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진단을 숨길 때 치러야 할 대가
치매 진단을 숨길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질병을 감추는 문화는 환자를 고립시키고 돌봄 공백을 키우며 치매를 둘러싼 낙인을 더욱 굳힐 수 있다.
치매 진단을 숨길 때 치러야 할 대가
치매 진단을 숨길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질병을 감추는 문화는 환자를 고립시키고 돌봄 공백을 키우며 치매를 둘러싼 낙인을 더욱 굳힐 수 있다.
최문정 에디터
산업부 이슈를 다룹니다.

로널드 레이건, 찰턴 헤스턴, 토니 베넷, 대니 글로버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마거릿 대처, 노먼 록웰, 숀 코너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기억력과 일상생활 능력이 점차 떨어지는 신경계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이나 치매를 앓았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 번째 그룹은 생전에 자신의 진단 사실을 공개했지만, 두 번째 그룹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이 치매를 앓았다는 사실은 사망한 뒤에야 유족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WHY WE WROTE THIS
2026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약 101만 명에 이른다.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진단을 숨기고 주변과 관계를 끊거나 가족 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환자의 고립과 돌봄 공백이라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개인의 건강 정보는 사생활의 영역으로 보호받아야 하며, 이는 기본적인 권리다. 그렇다면 유명인이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질병을 진단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떤 이들은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과 팬들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병을 공개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앓는 질병을 세상에 알리고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공개하기도 한다.
배우 마이클 J. 폭스는 약 30년 전 파킨슨병 초기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신경계 질환의 일종인 파킨슨병은 당시만 해도 대중에게 생소했고, 그의 고백을 계기로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이후 폭스의 이름을 딴 재단은 파킨슨병 연구를 위해 약 30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폭스가 미국 의회에서 증언한 뒤에는 파킨슨병을 비롯한 신경계 질환과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도 늘었다. 환자 권익을 위한 그의 활동은 다른 파킨슨병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을 공개하고 경험을 나누며 주변의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나는 수십 년 동안 기억장애 전문의로 일하면서 알츠하이머병이나 다른 형태의 치매를 앓는 환자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적어도 병의 초기에는 대부분 자신의 진단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유명인 환자에게 알츠하이머병 진단 사실을 알린 뒤 기억력 저하에 관한 안내 책자를 건넨 적이 있다. 그러자 남편은 곧바로 아내에게서 책자를 가져가 반듯하게 접은 뒤 자신의 코트 안에 숨겼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혹시 아내의 팬을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다른 질병보다 유독 치매를 공개적으로 말하기 꺼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치매는 파킨슨병이나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과 같은 신경계 질환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를 정신질환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 환자와 가족들도 대개 꼭 알아야 할 사람에게만 진단 사실을 알린다. 끝까지 숨기는 경우도 많다. 의사와 진료소, 병원 역시 이런 비밀 유지에 일조한다. 치매 환자 가운데 진단 사실이 의료 기록에 남는 경우는 약 절반에 불과하다.
치매는 주로 노년기에 발병하기 때문에 많은 환자가 은퇴와 함께 사람들의 시야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는 결국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고, 주변 사람들은 환자가 어떻게 지내는지 제대로 알기 어려워진다. 흥미로운 점은 다발성경화증이나 뇌졸중, ALS 같은 다른 신경계 질환에는 치매만큼 강한 수치심이나 낙인이 따라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수 셀린 디옹은 희귀 진행성 신경계 질환인 ‘강직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e)’을 진단받자 팬들에게 직접 사실을 알렸다. 그동안 잇따른 공연 취소를 불러온 정체불명의 질병을 둘러싼 세간의 추측도 끝났다. 디옹은 다큐멘터리에서 매일 겪는 고통스러운 근육 경련의 모습까지 공개했다.
그는 자신의 재단을 통해 미국 내 환자가 5000명도 되지 않는 이 희귀질환 연구에 수백만 달러를 직접 기부하기도 했다.
치매 진단을 공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
현재 전 세계 치매 환자는 5700만 명이 넘는다. 매년 약 1000만 명이 새롭게 진단받는다. 2050년에는 알츠하이머병이나 다른 형태의 치매를 앓는 사람이 약 1억 5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에서만 65세 이상 치매 환자가 현재 740만 명에 달한다.
알츠하이머병의 예방과 조기 진단, 치료에 관한 연구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훨씬 많고 완치법도 찾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질병을 공개하지 않을 권리를 이해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치매를 둘러싼 낙인을 걷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도 크다.
유명인이든 아니든 배우자나 부모, 친구 또는 자기 자신을 통해 치매를 경험한 모든 사람이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떨까. 이들이 더 많은 연구비와 더 나은 공공정책, 지역사회와 돌봄 지원 확대를 요구한다면 어떨까. 어쩌면 이 신경계 질환을 둘러싼 낙인과 수치심을 덜어내고 치료법을 찾는 데도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치매 진단을 숨기려는 선택은 때로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다.
배우 진 해크먼은 수년간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살아왔다. 그의 상황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주 돌봄자인 아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해크먼 역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뒤였다.
이웃들은 이들 부부가 사생활을 철저히 지키며 집 밖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크먼은 아내이자, 주 돌봄자가 숨진 뒤 홀로 남겨진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음식과 물, 약 등 기본적인 생활조차 스스로 챙기기 어려운 상태였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루이소체병을 앓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뇌 부검을 하고 나서였다. 루이소체병은 시각적 환각과 수면 장애, 떨림 등을 일으키는 치매의 일종이다. 생전에 윌리엄스의 증세는 우울증과 파킨슨병으로 오진됐다. 의사들이 여러 전형적인 증상을 하나로 연결해 치매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그의 아내 수전 슈나이더 윌리엄스는 루이소체병을 알리는 활동에 나섰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질환을 세상에 알리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이나 다른 형태의 치매를 진단받는 사람 대부분은 유명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앞서 언급한 유명인들과 마찬가지로 병을 숨겨 사생활을 지키는 것과 자신의 병을 주변에 알리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발병 초기부터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좋아하던 활동을 그만두며, 스스로 삶의 반경을 지나치게 좁혀버리는 환자가 많다. 이런 안타까운 선택의 상당 부분은 치매 진단에 따라붙는 수치심에서 비롯된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을 잃는 질병이 아니라 지성과 사회적 지위,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까지 잃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치매 진단 사실을 숨기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나는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반드시 한 가지를 묻는다. 만일 당신이 더 이상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면 누가 사랑하는 이를 돌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족들은 어김없이 자신은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이며 남편이나 아내, 부모 또는 친구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나는 더 직접적으로 묻는다. “오늘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당신이 대형 트럭에 치인다면, 오늘 밤 누가 그 사람에게 밥을 먹이고 약을 챙겨주며 안전하게 돌볼 수 있나요?”
안심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비상시에 대비한 계획을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기억장애가 있는 사람을 찾아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해줄 친척이나 친구, 이웃을 미리 정해두라는 것이다.
치매 환자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강조한다. 인지기능에 변화가 생겼더라도 앞으로 살아갈 삶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새롭게 가볼 곳도, 새로 만날 사람도, 새롭게 즐길 경험도 있다.
나는 환자와 가족에게 진단 사실을 숨기든 공개하든 우리가 곁에서 도울 것이라고 말한다. 치매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안심시킨다.
글 잘디 S. 탄(Zaldy S. Tan), 시더스-사이나이 메디컬센터 기억·건강한 노화 프로그램(Memory & Healthy Aging Program) 책임자, 『What to Remember When You Are Forgetting(기억을 잃어갈 때 기억해야 할 것들, 국내 미출간)』 저자
한국어판 편집 최문정 기자 jay@tim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