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에 갇혔던 카카오 이사회, “안건 85%가 계열사”
자회사 관리에 본사 자원이 쏠린 구조를 끊겠다며 카카오가 인적분할을 택했다.
최문정 에디터
산업부 이슈를 다룹니다.

“지금 카카오는 기존 경영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2023년 11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그룹 외 독립 거버넌스 감시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 출범을 선언하며 내놓은 진단이다. 당시 김 창업자는 “과거의 경영방식과 이별하고 새로운 카카오로 재탄생해야 한다”며 변화를 예고했다.
그로부터 약 2년 반이 지난 시점, 카카오는 회사를 둘로 나누기로 했다. 카카오톡과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직접 사업을 수행하는 신설법인 ‘카카오AI’와 테크핀·콘텐츠·모빌리티 등 주요 계열사를 투자·육성하는 존속법인 ‘카카오X’다. 카카오는 21일 인적분할안을 발표하며 AI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복합기업 구조에서 비롯된 시장의 저평가를 해소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업하는 카카오, 투자하는 카카오
이번 인적분할을 통해 기존 카카오는 신설법인 카카오AI와 존속법인 카카오X로 나뉜다. 각 회사는 정신아 현 카카오 대표와 김도영 현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맡는다.
분할의 핵심은 직접 사업과 자회사 투자·관리 기능의 분리다. 카카오AI는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AI·광고·커머스를 연결하는 ‘AI 코어 컴퍼니’를 표방한다. 2030년까지 AI 일간활성이용자(DAU) 2000만 명 이상을 확보하고 매출 6조 원 이상, 이 가운데 AI 관련 매출 1조 원 이상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카카오X는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등 테크핀, 카카오엔터테인먼트·SM엔터테인먼트·카카오픽코마 등 콘텐츠, 카카오모빌리티 등 주요 계열사를 거느린다. 동시에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혁신기업에 투자하는 역할을 맡는다. 가용 투자재원 약 6조 4000억 원을 밑천으로 2030년까지 주요 사업 매출을 10조 원 이상으로 키운다는 목표다.
분할비율은 순자산 장부가액을 기준으로 카카오AI 0.36, 카카오X 0.64다. 오는 12월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내년 1월 1일 분할을 완료하고, 같은 달 27일 카카오AI 재상장과 카카오X 변경상장을 추진한다.
게임 팔고 다음도 넘겼지만
카카오가 회사를 나누기로 한 배경에는 계열사 숫자를 줄이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경영구조의 문제가 있다.
카카오는 2024년 3월 정신아 대표 취임 이후 계열사 정리 작업을 이어왔다. 공정거래위원회 집계 기준 2023년 5월 147개로 정점에 달했던 카카오 계열사는 이달 92개까지 줄었다. 주요 자회사로 꼽혔던 카카오게임즈와 AXZ(포털 ‘다음’ 운영사), 성장성을 보고 키우던 카카오헬스케어도 떼어냈다. 카카오는 올해 말 계열사가 86개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계열사가 줄어든 뒤에도 카카오 본체가 카카오톡·광고·커머스 등 직접 사업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자회사를 관리하는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최근 5년간 카카오 이사회의 비경상적 의사결정 가운데 85%인 23건이 자회사 관련 사안이었다. 최근 1년간 내부 투자심의 안건 32건 가운데서도 84%가 자회사 관련 안건이었다.
김도영 카카오X 대표 내정자는 이날 온라인 설명회에서 “자회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하느라 카카오 본사의 경영 자원은 상당 부분 중요한 일이 아닌 급한 일에 쓰였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특히 AI 경쟁이 기존 구조의 한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AI 서비스 경쟁에서는 빠른 투자와 의사결정이 필요하지만 사업과 자회사 관리가 뒤섞인 기존 구조가 속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김 내정자는 “지금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며 “속도를 내지 못하면 소비자향(B2C) AI 서비스의 선두 주자가 되기 위한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고 밝혔다.
‘카톡 제값 받겠다’
카카오가 택한 방식은 기존 주주가 나뉘는 두 회사의 주식을 모두 보유하는 인적분할이다.
이날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설명회에서 김 내정자와 정 대표는 ‘주주가치’와 ‘주주환원’을 모두 21차례 언급했다. 카카오X에는 자회사 배당금과 투자차익의 30%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원칙을 세웠다. 최근 두나무 지분 매각 차익을 활용한 3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김 내정자는 향후 신규 사업의 상장 가능성과 관련해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에 따라 절차와 규정을 준수할 것”이라며 “특히 주주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가장 유념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이번 분할을 과거의 주주가치 훼손 논란에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 그룹에 적용되고 있는 ‘복합기업 할인’을 해소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카카오가 제시한 국내외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부분합산가치평가(SOTP) 컨센서스에 따르면 그룹의 잠재가치는 34조 2000억 원이지만 최근 3개월 평균 시가총액은 16조 8000억 원으로 절반 수준이다. 사업과 투자를 분리하면 시장이 각 회사의 가치를 따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게 카카오의 판단이다. 특히 카카오는 카카오AI가 독립적인 AI 기업으로 자리 잡을 경우 현재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카카오AI라는 형태의 완연한 AI 기업으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면 AI 프리미엄을 적용해 30~40배까지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카카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21.9배다.
두 회사의 경영조직은 분리되지만 김범수 창업자의 지분은 양쪽에 동일하게 승계된다. 김 창업자는 분할 이후에도 카카오AI와 카카오X 모두에서 창업자이자 대주주로 남는다. 2년 반 전 ‘기존 경영방식과의 이별’을 선언했던 김 창업자는 이번에는 ‘두 개의 엔진’을 새로운 성장 구조로 제시했다. 김 창업자는 “AI 시대는 차원이 다른 민첩함을 요구하는 만큼, 카카오AI와 카카오X 두 개의 엔진으로 성장 구조를 재설계해 그 성과가 주주와 이용자, 직원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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