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광주는 명분이었다”

800조 원 반도체 팹을 약속받은 두 달 반 동안, 실제로 움직인 곳은 용인과 인디애나와 무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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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광주는 명분이었다”
광주 군 공항에서 이륙 준비 중인 제1전투비행단 훈련기. 사진=연합뉴

6월 29일, 정부는 광주 군공항에 800조 원짜리 반도체 팹 4기를 짓겠다고 공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30년 첫 양산을 약속하면서 그의 장기인 “전격전”을 말했다. 그리고 두 달 반이 지났다.

전격전은 한발짝도 못 나갔다. 미국이 동의해야 공항을 비우는데, 동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항 일부는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에 공여돼 있다. 유사시 미군 항공전력이 이곳에서 뜬다. 미 7공군은 지난 7월 10일 “광주기지에 중요한 군사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미군 시설 이전을 위한 한미 포괄협정은 2024년 가서명 이후 2년째 미체결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해봐야 미국에 팹을 지으라고 할 판이다.

전남광주특별시 고위 관계자는 “기대하면서 긍정적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호의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단 뜻이다.

지연의 징후는 곧바로 나왔다. 삼성전자는 6월 29일 올렸던 공시를 이튿날 정정했다. “현재 시황에 근거한 장래 계획으로, 이해를 돕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란 문구를 더했다. SK하이닉스는 정정 증권신고서에 “서남권 부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전격전은 정작 다른 곳에서 치러졌다. 8월 12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용인 반도체 팹의 최종 완공 시점을 7년, 12년 앞당기기로 하면서 기후에너지환경부, 한국전력과 ‘적기 전력공급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또 SK하이닉스는 8월 27일 미국 인디애나 HBM 패키징 공장의 첫 삽을 떴다. 투자 발표 2년 4개월 만이었다. 업계에선 착공 시점을 미국 통상 협상과 연계한다고 봤다. 국방부는 8월 28일 광주 군공항 이전 후보지로 무안군 망운면을 선정했다. 광주시에서 이전 건의서를 낸 지 12년 만이었다.

“모두에게 광주는 명분이었고, 몸통은 각자 다른 곳에 있었다.”

반도체 업계에 밝은 한 인사의 말이다. 정부는 임기 내 성과가, 광주시는 12년 묵은 군공항 이전이, 기업은 용인 팹 조기 가동 등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2년이면 됐을 대안

사실 광주엔 이미 삼성 공장이 있다. 1989년 광주전자로 문을 연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이다. 이 공장 한 해 매출은 5조 원, 광주 가전사업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공장 규모는 점차 줄어갔다. 2024년 말 박수기 당시 광주시의원은 이곳 냉장고 생산 라인 일부를 멕시코로 이전한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삼성 광주사업장은 2010년, 2014년, 2016년에도 생산 라인 일부를 해외로 이전해 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지역경제를 지키기 위해 행정력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시에 촉구했다.

이 공장을 첨단 패키징 라인으로 전환하자는 안이 이미 4년 전에 나왔다. 2022년 6월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에서였다. 당시 특위 위원장은 광주 서구을의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었다. 첨단 패키징은 반도체 웨이퍼에서 잘라낸 칩을 조립해 실제 제품으로 완성하는 공정으로, D램을 엮어 만드는 HBM이 대표적이다.

특위에 참여했던 산업계 인사의 계산은 이랬다. 공장 짓는 데 1년, 장비 들이는 데 6개월, 테스트에 6개월. 그러면 2년 안에 가동할 수 있다. 투자비도 10조원 안팎이면 충분하다고 봤다. 기존 부지를 쓰니 새 송전망도, 새로운 용수도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충남과 전북의 반도체 소재 협력사가 가까웠고, 무안공항으로 항공 물류를 뺄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무엇보다 군공항 이전도, 미군 협의도 필요 없었다.

이 인사는 “있는 공장을 재활용하는 것이 가장 낫다”고 했다. “(광주사업장의) 기존 고용을 유지하려면 산업군을 더 앞선 쪽으로 계속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국회 지형이 바뀌면서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정부의 선택은 달랐다. 광주 군공항에 팹 4기, 800조 원, 2030년 양산이었다.

2년이면 가동될 수 있었던 10조 원짜리 안은 기록에도 남지 못했다. 지금 광주에 남은 것은 축소를 거듭한 냉장고 라인, 미군이 언제 비켜줄지 모를 활주로다.

문상덕 기자 mosadu@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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