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인비인人非人’의 이야기

성해나의 소설집 『인비인』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를 묻는다. 역사적 망각과 욕망의 거래, AI와 휴머노이드의 등장까지. 기묘하고 서늘한 이야기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모순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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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인비인人非人’의 이야기
성해나 작가의 기담집, 『인비인』 표지.사진=한겨레출판

기담집. 기묘하고 서늘한 이야기를 모은 이 단편집은 사전적으로 풀이하자면 ‘기담-괴설(奇談怪說)’에 가까울 것이다. 성해나 작가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돌아보며 9개의 ‘기이하고 괴상한’ 소설들을 한데로 묶었다. 그리고 그 소재들은 모두 우리가 무심코 넘어가는 것들에 집중되어 있다. 조용히 묻어가던 역사적 사실들, 익숙해진 현실의 조건들, 으레 짐작하는 미래의 모습들까지.

이들과 관련한 짧은 에피소드들을 써 내려가며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인간의 ‘인간성’과 ‘비인간성’에 대해서. 그것의 구분이 아직 유의미한지에 대해서. “인간 아닌 인간.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괴수나 AI일 수도 있고 귀신 혹은 신일 수도 있지만, 인간 그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51쪽)라고 경고하면서 말이다.

내지 곳곳에 장면 구분을 위해 놓인 ‘∞’ 모양의 표식은 그러한 문제의식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이자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한’의 상징으로 이것이 연속적인 고발임을 밝히는 것이다. 보다 건조한 문체로 다루는 현실적인 사건들은 섬뜩하고 날카로운 통찰로 이어진다.

어제는 누가 책임지는가

『인비인』의 ‘어제’에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증표로 대물림되는 것들이 있다.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가타마리’라 불리는 생명체, 가보로 내려오는 도검 한 자루. 이는 친일의 흔적으로서 누군가에게는 영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었던 기억을 상징한다.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속 황국신민의 선언으로 받은 책상은 끊임없이 ‘악취’를 풍긴다. 왜곡된 ‘충성’의 역겨움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무고한 시민의 희생이 발생하니, 그 여파 역시 상당하다. 그러나 예민하다가도 점차 무뎌지는 후각처럼, 이 사건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흠은 파내고 구실은 잘 덮으며’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는 후손들 때문이다.

「인비인人非人」은 그런 속 편한 합리화가 끝내 어떤 괴물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가타마리(かたまり)’는 731부대의 잔혹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해괴한 ‘덩어리’다. 그의 생존 방식은 일본인에게 착 붙은 조선인을 연상시키고, 그가 내뱉는 ‘오야지(おやじ)’는 성까지 바꿔가며 비굴하게 굴던 주종의 관계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 땅속에 묻어 애써 감추려 한들, 그 죄는 없어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를 부정하는 순간이 극에 달하는 건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에서다. ‘고조부가 고종에게 하사받았다’던 검이 실은 일제가 친일한 관리들에게 건넨 것으로 밝혀지자,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진 이유로 유대감을 이어가던 종친회는 혼란을 겪는다. 전문가의 감정을 ‘시청률에 눈멀어 음모를 자행’한 ‘흑색선전’이라 외치는 주장에는 모욕감이 숨어 있다. 이는 ‘너무 오래 살았다’며 ‘부끄럽다’고 중얼거린 조부의 수치심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순간들을 관찰하는 화자로서, 또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은 당사자로서 등장하는 서로 다른 ‘나’는 때로는 안일하고, 때로는 무심하며, 때로는 일말의 부끄러움을 갖고 있다. 결코 달갑지 않은 역사적 진실이 자신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실제 역사와 자신의 경험에서 소재를 가져온 단편들을 통해 작가는 과거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부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선대가 저지른 잘못과는 다른 길을 택하는 것. 그것이 후손으로서 해야 할 일임을, 또 할 수 있는 일임을 명확히 한다.

오늘은 누가 소비되는가

『인비인』의 ‘오늘’에는 타인의 삶을 사거나 대신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녀’는 김수현을, 채드는 프랭크 오자와를, 이원필은 샹샤오잉을 골랐다. 그렇게 자신과는 다른 이름과 정체성으로 새로 태어나는 가운데, 이들의 욕망과 결핍 역시 드러난다.

「매일買日」의 그녀는 주변인들의 끝없는 갈망 속에 ‘소유’로 빽빽한 삶을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충만했을지 모르나, 더 누리려 하고 악착같이 지키려 하는 상황은 다소 지나치게 느껴진다. 그런 그 앞에 삶을 사고팔 수 있는 ‘블루소셜클럽’이 나타난다. 그리고 4월 1일, 거짓말처럼 진행된 경매에서 그녀는 재력, 관계, 재산, 경력까지 깔끔하게 백지인 김수현의 삶을 구매한다. 생일을 맞아 다시 태어날 기회를 손에 쥔 것이다.

「프랭크 오자와」 속 미국의 채드도 비슷한 선물을 받았다. 프랭크 오자와의 ‘넓고 쾌적한 주택’과 ‘번듯한 학벌’, ‘투자자로서 성공한 삶’을 단돈 100불에 구매한 것이다. 그러나 대화 내내 자신의 눈치를 보는 친구들이 낯설었던 그는, ‘알파메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찌질한 채드를 향한 비난에 식은땀을 흘린다. 외양은 달라졌어도 자신을 학대하고 여성 혐오 범죄자를 찬양하며 서열에 오르고 싶었던 기억만은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소되지 못한 열등감마저 넘어서는 듯한 인물이 「윤회 (당한) 자들」 속의 이원필이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영화감독으로서 패배감에 시달리다 끗발 날리는 소재를 찾기 위해 ‘전생을 아는 윤회자 모임’에 참석한다. 그러고는 경극 배우 샹샤오잉을 연기하며 다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결국 이 기이한 자리에서 강한 소속감과 존재감을 느낀 그는, 마침내 ‘운명적’으로 ‘열반’에 이르려는 쓸모를 찾게 된다.

작가는 ‘인생 경매’라는 세계관을 「매일買日」과 「프랭크 오자와」에 동일하게 적용한다. 또한, 앞선 「인비인人非人」 속 ‘지구를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의 사연까지 영화’로 만든 선생(‘나’)과 「윤회 (당한) 자들」 속 ‘지평설을 믿는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만든 이원필이 같은 인물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던 단편들로 ‘오늘’이라는 평행 세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을 규정짓던 경제적 굴레와 사회적 평가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나로 거듭나려 한다. 자본주의에서의 소외와 성과사회에서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라는 많은 이들의 염원이 스치는 순간이다.

내일은 누가 살아남는가

『인비인』의 ‘내일’에는 AI와 로봇, 인간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등장한다. 휴머노이드 야키마 H1, 챗봇을 제작하는 노동자, 다시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7.5세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모를 복잡한 SF 서사 속에서 이들의 존재 의미와 관계는 끊임없이 곱씹어진다.

「아미고」의 휴머노이드 야키마 H1은 ‘아미고’라는 이름의 스턴트맨이다. 그를 재회한 죠는 마음이 편치 않다. ‘동료들을 실직’으로 내몰고 ‘촬영장을 점거’한 기계인 데다가, 실력과 인간적인 모습까지 나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미고 역시 매번 목숨을 거는 죠를 은근히 경계하며, 그 대신 위험을 무릅쓰다 결국 망가져 버린다. 빠르게 자동화되는 환경 속에서 언제 대체될지 모르는 두 존재는 묘한 동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냉정함에 안식처를 잃은 노동자들이 「#유령」의 0과 1이다. AI에게 일자리를 잃은 1과 달리 0은 챗봇의 ‘터크’에서 ‘태거’로 승진하며, ‘유해 언어와 혐오 표현’을 순화하다 새로운 정밀 태그를 제작하게 된다. 그러나 임신을 계기로 0은 또 다른 불안을 마주한다. 고강도의 감정 노동을 감수하는 사이, 정작 자신의 아이가 흡수할 나쁜 언어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그는 ‘환희’가 되어줄 새 생명을 포기하기로 한다.

반면, 「고蠱」의 한의사 이익은 내 ‘편’이 되어준 옵티머스 7.5세대 도윤을 끝내 놓지 못한다. ‘사후 초상권 기증’의 실패한 모델이었던 그는 독이자 약인 ‘고’를 제조하고, 한의학까지 두루 익힌 훌륭한 조수가 된다. 물론 자신에게 맞춰진 도윤이 언젠가부터 질문하고 요구하자, 이익은 그를 제압하고 파괴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다시 그를 찾아간다. 필요에 따라 의존하며 ‘누가 머리고 꼬리인지’ 알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처럼 ‘내일’ 속 인간들은 “어설프게 닮으면 불쾌하고, 보다 우월하면 경이롭지만, 구별되지 않으면 공포스러워진다”라는 비인간들과 공생한다.(p.280) 휴머노이드의 활용으로 현실에 스며든 급격한 변화는 ‘신新러다이트 운동’까지 펼치는 극심한 반감으로 번지기도 한다.

비인간에 의해 내몰리는 인간의 무서움은 현실적이다. 동시에 인간에 의해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비인간을 향한 불편함 역시 실재한다. 이런 감정들은 결국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도태되지 않고 사라지지 않기 위해 경쟁해야만 하는, 생존을 향한 과도한 의지의 부산물로서 말이다.

인간 아닌 인간은 무엇인가

『인비인』 속 「인비인人非人」의 삽화 이미지. 사진=© 지정

『인비인』의 중심에는 욕망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뻔뻔하다가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불안해하다가도 해탈하며, 두려워하다가도 적응한다. 어쩌면 이러한 자기 모순성이야말로 인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지 모른다. 그동안 인간적인 지표라 여기던 도덕성과 공감 능력이 한껏 뒤틀리며, 인간적인 비인간과 비인간적인 인간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며 작가는 성찰을 이어간다. 물리고 물리는 하나의 단상 뒤에 짧은 해설을 덧붙이면서.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라는 듯이.

조예은 에디터 sophi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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