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다각화의 우산’이 접혔다

2분기 영업익 99.7%가 반도체에서 나왔다. 같은 날 갤럭시를 만드는 MX사업부는 첫 적자를 냈다. 스마트폰이 잘 팔리면메모리값도 함께 오르던 공생 구조는 이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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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다각화의 우산’이 접혔다
30일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수원사업장에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

올 초 삼성전자를 여러 해 컨설팅해 온 한 업체 대표는 “메모리 독주가 계속되면 다른 사업부 경쟁력은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전사 영업이익과 사업부별 경쟁력은 다른 문제란 취지였다. 그는 한숨과 약간의 침묵을 섞어 말을 이었다. “그런 격차를 한 우산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느냐.”

30일 삼성전자가 내놓은 2분기 실적은 그 질문을 숫자로 옮겨 놓은 것에 가까웠다. 매출 171조 5000억 원, 영업이익 89조 5000억 원. 3개 분기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반도체(DS)부문이 89조 2000억 원을 벌며 전사 이익의 99.7%를 채웠다. 같은 날 스마트폰을 만드는 MX·네트워크사업부는 70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실적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첫 적자다.

공생 관계

한때 반도체와 스마트폰 조합은 삼성전자의 맷집으로 통했다. 반도체가 부진하면 완제품이 받치고, 완제품이 부진하면 반도체가 끌어올렸다. 메모리 가격을 밀어 올리는 수요와 갤럭시를 팔리게 하는 수요가 같은 뿌리, 즉 스마트폰이 잘 팔리는 만큼 메모리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메모리 슈퍼사이클’로 불린 2018년이 그랬다. 반도체는 그해 44조 5700억 원을 벌어 전사 영업이익의 75.7%를 채웠다. 그런데 같은 해 스마트폰을 맡은 IM부문도 10조 17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메모리값이 다시 뛴 2021년에도 IM부문은 13조 6476억 원을 벌었다. 2014년 이후 최대였다. 부품값이 오르는 국면에서도 세트가 함께 팔렸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국면에서는 떨어진 메모리값이 세트의 이익이 됐다. 2023년 DS부문은 14조 9000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회사 전체는 6조 5700억 원 흑자를 냈다. 반도체가 4조 5800억 원을 잃은 1분기에 갤럭시 S23을 앞세운 모바일사업부는 3조 9000억 원을 벌었다.

이렇게 메모리값이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세트는 흑자였다. 덕분에 메모리 사이클은 회사 전체 손익에 다다르기 전에 한 번 순화됐다.

AI 광풍

이번에는 달랐다. 갤럭시가 사상 첫 적자를 냈다. 달라진 것은 메모리값을 밀어 올리는 원천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과거 메모리 산업은 소비자 제품 중심으로 업황 변동성이 컸다”고 했다. 이제 수요의 원천은 AI 데이터센터로 옮겨 갔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는 “AI 워크로드가 늘면서 서버 구조가 CPU와 GPU 비율 1대 4에서 1대 1로 이동하고 있다”며 “HBM만이 아니라 DDR5와 LPDDR5 수요가 함께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메모리값 상승은 갤럭시와 PC가 잘 팔린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원가가 올라도 판매가 함께 늘어 상쇄됐다. 지금은 값이 오른 이유가 갤럭시 판매와 무관하다. 500달러 이하 스마트폰에서 메모리는 이미 제조원가의 절반을, 플래그십에서도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오른 원가는 소비자 가격을 밀어 올렸고, 시장 자체를 줄였다.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11% 감소해 2013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실피 자인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수급 위기가 다른 모든 요인을 제치고 스마트폰 산업의 최대 부담이 됐다”며 “세계 판매량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급·중급 기기가 기존 가격대에서는 구조적으로 성립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요컨대 원가는 오르는데 판매는 줄어드는 조합이 처음 성립했다. 메모리 호황이 세트에도 이익이 되던 국면은 사라졌다.

큰손과는 길게, MX와는 짧게

AI 광풍이 꺾이면 예전 구조로 돌아갈까? 그럴 가능성은 적다. 장기 계약 때문이다.

김 부사장은 “생산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체 생산능력의 60~70% 수준에서 장기공급계약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년을 기본으로 매년 1년씩 계약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전체 대금의 4분의 1을 이미 선수금으로 받았고, 범용 메모리에는 하한 가격을 설정했다. 글로벌 5대 데이터센터 고객과는 계약을 마쳤다고 밝혔다. 그는 “2027년 공급 부족은 올해보다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2028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크인사이츠는 장기계약 확산이 “현물시장 의존을 줄이고 D램 사이클의 변동성 자체를 완화한다”고 봤다. 메모리 사이클은 평탄해지지만, 메모리값이 떨어져야 원가가 내려가는 스마트폰 입장에선 악재다.

메모리와 스마트폰을 한 회사에 만든단 사실도 방패가 못 된다. DS부문은 MX사업부에 D램과 낸드플래시를 외부 고객과 같은 시장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 내부 거래에도 할인은 없다. 삼성전자 내부 관계자는 “같은 회사라고 해서 특별히 싸게 메모리를 공급하는 구조가 아니다. 외부 고객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그래야 사업부별 실적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글로벌 고객사와의 신뢰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MX사업부는 원가 안정을 위해 장기 공급계약을 요구했지만, DS부문은 수익성 극대화를 이유로 분기별 가격 협상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 탓에 이번 MX사업부 적자는 올 초부터 예고됐다. 조성혁 MX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4월 콘퍼런스콜에서 “주요 부품 단가 부담이 올 2분기에도 가중될 것으로 보이며, 이익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지속 기간이다. 삼성증권은 MX·네트워크사업부가 올해 5조 8410억 원, 2027년 15조 2090억 원, 2028년 3조 2370억 원의 연간 적자를 내며 3년간 24조원대 누적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시장에서도 이런 불균형에 우려 섞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30일 콘퍼런스콜에서 박순철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안정적으로 현금이 창출되고 있다”고 말했지만, 같은 날 이토로의 조시 길버트 애널리스트는 "삼성의 한쪽을 부유하게 만드는 반도체가 지금은 다른 쪽을 해치고 있다"며 "그룹은 메모리 가격과 하이퍼스케일러 수요의 지속성에 어느 때보다 크게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불균형의 값

16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앞에서 삼성전자노동조합 동행(동행노조) 조합원들이 성과급 격차 등에 반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

이익 격차는 부문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5월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는 임금협약에 합의했다.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연봉 1억원 기준 1인당 최대 6억원을 받은 반면, DX부문 직원에게는 자사주 600만원어치가 지급됐다.

지난 1일 유튜브에 올라온 4분30초 길이 노래 ‘위 디저브 잇(We Deserve It)’에는 “우리가 만들었어 TV도 냉장고도 세탁기도 에어컨도 갤럭시도. 그저 내가 만든 게 빌어먹을 반도체가 아닌 거야”라는 가사가 담겼다. DX부문 직원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상은 닷새 만에 조회 수 3만 회를 넘었다. 사내 게시판엔 “삼성전자라는 회사는 이익이 많이 늘었다는데 그럴수록 우리 사업부는 이익이 줄어들고 성과급도 쪼그라든다”는 글이 올랐다.

불만은 행동으로도 옮겨졌다. DX부문 직원들은 지난달 검은 옷을 입고 출근했고, 캠페인은 구미·수원·광주·우면 사업장으로 번졌다. DX 직원이 주축인 동행노조 가입자는 한 달 사이 2000명대에서 2만6000명을 넘어섰다.

노태문 DX부문장은 지난달 DX부문 노조원들을 만나 “구성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어려움에 공감한다”며 “사기 진작과 조직 안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30일 MX사업부가 내놓은 하반기 대책은 프리미엄 제품 비중 확대와 판매 믹스 조정이었다. ‘한 우산 안에서 격차를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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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덕

문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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