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와 2인전 연 흐엉 도딘 “덜어냄에 도달할 때 작품은 완성”
박서보미술관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에서 만난 흐엉 도딘. 고독한 수행을 통해 내면의 빛을 그려온 그의 회화 세계를 들여다봤다.
박서보와 2인전 연 흐엉 도딘 “덜어냄에 도달할 때 작품은 완성”
박서보미술관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에서 만난 흐엉 도딘. 고독한 수행을 통해 내면의 빛을 그려온 그의 회화 세계를 들여다봤다.
조예은 에디터

롤랑 바르트는 『영도의 글쓰기』(Le Degré zéro de l'écriture)에서 기존의 관습적 수사에서 벗어나려는 ‘영도의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규범적인 방식을 떠나 보다 중립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에게 완전히 자유롭고 순수한 언어는 불가능하므로, 그는 오히려 이러한 불가능성을 끌어안은 채 글쓰기의 가능성을 사유했고, 그 과정에서 ‘영도’를 ‘침묵’의 상태와 연결해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회화에서도 무언가를 덜어내고, 고정적인 형식으로부터 물러나며, 침묵에 가까운 내용에 가닿는 일이 가능할까.
현대 한국 미술계의 거장이자 단색화의 시대를 연 주역인 박서보의 ‘묘법(Écriture)’은 이러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끊임없이 긋고, 밀고, 덧칠하는 행위. 어린 아들이 공책에 글씨를 쓰다 뜻대로 되지 않자 연필로 빗금을 그어버리던 모습에서 ‘체념’과 ‘비움’을 발견해 시작된 묘법은, 오랜 반복과 수행을 거치며 자신을 비워내는 회화적 언어로 발전했다.
이를 공간으로 옮겨놓은 듯한 곳이 바로 박서보미술관이다. 지난 8월 21일 연희동에 문을 연 이곳은 박서보의 ‘집’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원래 기념관으로 계획했다는 설명처럼 지하 2층과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에는 아늑함이 감돈다. 외벽과 내벽, 천장 등에서는 묘법을 연상시키는 정갈한 수직선과 수평선을 발견할 수 있고, 빛에 따라 공간의 기운이 달라지는 화이트 큐브는 하나의 근사한 다락방처럼 다가온다.
특히 층마다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난 창문은 건물에 틈을 내어 밖의 풍경을 안으로 조화롭게 들여온다. 국내 자생식물로만 심어진 창밖 화단들은 작가가 채색 묘법에서 보이는 ‘숨구멍’을 연상시킨다. 덕분에 지하건 옥상이건 속이 트이는 느낌이 든다. 21세기 예술은 ‘흡인지처럼 보는 이의 스트레스와 불안한 심리를 빨아들여야 한다’라는 박서보의 말이 곳곳에 스며든 듯하다.

그러나 이 집의 주인공은 박서보만이 아니다. 박서보미술관은 이번 개관전을 통해 또 다른 작가를 불러들였다. 바로 흐엉 도딘(Huong Dodinh)이다.
흐엉 도딘은 1945년 베트남 속짱(Soc Trang)에서 태어나 1953년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서 판화, 석판화, 프레스코, 회화, 건축 등을 공부했다. 이후 프랑스를 기반으로 작업하며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구축해 왔다.
박서보의 묘법이 그랬듯, 흐엉 도딘의 회화 역시 반복과 절제의 과정을 거쳤으며, 오래 바라볼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조심스럽게 겹겹이 쌓아 올린 채색은 고스란히 그 시간을 품고 있다. 은은한 광택이 묻어나는 질감과 명암은 투명한 빛을 머금은 듯하다.
박서보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비움’을 향해가는 흐엉 도딘.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서 구축해 온 그의 회화는 어떤 시간을 거쳐 지금의 고유함에 이르렀을까. 전시 토크에서 마주한 고요함과 단단함을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작가에게 물었다.

Q 얼마 전 박서보미술관에서의 개관 전시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이 시작되며 바쁜 나날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지난 몇 주 동안 흩어져 있던 모든 것을 다시 모으고, 필요한 만큼 시간을 가졌어요. 다시 고요를 찾고, 어쩌면 지난 몇 주간의 감정들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Q 지난 2023년 페이스갤러리에서의 개인전 <VIE I VIDE> 이후 두 번째 서울 방문이에요. 서울에 대한 인상도 궁금합니다.
충만한 감정이에요. 호텔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조계사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간의 연속성을 느꼈어요. 제게는 무척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 순간 깊이 존재하는 무언가였죠.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는 듯한, 거의 ‘마땅함’에 가까운 감각을 느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깊은 열망도 품게 됐어요.
Q 박승호 이사장은 박서보미술관을 “박서보의 성전으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 작가의 가능성”을 일궈온 박서보의 철학을 이어 이번 개관전을 2인전으로 꾸렸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심경을 되돌아본다면요?
박승호 이사장은 대단한 선견지명을 가진 분이에요. 여성 작가들이 자신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자신의 예술을 보여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온전히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한 그의 선택은 앞으로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제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주신 것,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관의 역사에 제 첫 번째 돌을 놓을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매우 기쁘고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Q 베트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프랑스로 이주했습니다. 그 이후로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왔고요. 서로 다른 문화를 경유한 삶의 경험은 지금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두 문화는 서로 정반대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깊이 상호보완적이기도 해요. 두 문화는 저를 먹여 살리고 풍요롭게 했으며, 제 예술이 보편적인 예술이 되는 데 이바지했어요.
Q 어린 시절, 프랑스에서 ‘눈’을 처음 본 순간이 이후 ‘색’과 ‘빛’ 등 작업의 중요한 소재에 영감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장면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어린 시절 처음 눈을 발견했던 순간에서 비롯된 영감의 원천은 지금까지도 제 안에 계속 남아 있어요. 저는 과거를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요. 제게 과거와 현재는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죠. 색은 제게 명료함을 드러내고 빛을 나타나게 하는 수단이 되었어요. 눈이 녹으면서 그동안 감추고 있던 것을 드러내는 것처럼요.
Q 흐엉 도딘의 작품은 가까이에서 오래 바라볼수록 여러 층의 시간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을 활용하나요?
무엇보다도 몇 가지 물질적인 원칙을 지키는 데서 시작해요. 저는 작가를 위해 미리 만들어진 재료를 사용하지 않아요. 늘 직접 바인더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채석장에서 직접 가져오는 안료도 광물성 안료를 사용해요. 그리고 가장 밝은 색조에서 가장 어두운 색조로, 가장 따뜻한 색조에서 가장 차가운 색조로 층을 하나씩 쌓아 올려요. 저는 한 번 그린 것을 되돌려 고치지 않고 작업하기 때문에 높은 정확성과 인내심, 집중력이 필요해요.

Q 특히 ‘빛’은 작업 중에 궁극적으로 담고자 하는 요소이기도 한데요. 비단 물리적인 빛만을 의미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빛’이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내면의 빛이에요. 제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빛이죠.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빛이 아니라, 색과 물질을 통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빛이에요.
Q 매일 명상과 침묵 속에서 한 명의 장인처럼 모든 과정을 손수 다룹니다. 미리 그려놓은 목표를 따라가는 편이신가요, 아니면 그리면서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편인가요?
작품을 완성하는 행위는 다시 중심을 찾게 해주는 명상적인 행위예요. 그 작품에 들인 시간이 작품의 완성 자체를 좌우하지는 않아요. 무엇보다도 하나의 탐구이고,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우연도 없고 계산도 없어요.
Q 이러한 행위들이 단순한 ‘반복’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수행’에 가깝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수행과 수련은 하나의 전체를 이뤄요. 모든 작품은 저마다 고유하고, 각각 다른 여정을 선사하죠.
Q 이러한 기나긴 여정에서, 언제 '이제 이 작품은 완성됐다'라고 느끼는지도 궁금합니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이 마침내 덜어냄에 도달했을 때예요.

Q 이번 전시에는 하롱베이를 방문했을 때의 풍경을 묘사한 작품 <Untitled>(1992)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 섬들을 하나씩 새겨가는 과정에서 당시 고향을 다시 마주한 감정도 함께 담겼을 것 같은데요. 어떤 감정이라 볼 수 있을까요?
하롱베이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아요. 바위들이 이렇게 배치된 것이 자연의 손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손에 의한 것인지 거의 의문을 품게 될 정도죠. 그곳에서 느낀 모든 에너지의 흐름과 겸허한 관조 속에 잠겼던 경험을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이 작품에 담아냈어요.
Q 그런가 하면, 수많은 전쟁과 갈등을 경험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작품 <B5>(1994)도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과 1968년 5월 파리의 봉기를 경험한 적도 있다 보니, 개인적인 필요에서 출발해 공동체를 향한 위로에 도달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나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Q 대부분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을까요?
물론 제 작품 중에는 제목이 없는 것이 많아요. 작품들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고, 처음부터 전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에서도 제목을 붙이지 않았어요. 그들의 접근 방식과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저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들에게 그 자유를 남겨두고 싶어요.
Q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본인만의 고유한 언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어떤 회화적 모습을 추구하든, 저는 늘 제 탐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왔어요. 바로 명료함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Q 2023년 박서보 화백을 직접 만나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후 화백은 자신의 SNS에 “평생 비슷한 작업을 해와서일까, 아니면 우리 정도 연령대에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일까”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당시의 만남은 어땠는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서보 선생님과 만났던 순간 가운데 가장 강렬했던 것은 서로 손을 잡고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던 순간이에요. 그 침묵의 교류 속에서 우리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나눴어요.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깊고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듯한 순간이었죠. 어떤 통역도 필요하지 않았던, 강렬한 침묵의 순간이었어요.
Q 박서보 화백을 만난 직후 제작한 <X.K.N.31>에는 그날의 대화로 나눈 시선을 담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요?
우리 두 사람의 삶의 여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교감, 그리고 자신을 끌어올리고 각자의 예술을 끝까지 밀어붙이고자 하는 우리에게 공통된 극도의 열망을 표현했어요. 두 개의 선이 바로 그것을 나타내요.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가며, 그 무엇도 멈춰 세울 수 없는 두 개의 길이죠.
Q 이처럼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각자의 작업이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어떤 연대감을 느끼는지, 그런 감각이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자신을 고독한 화가라고 생각해요. 제 작업의 여정은 무엇보다 내면을 향해 있고, 저는 바로 그 고독 속에서 제 탐구를 계속해 나가야 할 필요를 발견해요.

Q 오랫동안 자신의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1981년 칸 국제회화대상 1등상과 1996년 프랑스 공로 은십자장을 비롯해 여러 수상과 전시를 거쳐왔죠. 2021년에는 파리 기메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베네치아와 서울, 뉴욕 등에서도 작품을 선보이며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있고요. 지금의 반가운 행보에 대한 소감은요?
오늘날 제 작품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아들 코아가 작품을 보여달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아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죠. 뒤늦게 제 작품이 인정받게 된 것이 깊이 마음에 와닿아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무엇보다 저는 여전히 제 탐구와 창작에 마음을 두고 있어요.
Q 이렇게 자신의 작업을 타인에게 건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의 내면세계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해요. 그렇기에 제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그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제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Q 지금까지의 작업이 '빛을 향한 여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어떤 빛을 향해 가고 싶나요?
제게 빛은 오직 하나뿐이에요. 바로 내면의 빛이죠.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그 빛을 향한 같은 여정을 계속해 나갈 거예요.

목표도 결과도 정하지 않고, 다만 매일 아침 조용히 명상의 시간을 가진 뒤 어김없이 작업에 착수하는 예술가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흐엉 도딘은 자신의 모든 작업을 손수 이어가는 작가다. 그런 사람이 그리는 그림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결이, 그리고 진심이 겹쳐 있을까.
그렇게 쌓아 올린 그림들은 대부분 ‘무제’이지만, 작품의 의미는 ‘무제’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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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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