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무대에 온 걸 환영해”
신촌 메가박스가 20년 만에 문 닫았다. 한적했던 이곳의 마지막 상영은 매진됐다. 극장 수는 줄고 있지만, 관객은 특별관과 공연·스포츠 생중계를 보러 여전히 극장에 간다.
“마지막 무대에 온 걸 환영해”
신촌 메가박스가 20년 만에 문 닫았다. 한적했던 이곳의 마지막 상영은 매진됐다. 극장 수는 줄고 있지만, 관객은 특별관과 공연·스포츠 생중계를 보러 여전히 극장에 간다.
조예은 에디터

“Just stop your crying(이제 그만 울어)
It’s a sign of the times(시대가 바뀌었다는 신호야)
Welcome to the final show(마지막 무대에 온 걸 환영해).”
지난 9월 21일 메가박스 신촌점에서는 해리 스타일스의 록 발라드 ‘Sign of the Times’가 흘러 나왔다. 극장에서 특별 편성한 작품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OST였다. 해당 영화는 이날 매진됐다.
2006년 문을 연 뒤 신촌 대학생들의 일상 한 편에 있었던 이 극장은 이날 문을 닫았다. 그 전달 열렸던 여성영화제의 현수막이 채 정리되지 않은 채 걸려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부터 극장 곳곳에 영업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쪽 복도에는 “지난 20년 동안 메가박스 신촌점을 이용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오후 3시 30분 극장은 한산했다. 빈 매표 부스와 드문드문 놓인 테이블 사이로 주문 상품을 받으라는 알림 벨과 팝콘 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곧 사라질 극장을 기억하려는 듯 극장 곳곳을 사진으로 남기는 관객들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30대 여성 김씨는 15년 동안 이 극장을 찾았다. 그는 이곳을 “내 20대를 기록한, 한 편의 영화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곳이 없어지면 여기서 영화를 봤던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극장만이 주는 감동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그는 “TV나 휴대전화로 볼 때는 주변 자극이 많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지만, 영화관에서는 큰 화면과 음향에 몰입할 수 있다”며 “영화관은 영화라는 본질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극장의 생존 조건에 대해 그는 영화관에서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늘리되, “영화라는 본질에 좀 더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달 30일 찾은 메가박스 동대문점의 마지막 밤은 달랐다. 이곳에서는 마지막 영업일을 맞아 ‘굿바이 상영회’가 열렸다. 마지막 상영작 ‘킹 오브 프리즘’을 보러 온 팬들은 코스프레 차림으로 로비를 채웠다. 팬들이 준비한 화환과 졸업장도 놓였다.
로비 한쪽에는 관객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포스트잇 부스와 온라인 롤링페이퍼 QR코드가 마련됐다. 한 관객은 “동메박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는데 아쉽다ㅠㅅㅠ 초딩때부터 직딩까지 고마웠어요”라고 적었다. 상영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각자의 마지막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는 극장, 이어지는 발걸음

문을 닫는 극장은 신촌과 동대문만이 아니다.
CGV 판교점과 롯데시네마 부평점은 지난 8월 19일 영업을 끝냈다. 메가박스 창원내서점은 같은 달 23일, 롯데시네마 합정점은 31일 문을 닫았다.
극장 수와 스크린 수도 줄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극장 수는 2023년 573개에서 2024년 570개, 2025년 547개로 감소했다. 2025년 전국 스크린 수는 3154개로 전년보다 142개 줄었다. 좌석 수도 40만7056석으로 1년 새 3만919석 감소했다.
관객이 극장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6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극장 매출은 5790억원, 관객 수는 5705만명이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41.9%, 34.2% 늘었다. 한국 영화 관객 수는 3737만명으로 74.9% 증가했다.
그러나 이를 극장 산업의 완전한 회복으로 보기는 이르다. 올해 상반기 관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같은 기간 평균의 56.5% 수준에 그쳤다.
관객은 돌아오고 있지만, 과거처럼 극장을 일상적으로 찾는 것은 아니다. 이제 관객에게는 ‘무엇을 볼 것인가’만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어떻게 볼 것인가, 달라지는 관람 방식
특별관은 대형 스크린, 고음질 사운드, 움직이는 좌석 등으로 일반관보다 강한 시청각 체험을 제공하는 상영관이다. SCREENX, 4DX, IMAX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특별관 관객 수는 285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0% 증가했고, 매출액 역시 457억 원으로 56.3% 증가했다. 2025년 전국 특별관 스크린 수는 1232개로 전년보다 80개 늘었다. 2022년 547개였던 특별관 스크린이 3년 만에 두 배 이상이 됐다.
지난 9월 씨네21이 실시한 특별관 이용 행태 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됐다. 응답자 1368명 중 85.6%는 최근 1년 동안 특별관에서 영화를 봤다고 답했다. 36.4%는 특별관을 10회 이상 이용했다.
특별관을 찾은 이유로는 ‘아이맥스·4DX 등 특정 포맷에 적합한 영화여서’가 80.7%로 가장 많았다. ‘일반관보다 좋은 화질과 음향을 경험하고 싶어서’가 74.6%, ‘높은 몰입감과 생동감을 느끼고 싶어서’가 69.6%였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임철희 객원교수는 “관객의 선택 기준이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에서 ‘어떤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볼 것인가’로 넓어지고 있다”며 “새로운 콘텐츠가 생겼다기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김희경 교수는 팬데믹과 OTT 확산 이후 극장이 바뀌었다고 봤다. 과거 극장이 여러 작품을 자주 보러 가는 일상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특정 작품을 보기 위해 가끔 찾는 이벤트 공간이 됐다는 것이다. 한 번 극장을 찾을 때 더 특별한 시청각 경험을 원하는 관객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넘어
극장은 이제 영화만 보는 공간이 아니다. 공연·콘서트·스포츠·게임 등 영화 밖 콘텐츠를 상영하는 ‘얼터너티브 콘텐츠’가 멀티플렉스의 새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공연 실황과 라이브 뷰잉이 대표적이다. 현재 CGV에서는 린킨 파크의 여정을 담은 <언섀터>를, 롯데시네마에서는 오아시스의 이야기를 담은 <오아시스: 돈 룩 백 인 앵거>를 상영하고 있다. 메가박스는 에스파의 첫 고척돔 콘서트를 단독 생중계하며 국내 극장 최초로 AI 공간음향 기술을 적용했다.
이달 25일부턴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3사에서 방탄소년단의 월드 투어 ‘ARIRANG’의 남미 공연을 라이브 뷰잉으로 선보인다. 공연 실황의 범위도 대중음악을 넘어 뮤지컬·오페라·클래식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스포츠 중계도 극장으로 들어왔다. CGV는 2024년부터 KBO 리그 생중계하고 있다. 정규시즌뿐 아니라 올스타전과 포스트시즌까지 주요 경기도 상영한다. 특히 포스트시즌 전 경기는 SCREENX를 활용해 3면으로 상영하고, 홈팀과 원정팀 응원석을 나누는 좌석 이원화도 진행한다.
메가박스 역시 올해 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를 생중계하는 등 스포츠 콘텐츠 제공을 확대하고 있다.
VR 콘서트와 게임 및 캐릭터 IP를 활용한 콘텐츠도 극장으로 향하고 있다. 메가박스는 올해 투어스(TWS)와 앤팀(&TEAM)의 첫 VR 콘서트를 단독 개봉했다. 롯데시네마는 르세라핌의 VR 콘서트를 상영하는 한편, 넥슨의 대표 게임인 메이플스토리를 활용해 IP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라이브뷰잉, 애니메이션, 굿즈, 전시를 결합한 체험형 콘텐츠를 제공한 것이다.

임 교수는 이를 극장의 ‘장소성’ 변화로 해석했다. 과거 극장이 영화를 함께 보는 장소였다면, 이제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경험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CGV 관계자는 “극장은 관객이 함께 콘텐츠를 즐기는 현장성을 가진 공간”이라며 “얼터너티브 콘텐츠는 영화 관객뿐 아니라 아티스트, 스포츠, 특정 IP와 팬덤에 관심 있는 고객까지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접점”이라고 했다. 이어 “기존 영화 개봉 일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공연·음악 등 다양한 IP를 극장 공간과 연결해 관객이 극장에서 경험해야 할 이유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극장 수는 줄고 있다. 하지만 극장에 갈 이유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관객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함께 즐기고,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고, 새 기술과 IP가 결합한 콘텐츠를 체험하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김 교수는 “분명 극장의 위기지만, 동시에 극장의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상영관이던 멀티플렉스가 여러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컬처플렉스’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극장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영화를 거느리느냐보다,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야 할 이유를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을 수 있다.
조예은 기자 sophi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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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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