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AI 열풍이 ‘제조업의 귀환’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미국에서는 AI 투자가 급증했지만 제조업 투자는 정체돼 있다. 높은 건설비와 인건비의 이중고 속에 미국은 핵심 산업의 생산 비용을 낮추고 정책 지원을 집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의 AI 열풍이 ‘제조업의 귀환’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미국에서는 AI 투자가 급증했지만 제조업 투자는 정체돼 있다. 높은 건설비와 인건비의 이중고 속에 미국은 핵심 산업의 생산 비용을 낮추고 정책 지원을 집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문정 에디터
산업부 이슈를 다룹니다.

미국 내 AI 투자 열풍이 뜨겁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한편, 많은 이들이 기대하던 ‘산업혁명’은 아직 요원하다.
미국의 AI 열풍은 투자 규모로 나타난다. 대규모 컴퓨팅 자원을 운용하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지난 20년 동안 연구개발과 자본 투자를 50배 늘렸다. 2005년 150억 달러 수준이었던 투자비는 지난해 7500억 달러까지 뛰었다. 올해 말에는 이들 기업의 합산 투자액이 1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막대한 투자비가 미국 산업 전반의 투자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AI 투자에도 미국 GDP에서 ‘생산적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큰 변화가 없었다. 생산적 투자는 공장과 장비, 인프라, 지식재산권 등 경제의 생산력을 키우는 자산에 투입되는 자본이다. 미래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꼽힌다.
이런 괴리는 미국의 미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생산적 투자는 앞으로 생산과 일자리, 성장이 어디에서 발생할지 보여주는 선행지표이기 때문이다.
WHY WE WROTE THIS
미국이 다시 한번 ‘제조업의 귀환’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도 대규모 투자는 물론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생산시설을 미국 현지에 구축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다시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생산적 투자 성과는 여타 선진국보다 좋았다. 그러나 중국은 매년 약 4조 4000억 달러씩 생산적 자산을 늘리고 있다. 이는 미국의 약 4배 규모다.
미국이 핵심 품목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려면 약 2조 달러, 즉 GDP의 약 6%에 달하는 추가 제조업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실제 제조업 분야의 투자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공장 건설 관련 투자는 2024년 정점을 찍은 뒤 2025년 말 6% 감소했다. 일반 산업 장비 투자도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올해 1분기 기계·장비 투자가 소폭 증가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2022년 시작된 리쇼어링 흐름 역시 수치상 정체된 모습이다. 최근 새로운 투자 계획이 잇따라 발표됐지만, 실제 공장 건설과 개발로 이어지기까지는 시차가 있다.
미국 제조업 부흥의 가장 큰 장벽 가운데 하나는 비용이다. 미국은 건설과 노동, 원자재, 장비 등 생산 과정 전반에서 비용 부담이 큰 나라다.
보조금을 제외하면 미국에서 반도체와 의약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가장 가격 경쟁력이 높은 지역보다 각각 40%, 60% 높다. 새로운 항체 의약품을 개발하는 비용도 중국의 2.7배에 달한다.
미국에 퍼진 고비용·저생산성
이러한 비용 격차의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우선 공장을 짓는 데 돈과 시간이 더 많이 든다. 미국의 건설비는 아시아의 약 2배 수준이다. 공사 기간도 최대 2배까지 길다. 최근 미국의 원전 건설은 완공까지 최대 10년이 걸린 반면 중국에서는 6년이 걸렸다.
또 다른 요인은 인건비다. 미국의 인건비는 중국이나 대만의 2~5배에 달한다. 과거에는 생산성 우위가 높은 인건비를 상쇄했지만, 현재는 비슷한 산업 환경에서 생산성 격차가 사실상 사라졌다.
가령 첨단 반도체 공장의 경우, 대만 엔지니어 한 명이 만들어내는 생산량은 미국 엔지니어보다 약 25% 많다. 반면 미국의 임금은 대만의 2.7배가 넘는다.
이 격차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모듈화다. 미국 내 생산 거점을 두려는 기업들이 부품이나 구조물을 현장 밖에서 미리 제작한 뒤 조립하는 방식이다. 모듈화를 활용하면 사업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자본 비용도 10~20% 낮출 수 있다. 기술 도입과 협업형 계약 등을 통해 건설비 자체를 절감하는 방법도 있다.
아울러 AI와 로봇을 중심으로 생산 방식을 재설계해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자체 분석 결과 이런 조치들을 통해 미국이 안고 있는 비용 격차의 절반에서 3분의 2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산업은 서비스 품질과 브랜드, 고객 접근성, 혁신 등으로 높은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
복잡한 의약품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이 제품군은 높은 수익성을 확보하는 한편, 10년 이상의 실질적인 상업적 독점권도 누릴 수 있다. 성능과 신뢰를 바탕으로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도 가능하다. 미국 시장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 전략적 투자 필요
정부 역시 선택과 집중에 나서야 한다. 모든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면서 보조금까지 지급할 수는 없다.
대신 미국 경제의 취약점을 해결할 수 있는 산업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미국이 수입하는 공산품 중 국가안보에 중요하고, 공급망이 특정 국가에 집중돼 있거나, 지정학적으로 먼 국가들의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들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전체 수입 공산품의 약 25%를 차지한다.
관건은 이 중 어떤 산업에 시장의 경쟁 조건 자체를 바꿀 정도로 개입할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선별적인 무역 조치와 금융 지원, 산업정책 등 상당한 규모의 정책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국제 무역 체제의 기존 불균형을 바로잡는 작업도 필요하다.
미국의 AI 투자 열풍은 엄청난 속도의 자금 동원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제조업 부흥을 위해서는 미국이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꿀 준비가 돼 있는지, 나아가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는지 묻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글 Shubham Singhal(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 회장), Anna Kortis(맥킨지 파트너), and Jan Mischke(MGI 파트너)
편집 최문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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