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앱들이 시들어간다
앱은 연애의 모호함을 지워버렸다. 그러나 사랑은 이겨야 할 게임도, 뚫어야 할 알고리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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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ing Apps Are Dying
문상덕 에디터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데이팅 앱을 지웠거나, 멈췄거나, 지울 생각을 하고 있다. 앱 아이콘은 아직 휴대폰 어딘가에 남아 있다. 다만 잠들어 있다. 열리지 않고,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지도 않는다. 있다는 사실만 남은 아이콘이다.
나는 8년간 여러 데이팅 앱을 썼다. 그곳에서 만난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했다. 두 번째 만남까지 간 경우조차 손에 꼽는다. 첫 데이트는 대개 실망으로 끝나거나, 서로 조용히 사라지거나, 둘 다였다.
내 이야기가 유별난 것은 아니다. 소셜미디어에는 “데이팅 앱은 끝났다”는 선언이 넘친다. 지난 2월 미국 여론조사기관 해리스폴 조사에서 싱글의 3분의 2가 앱을 쓰지 않는다고 답했고, 미국인 80%는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을 “귀엽다” 혹은 “멋지다”고 평가했다. 지난 1년, 나 역시 화면 밖에서 만난 남자들에게 훨씬 마음이 갔다.
WHY WE WROTE THIS
금요일 밤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덧붙여, 데이팅 앱의 인기가 실제로 시들하다. 틴더, 힌지를 운영하는 매치그룹의 유료 사용자 수는 지난 2분기 기준 1325만 명으로, 3분기 연속 줄었다.
왜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데이팅 앱이 시들어가는 이유는, 연애에 필요한 세 가지, 즉 인내심과 호기심, 그리고 감정의 투자를 그 앱이 전혀 권하지 않기 때문이다.
풍요가 만든 피로
앱은 풍요를 약속한다. 소파에 앉은 채로 수백, 수천 명의 후보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풍요에는 대가가 따른다. 앱을 열 때마다 우리는 작은 결정을 줄줄이 내려야 한다. 넘길까 남길까, 말을 걸까 말까, 대화를 이어갈까 끊을까, 약속을 잡을까 더 둘러볼까.
이 과정이 사람을 소진하게 만든다는 근거가 있다.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관계와 기술 연구소’를 이끄는 리젤 샤라비 교수 팀은 데이팅 앱 사용자를 12주간 추적했다. 시간이 갈수록 정서적 탈진과 무력감이 함께 커졌다.
“과제의 규모 자체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영국 배스대 심리학과 새뮤얼 힙키스 박사후연구원의 말이다. 앱은 오프라인에서라면 평생 마주치지 않을 숫자의 사람을 눈앞에 늘어놓고,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에 대해 수백 번의 판단을 요구한다. 남는 것은 결정 피로와 냉소다.
거절은 언제나 연애의 일부였다. 다만 앱은 그 노출량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답 없는 메시지, 사라진 매치, 설명 없는 잠수. 하나하나가 작은 값을 청구한다. 그 청구서가 쌓이면 사람은 과정 자체를 믿지 않게 되고, 어느 한 사람에게 마음을 걸 의지를 잃는다고 힙키스는 말한다.
나도 정확히 그랬다. 2년 전 매치그룹의 데이팅 앱 ‘힌지’에서 만난 남자와 다섯 번 만났다. 내 스스로 내가 아직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고, 소셜미디어가 주입한 ‘슬로 번’(천천히 타오르는 사랑)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진실은 초라하다. 만남이 이어진 이유는 그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앱에서 만난 다른 남자들보다 그가 30%쯤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먼저 알아챘다. 내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관계를 끝냈다. 잘한 일이다. 나는 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정직하지 않았다. 나는 재앙이 없는 상태를 연결이라고 착각했다.
게임이 된 연애
앱은 그 착각을 쉽게 만든다. 복잡하고 더딘 사회적 과정을 즉각적이고 측정 가능한 것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화면 밖의 끌림은 모호한 신호를 타고 자란다. 대화의 결, 익숙해지는 속도, 몸의 방향, 타이밍, 그리고 한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시간. 앱은 이 불확실성을 명료한 결과로 압축한다. 스와이프 라이트냐, 레프트냐. (※데이팅 앱에 올라온 상대방 프로필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는 동작. 오른쪽은 호감을, 왼쪽은 비호감을 뜻한다.) 매치냐 아니냐. 답장이냐 침묵이냐. 요컨대 앱은 연애를 게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는 일도, 관계를 맺어가는 일도, 이겨야 할 경기나 뚫어야 할 알고리즘이 아니다.
철학자 카림 네이더는 데이팅 앱이 배우자 선택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단순하고 분절된 결정의 연쇄로 바꾼다고 지적했다. 그 사이 목표는 조용히 옮겨간다. 관계를 만드는 일에서, 매치 건수를 모으는 일로.
매치는 성공의 눈금이자 즉각적인 인정이다. 양쪽 모두 말을 걸 생각이 없을 때조차 그렇다. 게다가 매치는 예측할 수 없게 도착한다. 간헐적 보상이다. 실망스러운 스와이프마다 ‘다음엔 될지도’라는 가능성이 딸려 온다.
그 불확실성이 우리를 붙잡아둔다. 동시에, 매치의 짧은 쾌감을 관계라는 긴 목표에서 떼어놓는다.
앱을 열 때마다 이 장면을 본다. 어제 나는 열두 명과 매치됐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두 명. 나머지 열 명은 거절도 추구도 아닌 상태로, 이른바 매치 연옥에 남아 있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답이 없는 일이 흔하다. 많은 사용자에게는 매치 그 자체로 충분한 듯하다. 화면 저편의 사람은 부차적이고, 누군가 자신을 골랐다는 증거가 본론이 된다.
탈진과 냉소에도 게임은 계속된다. 우리는 거의 자동으로 앱을 열고, 몇 분 넘기고, 작은 보상을 기다린다. 짝을 찾는 일보다 캔디크러시에 가까운 행동이다.
사람이 상품이 될 때
선택의 문제도 있다. 한 실험에서 연구진이 사용자에게 더 많은 프로필을 보여줬더니, 선택 과부하와 ‘혼자 남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커지고 자존감은 낮아졌다. 다른 연구는 거대한 후보군에 오래 노출되면 ‘거절 마인드셋’이 생긴다고 본다. 스와이프를 계속할수록, 사람을 걸러내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2초 안에 한 사람을 지울 수 있다. 머리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서, 키가 내 기준 밖이어서. 얄팍한 판단이다. 그러나 앱이 부과한 과제를 생각하면 예측 가능한 반응이기도 하다. 정보는 적고 결정은 수백 개일 때, 인간은 지름길을 쓴다. 사진 한 장, 직업 한 줄, 어색한 자기소개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인격을 대신한다.
동시에 무한한 공급은 거절의 체감 비용을 떨어뜨린다. 더 나은 수백 명이 대기 중인데, 왜 불완전한 한 사람이 혹시 맞을지 알아보느라 시간을 쓰겠는가.
누군가를 고른 뒤에도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화가 잘 풀리는 중에도, 몇 번의 데이트 뒤에도, 앱은 여전히 휴대폰에 남아 더 웃기고 더 매력적이고 더 잘 맞을지 모르는 누군가를 암시한다. 다음 사람은 늘 대기하고 있다.
한 친구는 이것을 원피스 쇼핑이나 시승에 비유했다. 다른 매장에 더 싼 가격, 더 잘 어울리는 물건이 있을까 봐 첫 번째를 고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데이팅 앱은 사람을 그렇게 다루도록 가르친다. 빠르게, 비교하면서, 업그레이드가 곧 나올 거라는 전제 아래.
이것이 데이팅 앱의 역설이다. 선택의 폭이 넓으니 완벽한 상대를 찾기가 어느 때보다 쉬워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넓어진 폭이 한 사람을 궁금해하고, 모호함을 견디고, 내 선택에 만족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보상이 목적과 거의 무관한 게임에 갇혔다. 그래서 사랑을 찾는 많은 이가 지금 앱과 이별하고 있다.
이제 용감해질 차례다. 문을 열고 나갈 차례다.
글 Meehika Barua,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현재 우정과 사랑에 관한 회고록을 집필 중이다.
한국어판 편집 문상덕 에디터 mosadu@tim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