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에 체념, 소음에 고독, 그래도 선망…서울은 감정이다 [서평]

성해나·이기호·김현·현호정·임선우·김화진, 여섯 작가가 산문집 『서울 밖 감정』에서 떠난 뒤에야 보이는 927만 도시의 뒷면을 체념·고독·선망 세 갈래로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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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에 체념, 소음에 고독, 그래도 선망…서울은 감정이다 [서평]
『서울 밖 감정』 표지 이미지.사진=한겨레출판

2026년 10월 주민등록 인구 기준 서울특별시 인구는 927만4392명이다. 한국의 전체 인구가 약 5107만 명임을 생각한다면. 한국인이 살고 있는 이 땅의 면적이 100,472.4km²인데, 서울은 고작 605.2km²밖에 안된다는 걸 떠올려 본다면. 새삼스레 생경하다. 1km²당 약 1만5300명이라는 인구밀도 역시 그렇다. 우리가 이렇게나 붙어 있었나.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결국은 수긍할 수밖에 없는 척도다.

부정할 수 없는 사회·문화 생활의 요충지.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과 서울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으로 이곳은 언제나 북새통이다. 평일에 출퇴근하는 것도, 주말에 가족과 친구를 만나는 것도, 어쩌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여기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물론 이제는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2026년 9월 한 달 동안 서울에서는 전입보다 전출이 2359명 많았다.

그럼에도 서울은 한국인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을 준다. 『서울 밖 감정』은 그 느슨한 형태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성해나의 「탑승 시 손을 흔드시오」와 이기호의 「두 번째 만남」은 체념을. 김현의 「장면들」과 현호정의 「새소리」는 고독을. 임선우의 「너도 어서!」와 김화진의 「둘로 나뉘어 있다는 감각」는 선망을 말한다.

각자의 회상과 자기 고백들로 점철되는 그 모습은 어떠할까.

체념

『서울 밖 감정』 내지 속 흑백 이미지. 사진=이은돌

‘탑승 시 손을 흔드시오’는 어린 시절, 성해나가 있었던 ‘벽촌 혹은 소도시’에서 버스를 탈 때 지켜야 했던 ‘예의조례’ 중 하나다. 거칠고 불규칙한 버스에 올라타려면 승객의 적극적인 호소가 필요하다. 반면, 서울의 버스는 친절하고 정확하다. 대신 여기에도 ‘암묵적인 조례’가 있다. 누군가의 권익보다 당장의 불편을 견디지 않기, 사회 초년생에게 버거운 집값은 당연시하기. 그래서 작가는 차라리 여행 같은 고된 출근길을 택했다.

지방으로 돌아온 그는 교육과 보건 등 서울 밖에서 뒤처지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를 작품에 담는 동안 만난 몇몇 ‘지방인’들은 그런 ‘소멸 문제’를 차차 해결해 나가려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삶이 타협이나 체념이 아닌 기록과 낙관으로 남을 수 있음’을 굳게 믿으며, ‘전남, 충남 각 열두 곳’이라 함축되지 않게 열심히 손을 흔드는 태도. 그 팔이 무거워지는 만큼 작가만의 ‘예의조례’도 두터워질 것이다.

한편, 이기호가 발품을 팔아 첫 전셋집을 얻었던 서울은 계급의 원리로 돌아가는 곳이다. ‘서울에 세 들어 사는 기분’으로 갈등을 피해 왔기에, 심각한 결로 문제에도 무례한 ‘집주인’에게 대응이 쉽지 않다. 그런데 그런 집주인조차도 판사 앞에서는 점잖게 예의를 지킨다. 전세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가난한 작가’라는 수식어로 승리했지만 모욕감이 드는 건, 그런 물고 물리는 관계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종로구 구기동에서 경기도 고양시를 지나 광주광역시에 오기까지. 왠지 모를 그리움과 ‘튕겨져 나왔다는 열패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는 지금의 삶을 ‘행운’이라 믿고 있다. ‘교보문고’와 멀어졌어도, 서울 ‘자가’ 입성이 아니어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았으니까. 옛 ‘집주인’을 서울의 호텔 ‘도어맨’으로 ‘두 번째’ 만났을 때.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멀어진 그는 그러한 계층의 굴레에서 한 발짝 벗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서울에 대한 체념은 서울 밖의 새로운 삶으로 이어진다. 성해나는 지방과의 불균형에 염증을 느끼고 떠났다. 이기호는 더 이상의 ‘갈아탐’이 불필요한 곳에 정착했다. 이는 ‘체념하지 않는’ 인물들의 선택과 결과이기도 하다.

고독

『서울 밖 감정』 내지 속 흑백 이미지. 사진=이은돌

‘다시 웃고 싶어졌어요.’ 김현이 파주로 도피한 이유다.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최소한의 생활 공간조차 부족했던 그에게 서울 밖은 새로운 기회였다. 제대로 ‘겨울앓이’를 하고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하나둘 늘어날 동안, 그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회복해 나간다. 자기만의 방식과 속도에 집중하면서. 퀴어로서 소거되던 존재감에서 벗어나 이웃과의 연대 속에 ‘함께 살기’의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그 과정에서 유독 작가가 곱씹는 말은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다. 이동 거리가 길어지며 서울역 노숙인들을 보게 됐는데, 그 중 한때 따뜻한 이웃이었다던 김순철 씨가 공공개발 투쟁 중에 남긴 외침이란다. 결국 나를 돌볼 수 있는 공간과 타인을 돌보는 환경이 ‘집다운 집’을 만드는 거 아닐까. 밀집된 도시를 벗어나 발견한 고독은 그렇게 공존을 품은 ‘장면들’로 느슨하게 이어지며,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기대하게 한다.

현호정의 고독은 ‘소리’를 매개로 드러난다. 어느 날 그는 삼성 갤럭시 S3에서 흘러나온 알람 소리를 ‘천국의 새소리’로 착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소음에 둘러싸여 살아온 그에게 유독 고요했던 서울의 방은 ‘풍요롭고 부드러운 어둠’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내 깨닫는다. 객관적으로 조용한 공간에 있지 않아도, 외부의 소리를 무시해 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주는 것. 그것이 타인을 위한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관계가 줄 수 있는 연대. 서울에서 배운 ‘외로움과 자유’, ‘무시와 존중’은 그렇게 연결된다. 물론, ‘개인주의, 무책임, 고립과 단절’이 반복되면 선명해지는 도시 속 개인의 존재감은 희미해진다. ‘부재’의 체험이 삶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작가는 이제 수많은 관계 속의 긍정적인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만, 가끔은 이를 외면한 채 누렸던 평온을 기억한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듯 서술하며 찾은 고독은 그런 양면성을 가진다.

결국 서울 안팎에서 발견한 고독은 공생의 방식까지로 나아간다. 김현은 각박한 도시에서 벗어나 나와 너를 돌볼 여유를 되찾았다. 현호정은 분리할 수 없는 소음의 피로감을 자기만의 침묵으로 회복하곤 한다. 다시금 부대끼며 살기 전에 필요한, 하나의 준비 과정 같은 것이다.

선망

『서울 밖 감정』 내지 속 흑백 이미지. 사진=이은돌

너도 어서. 임선우가 느낀 서울의 메시지다. 폴 그레이엄의 <도시와 야망>을 접한 후, 그는 서울을 ‘야망이 경쟁하듯 공존하는 도시’로 읽어낸다. ‘입시, 취업, 주거 마련, 결혼, 육아’와 같은 획일적인 성공 기준과 무엇이든 해내고 싶게 하는 동기 부여가 확실한 도시. 문학인을 꿈꾸었던 본인도 혜화와 합정을 오가며 ‘열정과 불안함’을 해소하고, ‘같은 꿈을 가진 동료들’과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던 시절이 있었다.

15년째 살고 있는 분당은 또 다르다. ‘대표적인 베드 타운’인 이곳은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잠만 자는 곳으로, ‘약간의 허무함과 쓸쓸함, 약간의 멜랑콜리’를 주며 나른함을 선사한다. 그것만이 줄 수 있는 이완을 좋아하는 작가는 30대가 된 이후, ‘전에는 느낄 수 없던 편안함’마저 느끼곤 한다. 작품 쓰기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나니, 서울의 조급함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됐다. 그곳의 편의를 선망으로만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김화진에게 서울은 두 개의 도시 사이에서 분열한 나를 통일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본가가 안양인 그는 그곳의 좋은 점도 있었지만 지루함을 느끼곤 했고, ‘목적이 있는 외출’ 대신 ‘이유 없이’ 서울을 향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홍대, 합정, 상수역’의 ‘나른함, 어수선함, 불완전함,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인상’이 좋았고, 작가들을 ‘닮고 싶고 따라 하고’ 싶어서 그들이 자주 가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묻힌 것들을 묻힌 채로 사는 사람’이 되고자 성산동에서 욕망을 따라 살게 됐다. ‘내 안에 있는 본질’을 바꾸는 것보다 ‘내 바깥에 있는 환경’을 바꾸는 게 나를 더 빠르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직감으로. 대학 입시와 전세 대출이라는 불안과 최선 사이를 오가며, 마침내 ‘해냈네 하는 기쁨’을 얻기까지 부단히 노력하면서. 선망에서 시작한 과정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그는 지금도 자신을 더 알아가는 중이다.

과연 서울은 분명한 하나의 지표요, 목표가 된다. 임선우는 그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집중하고자 했다. 김화진은 그 분명함을 따라가면서 자신을 오롯하게 일치시키고자 한다. ‘서울’의 존재감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서울 밖 감정』 내지 속 흑백 이미지. 사진=이은돌

여섯 작가가 들려주는 서울의 모습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떠나고 싶은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잠시 숨 고르기를 권하는 곳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정과 갈망으로 남는 곳이다. 서울에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곳을 되짚는 이유 역시, 이 도시가 주는 애증 때문일 것이다.

복잡하고 다양하며, 긴밀하고 민첩한 그 특성 때문에 품게 되는 의미들. 이를 둘러싼 이야기와 여담에 가까운 인터뷰를 반복하는 이 책은 그 시도와 변화를 따라가게 한다. 가끔은 경계선 위에 서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이 있다. 서울 밖에서 서울을 이해하는 일이 그렇다.

조예은 기자 sophi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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