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소음보다 낮은 '핑크노이즈', 숙면에 도움이 될까
잠든 사람에게 핑크노이즈를 들려주자 뇌척수액의 흐름이 증가했다. 뇌척수액은 깊은 잠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장유정 에디터

우리가 잠든 뒤에도 뇌는 바깥세상을 살핀다. 소리는 물론이고, 냄새도 수면 중 뇌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영국 에식스대 심리학과 강사 홍비엣 응오-데닝은 “진화적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위험이 닥칠 때 대응하기 위한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잠을 깨우고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소리는 오히려 더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 9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 의학’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 안에서 잠든 사람에게 ‘핑크노이즈’를 들려주자 뇌를 둘러싼 뇌척수액의 흐름이 증가했다. 핑크노이즈가 수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WHY WE WROTE THIS
잠 못 드는 밤, 백색소음이나 빗소리가 나오는 ASMR 영상을 틀어본 적 있을 테다. 소리를 활용한 수면 콘텐츠는 한국에서도 익숙하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연구진은 이번에 백색소음보다 음이 더 낮은 '핑크노이즈'가 잠든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잠든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잠을 자고 나면 기운이 나는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진은 그 단서 중 하나로 뇌척수액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뇌척수액이 수면 중 뇌에 쌓인 생화학적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MRI 영상을 통해 사람들이 잠들면 뇌 주변의 체액이 큰 파동을 이루며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신경과학자 로라 루이스가 말했다. 2019년 그가 참여한 연구에서는 수면 중 나타나는 서파와 혈류 변화, 뇌척수액의 흐름이 서로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그는 “그 뒤로 무엇이 이 파동을 조절하는지 알아내는 데 계속 관심을 가져왔다”며 “이런 파동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면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핑크노이즈를 활용한 선행 연구에 주목했다. 핑크노이즈는 잠들 때 흔히 사용하는 백색소음과 비슷하지만 음높이가 조금 더 낮다. 루이스는 핑크노이즈가 “지지직거리는 백색소음보다 덜 거칠게 들린다”고 설명했다.
2013년 응오-데닝 연구팀은 수면 중 핑크노이즈를 들려주면 다음 날 기억력 과제 수행 능력이 향상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연구에서는 엇갈린 결과가 나왔지만, 응오-데닝은 적어도 특정 조건에서는 핑크노이즈가 뇌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루이스는 ‘서파(slow waves)’에 주목해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서파는 깊은 비렘수면에서 나타나는 느리고 큰 진폭의 뇌파다. 앞선 연구에서는 짧은 핑크노이즈가 수면 중 서파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핑크노이즈가 뇌 속 체액의 흐름까지 바꿀 수 있는지 살펴봤다.
공동저자인 대학원생 조슈아 레빗은 MRI 장치 안에서 잠든 사람의 뇌파를 측정해 서파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정확히 50밀리초 동안 핑크노이즈를 들려주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핑크노이즈를 들려준 뒤 뇌척수액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레빗과 루이스는 이 기술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수면 중 착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면 연구의 다음 단계, 건강증진 효과 검증
핑크노이즈가 수면 중 서파를 증폭시킨다는 사실은 기존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서파가 커진 것은 잠이 더 깊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에서는 서파가 증폭된 뒤 뇌척수액(CSF)의 흐름도 증가했다는 점이 새롭게 관찰됐다.
레빗은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제4뇌실에서 뇌로 유입되는 뇌척수액이 증가하는 현상도 관찰했다는 점입니다”라며 “제가 알기로는 적어도 인간에게서 외부 자극을 이용해 뇌척수액의 흐름을 비침습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사례입니다”라고 말했다.
응오-데닝은 이번 연구가 핑크노이즈와 서파, 뇌척수액 흐름의 파동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는 뇌척수액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늘렸을 때 실제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나 뇌의 노폐물 제거 기능 저하로 발생할 수 있는 신경퇴행성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응오-데닝은 “그게 다음 과제가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글 Veronique Greenwood
한국어판 편집 장유정 기자 chloe@tim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