병원은 약 2년간 산모 527명을 소개받아 수술비로 약 15억 원을 받았다. 지금도 또 다른 A씨는 법 대신 병원 가격표를 보고 있다.
유제니 기자 jenny@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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