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너머, 익명의 고백에 빠져드는 이유
레딧의 새로운 게시판에는 평범한 음식 사진과 함께 익명의 사연이 쏟아진다. 연구자들은 온라인에서의 공유가 현실의 관계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화면 너머, 익명의 고백에 빠져드는 이유
레딧의 새로운 게시판에는 평범한 음식 사진과 함께 익명의 사연이 쏟아진다. 연구자들은 온라인에서의 공유가 현실의 관계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장유정 에디터

지난 1월,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이름은 ‘r/GirlDinnerDiaries’. 현재 구독자 수는 600만 명에 달한다.
사람들은 이곳에 음식 사진 한 장과 함께 글을 올린다. 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거나 조언을 구하는 식이다. 지금 먹고 있는 음식 사진이어도 되고, 자신의 기분을 보여주는 다른 식사 사진이어도 된다.
“내 파트너는 내가 엄마가 된다는 생각만 해도 혐오감을 느낀다.”
“이제는 절대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다.”
클럽에서 먹은 감자튀김, 식당의 아침 부리토, 키보드 앞에서 플라스틱 포크로 급하게 먹은 전날 점심. 무거운 고백과 달리 사진은 평범하다.
음식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속얘기를 나누는 경험을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셈이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늦은 밤까지 근황을 나누고 수다 떠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왜 이 많은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는 타인의 고백에 이토록 빠져드는 걸까.
개인적이고 민감한 정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행위를 학계에서는 ‘자기공개’라고 부른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를 인간의 신뢰와 관계에서 찾는다.
WHY WE WROTE THIS
‘걸 디너(Girl Dinner)’는 빵이나 치즈, 남은 음식처럼 간단한 것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인터넷 유행어다. 레딧에는 여기에 저마다의 사연까지 곁들이는 공간이 생겼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완벽하게 연출된 모습보다 솔직하고 일상적인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나를 드러내며 주고받는 믿음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Revealing(드러내기)』의 저자인 레슬리 존은 심리학자 다이애나 타미르와 제이슨 P. 미첼이 진행한 실험을 예로 든다. 연구진은 참가자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하면서 일반적인 상식 문제와 자기 자신에 관한 질문에 각각 답하게 했다.
존은 “자신에 관한 질문에 답한 사람들은 뇌의 쾌락 중추가 활성화되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상당히 강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존은 자기공개가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필요한 행동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추측한다.
“개인적이거나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사회적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당신이 나를 바보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믿지 않았다면 이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존은 이런 행동이 상대방의 신뢰도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먼저 신뢰를 보이면 상대도 신뢰로 답한다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예상 밖의 결과도 있었다. 사람들은 나쁜 일을 저질렀냐는 질문에 답을 피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인정한 사람에게 더 호감을 보였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답을 피하는 것보다 최악의 일을 인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완벽한 조명 아래에서 촬영한 음식 사진이 넘쳐나는 인스타그램 시대에, 전날 먹다 남은 바비큐나 해고당한 일을 곱씹으며 먹은 브라우니를 그대로 찍어 올리는 것도 비슷하다. 꾸미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게 존의 설명이다.
인터넷이 자기공개의 공식을 바꿨다

그동안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자기공개를 주로 현실에서 아는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행위로 봐왔다. 텔아비브대 사회학자 타마르 아슈리는 1950~1960년대 초기 자기공개 연구는 대면 상호작용을 주로 다뤘다고 말했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 관계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죠. 자기공개 없이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요.”
자기공개의 또 다른 전형적인 상황은 ‘기차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다. 이 역시 얼굴을 맞대고 이루어지는 대화지만, 이후 관계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만날 가능성이 낮은 만큼, 속내를 털어놓는 데 따르는 부담도 작다.

인터넷, 특히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새로운 형태의 자기공개를 만들었다. ‘r/GirlDinnerDiaries’ 사용자들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한다. 익명이지만 게시물은 누구나 볼 수 있다. 직접 만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이 독특한 구조는 우연에서 출발했다. 커뮤니티를 만든 젊은 여성 테일러는 성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테일러는 원래 ‘r/GirlDinner’라는 다른 게시판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사람들의 취향이 둘로 나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음식 사진만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 음식에 얽힌 일상의 이야기까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테일러는 두 가지를 모두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r/GirlDinnerDiaries’를 만들었다. 게시판은 곧바로 이목을 끌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여자 친구들과 나가서 술도 마시고 간단한 안주도 먹으면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거예요.” 테일러는 말했다. “‘r/GirlDinnerDiaries’에서는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고도 그걸 할 수 있죠.”
모든 이야기가 무거운 것은 아니다. 테일러가 가장 좋아하는 게시물은 한 사람의 행복한 하루를 담은 글이다. 글쓴이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남편이 자신을 위해 보물찾기 이벤트를 준비해뒀다고 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이 함께 먹은 부라타 치즈 파스타 사진도 함께 올렸다.
“꽤 근사해 보였어요. 아주 맛있어 보였고요.”
평범한 음식으로 시작된 이야기
이곳에서 음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아슈리는 “음식은 매우 긍정적이고 평범하며, 문화적으로도 익숙한 소재”라며 “바로 그 음식이 사람들이 아주 특이한 사연을 표출하도록 도와줍니다. 음식이 특별한 일을 조금 더 평범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슈리는 최근 올라온 한 게시물을 예로 들었다. 한 여성은 생일 케이크 사진과 함께, 아들과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서 생일을 보낸 사연을 올렸다. 아슈리는 “바로 이런 조합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범한 음식 사진이 무거운 사연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셈이다. 어떤 날은 먹다 남은 치미창가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들여다본다.
대신 아무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댓글은 승인을 받은 이용자만 달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공간인 만큼, 한 겹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드러내기, 다다익선은 아냐
그렇다고 모든 고민을 인터넷에 털어놓는 게 좋은 건 아니다. 존은 온라인에 하소연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에서 직접 대화를 나눌 때와 같은 효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소셜미디어는 여러 면에서 자기공개를 쉽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실제 사회적 유대나 연결감처럼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매일 소셜미디어에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이 정신건강 지표에서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점수를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 온라인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위로나 확신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하면 오히려 크게 상처받을 수 있다. 계속해서 안심을 구하는 것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존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말하는 것’의 위험은 과대평가하고, ‘말하지 않는 것’의 비용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경험을 글로 옮기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의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겪은 일을 혼자 글로 써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고통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일부 환자에게서는 면역체계가 개선되는 효과도 나타났다. 존 역시 자기공개에 관한 책을 쓰기 전까지는 자신의 연구를 스스로의 삶에 적용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나’, ‘TMI였나’ 하고 민망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봤어요. 그 순간에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매번 장기적으로 그 일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놀랍고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은 존의 생각을 바꿨다.
“그 이후로 우리가 내리는 판단에는 체계적인 편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당장은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신뢰하고, 좋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죠. 그런 효과는 시간이 지나야 찾아옵니다.”
글 Veronique Greenwood
한국어판 편집 장유정 에디터 chloe@tim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