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부상 가로막는 건 ‘무능한 국가’
인도에선 보도조차 없는 도로에서 10년간 150만 명이 숨졌다. 존스홉킨스대 데베시 카푸르 교수는 개선 기미가 없는 국가 역량이 정치권의 의도적 선택이라고 진단한다.
인도의 부상 가로막는 건 ‘무능한 국가’
인도에선 보도조차 없는 도로에서 10년간 150만 명이 숨졌다. 존스홉킨스대 데베시 카푸르 교수는 개선 기미가 없는 국가 역량이 정치권의 의도적 선택이라고 진단한다.

문상덕 에디터

인도는 교육과 보건, 제조업과 일자리, 도시화와 오염 등 발전 과제를 한꺼번에 떠안고 있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인 만큼 규모 자체가 각 과제를 버겁게 만들고, 이 문제들이 한데 얽히면 난도는 더 올라간다. 기후변화와 AI은 여기에 불확실성을 더해 향후 20년간 상당수 문제를 더 악화시킬 전망이다. 그러나 인도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행위자, 즉 인도 국가(state) 자체가 더 유능해지지 않는 한 어느 하나도 제대로 풀 수 없다.
앞으로 수십 년간 인도가 직면할 '메타 발전 과제'는 국가의 질(質)과 역량, 청렴성이다. 이것이 없으면 다른 분야의 진전도 어렵다. 인도는 정치·사회적으로 갈가리 나뉘어 있지만, 기본 이념은 국가주의다. 우파 집권 인도국민당(BJP)과 좌파 공산당, 그 사이 거의 모든 세력이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고 사회 변화를 이끄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왜 과제가 쌓여 가는데도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을 고치려는 노력은 이토록 적은가.
WHY WE WROTE THIS
한국은 인도와 밀월 중이다. 교역 500억 달러 목표를 내걸었고, 현대차 등 기업은 수십 조 원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잦은 전근, 소송 적체, 돌발 과세 등 인도 국가의 취약한 역량이 그 투자의 토대를 흔든다.
무력한 국가가 낳는 문제
인도의 거대한 연방 체제에서 발전 책임은 여러 층위의 정부로 나뉘어 있고, 어느 층위도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 지난 10년간 인도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150만 명이 넘는다. 대부분 생산가능인구다. 주행거리당 사망률은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희생자의 약 3분의 1은 보행자다. 인도 도시들이 인도(人道)라는 가장 기초적인 시설조차 짓고 관리하지 못한 탓이 크다.
낡아빠진 보도(步道)는 인도 도시의 암울한 현실을 압축한다. 도시 거버넌스가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 그리고 주(州)정부가 돈이 되는 도시 토지의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민간 부문은 경제 발전의 엔진이다. 그러나 그 엔진은 치안과 질서, 보건, 교육처럼 국가가 깔아 준 토대 위에서 돈다. 인도는 상당한 수준의 질서는 세웠지만 법치를 세우는 데는 허덕이고 있다.
폭력은 줄었지만 경찰은 여전히 보호자인 만큼이나 약탈자다. 과부하가 걸린 법원에는 수천만 건의 사건이 쌓여 있어, 재판 절차 자체가 관련자 모두에게 가장 큰 형벌이 됐다. 기업이 계약을 지킬 수 없고, 여성이 해가 진 뒤 안전하게 걸을 수 없고, 소수자가 끊임없는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면 발전의 토대는 위태롭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인도에 풍부한 천연자원은 없을지 몰라도 사람은 넘쳐난다. 이들의 잠재력을 인적 자본으로 바꾸면 더없이 귀한 국가 자산이 된다. 그러나 인도 국가, 특히 주정부의 실패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이 대목이다.
인도인의 수명은 과거보다 길어졌지만 반드시 더 건강해진 것은 아니다. 높은 영양실조·발육부진율은 수천만 어린이의 앞날을 깎아 먹는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늘었지만 공립학교 학습 성과는 여전히 실망스럽다. 아이들은 투표하지 않는다. 교사는 투표한다. 교사 채용은 지대(地代)와 정치적 후원의 짭짤한 원천이다.
부유층은 물론 중산층조차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낼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공교육 체계는 개혁을 밀어붙일 영향력 있는 지지층을 잃었다. 연방정부 역할이 더 큰 고등교육에서는 이념 통제와 당파적 인사가 청년의 취업 준비보다 앞선다. 수백만 명이 기술도 기회도 주지 못하는 학위만 손에 쥔다.
달구지 엔진에 롤스로이스 브레이크
인도의 굴곡진 발전 역정은 인도 국가의 병폐와 깊이 얽혀 있다. 위압적인 이미지와 달리 인도 국가는 1인당 공무원 수로 재면 오히려 작은 편이다. 게다가 이 공무원들은 '전근(轉勤) 라지(transfer raj)'라 불리는 잦은 인사 이동에 시달린다. 전근 자체가 관료와 정치인의 또 다른 지대 수입원이 됐다. 교육 훈련은 대체로 엘리트 공무원 몫이다. 능력보다 충성을 높이 사는 정치인이 감독하는 일반행정직 중심 공직 사회에서 전문성은 고아 신세다.
빽빽한 규정과 절차, 극단적 중앙집권, 경직된 위계라는 인도 국가의 병리는 불신과 신분 의식이 강한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결과가 ‘달구지 엔진에 롤스로이스 브레이크’를 단 국가다. 최근 몇 년간 인도 정치가 권위주의로 기울면서 연방정부 내부에서도, 연방과 주의 관계에서도 중앙집권은 더 심해졌다. 뉴델리의 연방정부가 주정부 위에 군림하듯, 주정부는 지방정부 위에 군림한다.
중국과 미국은 연방(중앙)과 기초지자체 단위에 많은 인력을 두고 성(省)·주 단위 인력은 적다. 인도는 반대로 공공 고용을 주정부에 집중시킨다. 공공 고용과 행정 통제권이 지방정부나 시(市) 당국이 아닌 주정부 손에 몰리면서 인도의 도시와 읍은 권한도, 스스로 움직일 힘도 잃었다.
이 모든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공식 보고서들이 60년 동안 이 실패를 기록해 왔다. 그런데도 병폐가 지속되는 이유는, 모두가 국가를 믿고 나라의 고통을 국가 탓으로 돌리면서도 더 강하고 유능한 국가를 세울 동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정치권과 관료 집단에 막대한 지대를 제공하고, 공무원들은 개혁에 맞서는 강력한 이익집단을 이룬다. 행정 개혁은 정치인도 지식인도 달아오르게 하지 못하며, 그 보상은 선거 주기 너머에 있다. 약한 국가는 장악하기도 쉽다. 정치인은 그것으로 반대파를 윽박지르고, 집권 엘리트와 재계 엘리트는 지대를 뽑아낸다.
인도 정치권의 ‘전략적 약함’
약한 국가 역량이라는 핵심 발전 문제는 2050년까지도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러나 대규모 행정 개혁 없이도 역량을 보강할 길은 있다. 가장 분명한 기회는 기술이다. 인도는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공공 인프라를 구축해 세정(稅政)과 공공 조달, 복지 지급을 개선했다.
그러나 이 체계의 강점은 유권자에게 현금을 뿌리는 일도 놀랄 만큼 쉽게 만들었다. 핵심 공공재를 강화하려는 노력은 주춤하는 사이 경쟁적 포퓰리즘만 부추겼다. 익숙한 격언을 뒤집어 말하면, 인도 국가는 국민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물고기를 쥐여 주는 쪽을 택한다. 국가의 시혜에 대한 의존을 유지하고, 그와 함께 유권자의 순응도 유지하기 위해서다.
주정부는 시민사회와 기업을 더 효과적으로 끌어들여 역량을 키울 수도 있다. 여성 최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많은 공공재가 국가와 사회에 의해 '공동 생산(co-produced)'된다고 봤다. 그러나 이런 협력은 국가가 시민사회를 신뢰할 때 가능하다. 지금 인도처럼 정치적 이유로 시민사회를 통제하고 입을 틀어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인프라 건설이나 위생 서비스를 민간 기업에 맡기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지대 추출의 위험이 상존하는 탓에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인도 국가의 현 상태를 보면, 다가올 도전의 규모를 인식하고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 정책을 예측 가능하게 수립·집행하는 관료의 능력부터 법원·규제기관·선거관리위원회가 규칙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능력까지, 인도 국가의 핵심 제도는 약해지고 있다.
이 '전략적 약함'은 선거 경쟁의 압박이 장기 개혁을 밀어내면서 우연히 생긴 결과가 아니다. 인도 정치권의 의도적 선택이다. 그 선택이 바뀌지 않는 한, 인도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발전 목표를 달성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글 데베시 카푸르(Devesh Kapur), 美존스홉킨스대 남아시아학 석좌교수. 인도 현대 개발사를 다룬 《인류의 6분의 1(A Sixth of Humanity)》의 공저자로 참여했다.
한국어판 편집 문상덕 기자 mosadu@tim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