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서울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 지하 유휴공간 ‘두두두 서울’에 방문했다. 약 335m 길이의 통로를 따라 빅뱅의 음악과 무대, 사진과 영상이 펼쳐졌다. 20년 전의 모습부터 최근의 신곡까지 이어지는 장면 사이에는 미디어 파사드와 VR 콘텐츠, 포토존과 미디어 아트 등이 자리했다. 한쪽에서는 빅뱅의 타이틀곡을 헤드셋으로 듣는가 하면, 다른 공간에서는 관람객이 자신의 사진을 전시장 화면에 띄웠다. 세 멤버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해 홀로그램 영상을 소장하거나, 전시장 벽면에 직접 메시지를 남길 수도 있다.
‘빅뱅 20주년 미디어 전시 ‘코스모스’(BIGBANG 20TH ANNIVERSARY MEDIA EXHIBITION ‘COSMOS')’의 풍경이다. 약 4년 4개월 만의 신곡 ‘빅(BiiiG)’을 발표한 빅뱅은 컴백과 동시에 데뷔를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음악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공간을 이동하고, 메시지와 이미지를 남기며 아티스트의 시간을 경험하도록, 팬을 한 명의 ‘참여자’로 호명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빅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세대 빅뱅부터 5세대 알파드라이브원까지, 8월에 컴백한 보이그룹들의 프로모션을 따라가 보면 음원 발매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컴백은 이제 무엇을 공개할 것인지를 넘어, 대중이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를 기획하는 일이 되고 있다.
팬을 플레이어로 만들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팬의 능동성이다. 스트레이 키즈는 미니 앨범 ‘디스 앤 댓(THIS & THAT)’의 여러 티징 콘텐츠에 ‘은빛 트럭’을 반복해서 등장시켰다. 프리 트레일러부터 트레일러 본편, 트랙리스트 영상과 티저 사진, 티징 타임테이블까지 같은 이미지를 암시하면서 다음 콘텐츠와 연결해 볼 수 있게 했다. 하나의 상징을 이스터에그처럼 심어두고, 팬이 직접 연결고리를 찾아 앨범의 메시지를 해석하게 만든 것이다.

알파드라이브원은 미니 2집 ‘언브레이커블: 소년비스트(UNBREAKABLE : 少年BEAST)’를 하나의 게임처럼 구현한다. 트레일러 상영회에서 제공한 퍼즐 조각 다음의 정보를 오프라인 행사와 공식 웹사이트에서 찾게 했고, 용산역 브랜딩 광고에는 ‘소년비스트(少年BEAST)’들을 포획하는 AR 미션을, 성동구 팝업에는 그들의 진실을 밝힐 다양한 과제를 부여했다. 팬이 직접 단서를 수집하며 앨범의 서사를 따라가게 한 것이다.

SF9 역시 웹사이트 ‘브레이크 더 케이지(BREAK THE CAGE)’에서 새장 모양의 ‘왁뿌볼’을 직접 부수고 멤버들의 친필 운세 메시지와 신곡, 팬덤 판타지에게 전하는 러브레터 등을 확인하도록 했다. 정규 2집 ‘터내서티(TENACITY)’의 콘셉트를 단순히 보여주는 대신 직관적인 의미와 최근의 SNS 트렌드와 결합해, 팬이 직접 조작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놀이로 바꾼 것이다.
세 팀의 방식은 다르지만 팬에게 주어진 역할은 비슷하다. 다음 콘텐츠를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고, 해석하고, 직접 행동한다. 이처럼 컴백 프로모션은 앨범을 탐구할 수 있게 그 장을 마련해 주고 있다.
앨범의 세계를 현실로 옮기다

앨범의 세계관을 실제 공간에서 경험하게 만드는 방식도 두드러진다. 엔하이픈은 미니 8집 ‘더 신 : 블리스(THE SIN : BLISS)’를 앞두고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몰입형 전시를 통해 뱀파이어 저택 속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전개했고, 하이브 사옥에 마련된 팝업에서는 앨범의 비주얼과 음악을 동시에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팬이 직접 이동하며 앨범의 이야기를 몸소 체험하게 한 것이다.

세븐틴 디노의 경우에는 솔로 활동을 위해 만든 캐릭터 ‘피철인’ 자체를 현실로 불러냈다. 53세의 프로듀서라는 설정을 가진 피철인은 첫 미니앨범 ‘吉BOARD(길보드)’의 콘셉트를 이끈 캐릭터다. 성수동과 명동에는 그의 모습을 담은 레트로풍 현수막이 등장했고, QR코드를 통해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기도 했다. 가상의 인물이 실제 거리에서 팬과 만나는 장면을 만든 것이다.
엔하이픈이 이미 구축해 온 세계관을 현실의 공간 안으로 옮겼다면, 디노는 하나의 가상 캐릭터를 현실의 거리로 불러낸 셈이다. 즉, 두 경우 모두 앨범을 듣기 전에 먼저 그 세계를 마주하게 한다.
도시를 무대로 삼다

팬이 컴백을 경험하는 공간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빅뱅은 이번 컴백과 데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잠실 일대에서 미디어 전시와 포토존, MD샵, 석촌호수 라이팅 등을 진행했고, 컴백 당일에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미디어아트와 드론쇼 등을 선보였다. 공연장과 행사장에 한정하지 않고 서울의 일상적인 장소를 활용한 것이다.

NCT 127은 이번 컴백을 각 나라의 일상 공간과 연결했다. 정규 7집 ‘블링이(BLINGY)’ 발매를 앞두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중국 등의 주요 13개 도시에서 대형 옥외광고를 진행했고, 미국 NBC의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 무대에도 올랐다. 성수 팝업을 통해 시작된 ‘서울의 해결사’라는 앨범 소재의 체험은 세계의 다른 도시에서도 이어질 예정이다. 팬이 살고 있는 풍경과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다.
빅뱅이 컴백 소식을 서울의 곳곳에 알렸다면, NCT 127은 앨범을 알리는 접점으로 여러 나라를 활용했다. 팬과 대중이 생활하는 도시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하나의 경험으로 자리한 것이다.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컴백 프로모션
8월 보이그룹들의 컴백 프로모션은 방식이 저마다 달랐지만, 팬에게 요구한 것은 같았다. 가만히 지켜보지 말고 직접 움직이라는 것이다. 어떤 팬은 티저에 숨은 단서를 쫓아 앨범의 이야기를 짜맞췄고, 어떤 팬은 전시장과 팝업을 찾아 앨범 속 세계에 발을 들였다. 또 어떤 팬은 자신이 사는 도시의 옥외광고와 이벤트에서 아티스트를 만났다. 음원 발매 전후에 뿌려진 콘텐츠들이 팬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 셈이다.
왜 이런 방식이 늘었을까. 황선업 평론가는 그 배경으로 짧아진 활동 주기를 꼽는다. “앨범 단위 프로모션 기간이 짧아지다 보니” 기획사들이 음원을 내놓고 소비를 기다리는 대신, 팬이 직접 참여하고 해석하도록 판을 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활동 전후의 홍보를 일종의 ‘체험 기간’처럼 꾸미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짧은 기간에 팬덤의 충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이런 전략이 통하는 건 K팝 팬덤이 원래 '해석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조혜림 평론가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뜯어보고 2차 창작을 해온 문화를 기획사가 "좀 더 시스템화"한 것에 가깝다고 했다. 팬은 이제 “미완성 단서들을 해석해 서사를 완성하는 공동 창작자”이며, 아티스트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동반자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이 참여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기획사가 팬이 어디서 무엇을 발견할지까지 미리 계산해 두는 통제형 참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컴백 프로모션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서, 팬이 무엇을 하게 할 것인가로. 남은 문제는 균형이다. 팬이 스스로 발견하고 해석할 여지를 기획사가 얼마나 남겨두느냐에 따라, 컴백의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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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