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멀어지는 캐나다, EU와 ‘독특한 동맹’ 찾는다

미국과의 무역갈등으로 대미 의존의 위험성을 체감한 캐나다가 유럽연합과 새로운 경제·안보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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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멀어지는 캐나다, EU와 ‘독특한 동맹’ 찾는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지난 8월 22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중단한 뒤 취재진에게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캐나다가 유럽연합(EU)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대미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중견국 연대’ 구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13일(현지 시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기자들에게 “우리가 앞으로 논의를 시작하려는 것은 EU와의 독특한 동맹”이라며 “우리는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우선순위도 같으며, 서로의 강점도 잘 맞물린다”고 말했다.

캐나다가 유럽으로 눈을 돌린 건 수개월 전부터다. 지난달 미국과의 협상이 결렬된 뒤 캐나다는 미국의 관세에 맞서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도 확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캐나다의 주권을 거듭 위협해왔다.

미국은 2025년 캐나다 상품 수출의 72.5%를 차지한 최대 교역국이다. 카니 정부는 이 같은 대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외교·경제 관계를 넓히고 있다. 취임 이후 인도네시아, 일본, 에콰도르 등과 무역·국방 협정을 맺었고, 지난해 6월에는 EU와 새로운 ‘안보·국방 파트너십(Security and Defence Partnership)’을 출범시켰다.

당시 공동성명에는 “우리의 파트너십은 민주주의, 인권, 법치, 개방적이고 규칙에 기반한 시장이라는 공통의 핵심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적혔다.

카니 총리는 지난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에도 합의했다. 이 역시 미국 시장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려는 행보다. 캐나다는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하던 100% 관세를 낮추는 대신, 중국은 캐나다의 주요 수출품인 카놀라 종자 등 농산물 관세를 인하하기로 했다.

카니 총리는 15일부터 사흘간 유럽을 방문한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를 비롯한 유럽 정상들과 만나고, 17일에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캐나다가 말하는 EU와의 ‘독특한 동맹’은 어떤 모습일까.

WHY WE WROTE THIS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인 캐나다가 대미 의존을 줄이고 EU와 새로운 연대를 찾아 나섰다. 기존 동맹과 무역질서가 흔들리면서 중견국의 경제·안보 전략도 재편되고 있다.

캐나다, EU 가입 추진하나

카니 총리는 캐나다가 EU 가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는 회원국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함께할 때 더 강하다. 세계가 더 위험하고 분열되는 지금 같은 때에는 친구끼리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EU 조약 제49조에 따르면 ‘유럽 국가(European State)’만 EU 가입을 신청할 수 있다. 캐나다는 애초에 가입 대상이 아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측 관계자들을 인용해 카니 총리가 캐나다의 EU ‘준회원국(associate member)’ 지위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울로프 길 EU 집행위원회 수석 부대변인은 14일 브뤼셀에서 기자들에게 “캐나다는 EU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파트너이자 가까운 친구”라며 “우리는 이런 협력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EU·캐나다 정상회의에서 전 분야에 걸쳐 매우 높은 수준의 협력 목표를 세웠다. 올해는 그보다 더 높은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캐나다와 EU가 실제로 어떤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지, ‘독특한 동맹’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프랑크 쉬멜페니히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유럽정치학 교수는 추가 무역협정을 맺거나, EU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EU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들의 모델을 참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쉬멜페니히 교수는 TIME에 “캐나다는 이미 비유럽 국가 가운데 EU와 가장 깊이 통합된 국가 중 하나다. EU와 가장 촘촘한 제도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2016년 EU와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을 체결했다. 2024년에는 EU의 공동 연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도 가입했다.

쉬멜페니히 교수는 “캐나다는 협력을 더 넓힐 수 있다. 아직 포함되지 않은 분야에 추가로 부문별 협정을 맺는 방식”이라며 “현재 관계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셈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EU 내부시장에 접근해야 하고, 그러려면 유럽경제지역(EEA)과 같은 형태의 협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경제지역(EEA)에는 EU 회원국이 아닌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등이 참여한다. 상품과 서비스,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여러 산업에서 EU와 협력할 수 있는 체제다.

쉬멜페니히 교수는 “EEA 국가들은 관련 EU 규정과 지침을 받아들이는 대신 EU 내부시장에 접근한다”며 “캐나다가 지금 맺고 있는 관계보다 법적으로 훨씬 더 긴밀하게 통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미국과 멀어지고 EU와 가까이

지난 8월 26일 미국 워싱턴DC의 캐나다대사관 외벽에 캐나다와 미국의 협력을 상징하는 배너가 걸려 있다. 당시 캐나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캐나다 관세에 맞서 약 2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 700여 종에 15~50%의 보복관세를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카니 총리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국제적인 규칙 기반 질서에 ‘균열’이 생겼다고 선언했다. 강대국이 관세와 금융시스템을 강압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다.

당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병합을 추진하고 유럽 동맹국에 대한 관세 압박을 키워 미국과 유럽의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다.

패트릭 르블롱 오타와대 부교수는 “미국은 점점 더 보호무역주의와 민족주의로 기울고, 캐나다와 유럽처럼 가까운 동맹국에 대해서도 우위를 이용해 양보를 받아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카니 총리의 최근 행보도 이런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르블롱 부교수는 TIME에 “캐나다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개방된 시장, 법치, 국제협정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들과 더 협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카니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이 EU”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움직임이 “궁극적으로는 다른 나라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고 봤다. 카니 총리가 자주 언급해 온 ‘중견국’ 연대다.

카니 총리는 지난 7월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과 공동 기고문을 내고 “세계의 중견국들이여, 단결하라”고 촉구했다.

두 정상은 상당한 경제력과 외교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시장 규모나 군사력에서는 강대국에 미치지 못하는 중견국의 역할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우리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개척할 투지와 ‘시수(sisu)’가 있다. 그리고 이 여정에 함께하자고 우리가 손 내미는 다른 많은 나라들 역시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수’는 역경 속에서도 버티고 밀고 나가는 끈기와 강인함을 뜻하는 핀란드어다.

르블롱 부교수는 미국에 대한 신뢰가 결국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트럼프를 그저 완고한 보수 정치인(blimp)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정치적 양극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많은 캐나다인이 이제 더는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여론도 달라졌다. 나노스리서치가 8월 30일부터 9월 2일까지 실시한 조사 결과, 캐나다인의 74%는 “미국은 캐나다가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라는 말에 반대했다. 앵거스리드연구소가 지난 7월 10~14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2%가 캐나다 정부가 미국을 적국 또는 잠재적 위협으로 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EU도 관세와 그린란드 병합 위협 등을 놓고 트럼프 행정부와 충돌해 왔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2월 유럽과 미국 사이에 “깊은 균열”이 생겼다며 미국이 “혼자서 나아갈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이란 전쟁을 거치면서 양측 관계는 더 악화했다.

카니, 유럽의회에서 ‘중견국 연대’ 확장할까

카니 총리는 이번 주 로베르타 메솔라 유럽의회 의장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럽의회 연설에 나선다.

르블롱 부교수는 “카니 총리가 EU에 캐나다와 함께 협력의 범위를 북대서양 너머로 넓히고, 인도·태평양의 파트너와 동맹국까지 끌어들이자고 촉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카니 총리는 ‘유럽연합 현황(State of the European Union)’ 토론에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집행위원회의 주요 업무와 향후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 5월 캐나다 주재 EU 외교 대표부 설치 50주년을 기념하면서 EU와 캐나다 관계를 “세계에서 가장 긴밀한 파트너십 가운데 하나”라고 표현했다. 전쟁과 에너지 위기, “오랜 동맹에 새롭게 생겨난 균열”을 함께 겪으며 양측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고도 말했다.

쉬멜페니히 교수는 캐나다가 EU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두고, 미국과의 관계 악화가 “캐나다와 EU 각각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세계가 캐나다와 EU 모두에게 더 위험하고 어려운 곳이 되고 있다. 그래서 서로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글 Tiago Ventura

한국어판 편집 장유정 기자 chlo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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