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어수선한’ 예술이란

AI 기술로 정교한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 예술가의 시간과 노력, 선택이 남긴 ‘어수선한 흔적’이 작품의 새로운 가치로 주목받는 이유를 살펴본다.

작성 :
AI 시대에 ‘어수선한’ 예술이란
붓을 든 AI를 상징하는 이미지사진=GETTY IMAGES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가 작업 도중 마음을 바꾼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완성된 화면 아래에는 버려진 선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몇 인치쯤 왼쪽으로 옮겨진 형상이 있을 수도 있다. 아침에는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지만 밤이 되자 견딜 수 없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던 색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캔버스 가장자리에는 번진 지문이 찍혀 있을지도 모른다. 뒷면에는 날짜나 수선한 모양, 고르지 않게 박힌 스테이플, 서명, 혹은 이전 소유자의 이름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한때 이런 지저분한 흔적은 작품에 우연히 따라붙는 부수적인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증거처럼 여겨진다.

AI는 나노초 만에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화가가 색을 한 번 섞거나 붓을 씻기도 전에 수백 가지 변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결과물 가운데 일부는 기술적으로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또 어떤 결과물은 믿기 힘든 감탄을 자아낸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이미지가 넘쳐나면서 우리가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어떤 시각적 아이디어든 원할 때 불러낼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는 쉬워졌지만, 그것을 진정한 새로움이라고 믿기는 오히려 어려워졌다.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남겨진 어수선한 흔적 자체가 그 작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최근의 시각 문화 가운데 상당수는 새로우면서도 묘하게 익숙하다. 생성형 시스템은 기존 이미지로 이루어진 방대한 아카이브를 학습한 뒤, 통계적 관계에 따라 패턴을 조합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대개 우리가 익숙하게 알아볼 수 있는 시각적인 문법을 따른다. 영화 같은 조명, 꿈속을 연상시키는 건축, 매끈하게 다듬어진 인물 사진, 혹은 섬뜩할 만큼 정교하게 구성된 불가능한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들을 충분히 많이 접하고 나면, 초현실적인 이미지조차도 관습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할 수 있다.

2024년 CHI 콘퍼런스에서 발표된 한 연구는 이런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관점이 될 수 있다. 시각적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실험에서 AI 이미지 생성기를 사용한 참가자들은 대조군보다 처음 제시된 사례에 더 크게 영향받았으며, 내놓은 아이디어의 수도 적었다. 아이디어의 다양성과 독창성 역시 떨어졌다. 연구에는 60명만 참여했기 때문에 결과를 신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 연구는 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이미 알아차리기 시작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상상력을 가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오히려 상상력의 폭을 좁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어렵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충분히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매끈하게 완성된 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찰 없이 만들어진 이미지가 쏟아지는 시대에 순수 미술은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물리적인 예술 작품에는 시간과 감정이 쌓인다. 예술가는 작품 앞에 서서 고민하고, 고치고, 망쳐보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할지, 아니면 포기할지를 결정한다. 모든 작품에는 수없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대개는 깔끔하지 않은 선택들이 담겨 있다. 작품은 그 과정에서 기울인 관심과 집중을 기록하는 물체가 된다. 그리고 관심과 집중은 우리가 가진 가장 희소한 ‘재료’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미 이러한 변화의 한 단면을 관찰했다. 2,965명이 참여한 여섯 차례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이미지 자체가 동일하더라도 ‘AI가 만든 작품’이라고 표시된 예술을 ‘인간이 만든 작품’이라고 표시된 예술보다 일관되게 낮게 평가했다. 기계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손길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미술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2015년 <마케팅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수공예품에 만든 이의 사랑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수공예품을 더 매력적으로 평가했다. 참가자들은 물건에 투영된,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한다고 상상한 인간적인 흔적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 흔적은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시간과 정성을 통해 드러났다.

오늘날 수공예품이 다시 주목받는 데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도 한몫한다. 우리는 암실과 콜라주 작업판, 물감이 묻은 옷, 디지털 기술이 불필요하거나 쓸모없게 만든 물리적인 도구들을 기억한다. 그러면서 그 작업에 얼마나 큰 비용과 지루한 노동이 필요했는지는 종종 잊는다. 그럼에도 지워진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는 데서 느껴지는 새로움이나, 아무런 제약 없이 그어진 선을 마주할 때의 즐거움은 단순한 향수를 넘어선다. 이런 흔적을 통해 우리는 그 뒤에 있었던 의도와 선택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런 흔적마저 모방하려고 할 수 있다. 가짜 지문을 추가하거나, 덧칠한 흔적을 만들어내고, 우연히 캔버스에 붙은 붓털을 재현하며, 마치 다락방에서 한 세기를 견뎌온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지저분함’ 자체만으로는 곧 별다른 증거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작품의 외형만으로 진정성을 판단하기 어려워질수록, 작품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창작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는 충분한 이해와 숙련을 갖춘 사람이 사용한다면 여전히 깊이 있는 예술적 매체가 될 수 있다. 사진과 디지털 도구 역시 한때 기술과 작가의 역할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뒤흔들었지만, 결국 탁월한 예술을 만들어내는 수단이 됐다. AI 역시 자신의 기본 설정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구체적인 선택을 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발전할 것이며, 이들은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한 작품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 만으로 예술적 가치가 결정된 적은 없다. 그 도구를 이용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얼마나 깊고 중요한 결과를 만들어내느냐가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는 손만 대면 세련된 이미지와 끝없는 변주를 마음대로 접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가 간직하거나 수집하게 될 작품은 어쩌면 다른 사람의 한계를 마주하게 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즉, 통제가 흔들렸던 지점이나,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에 예술가가 굴복해야만 했던 지점 말이다.

나는 우리가 ‘어수선함’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이유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여전히 시간과 노력, 헌신,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는 증거를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 Debbie Millman

한국어판 편집 조예은 에디터

이 기사의 원본보기: The Art of Mess in the AI Era

이 기사 공유하기:

조예은 에디터

기사 더보기

OTHER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