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IRA’ 낸 與이연희 “진보도 기업 키울 책무 있다” [YD brief]

이연희 의원은 적자 배터리 기업 등에 세액공제를 현금으로 먼저 주자고 한다. 지역 경제와 K배터리 골든타임을 지키고, 중국 밖 공급망을 지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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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IRA’ 낸 與이연희 “진보도 기업 키울 책무 있다” [YD brief]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TIME Korea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최근우

YD(여의도) brief

서울의 심장 여의도, 이곳에서 시작된 법과 제도가 사회 곳곳으로 흘러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움직입니다. TIME 한국판 유제니 에디터가 한국 정치 1번지 여의도 내부의 이해관계, 충돌과 타협의 지점을 짚습니다. [편집자주]

2020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34.7%)과 중국(34.8%)은 사실상 동률이었다. 5년 뒤 중국은 70.4%로 몸집을 두 배로 불렸고, 한국은 15.4%로 반 토막 났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의 역전은 더 극적이다. 2020년 55%였던 한국 점유율은 지난해 4%까지 떨어졌다(이상 SNE리서치 집계).

판을 뒤집은 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다. 한국이 주력한 삼원계 배터리보다 값이 싸고 불이 잘 나지 않는다. 중국 업체들은 약점이던 에너지 밀도까지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LFP로 물량을 휩쓸었다.

한국도 뒤늦게 LFP 생산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4년, 삼성SDI는 올해 양산을 시작했다. 국내 생산분은 아직 없다. LG엔솔이 충북 오창에서 연 1GWh(기가와트시)를 만들기로 했지만, 내년부터다. 한 데이터센터 업계 관계자는 “국산 LFP를 쓰고 싶어도 공급 받을 데가 없다”고 꼬집었다.

2025년 1월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에 설비 투자한 기업에 세금 혜택을 현금으로 ‘선불’해주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 대상은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이다. 지금은 정부가 투자액의 일부를 법인세에서 깎아준다. 하지만 법인세는 이익에 매기는 세금이라, 투자를 늘릴수록 적자가 깊어지는 배터리 기업에는 '그림의 떡'이었다.

법안은 2년 가까이 국회 상임위에 묶여 있다. 재정 당국이 업종 간 형평성을 들어 반대해 왔다.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에 국내 생산량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주는 생산세액공제를 넣었지만, 적자 기업에는 이 역시 그림의 떡이다. 분위기를 바꾼 건 대통령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7일 ‘한국형 녹색대전환 전략 국민보고회’에서 “적자 기업에는 생산세액공제를 넘어 직접 보조금을 도입하자”고 했다. 녹색대전환 대상에는 배터리도 들어간다.

예산 정국을 앞두고 TIME Korea와 만난 이연희 의원은 “(대통령 언급을 계기로) 그간 형평성 논리에 막혀 있던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관계 부처와 구체적 방안을 협의하고, 여야 의원들과 협력해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을 함께 이루기 위해 2026~2035년 정부 재정과 정책금융 약 1000조 원을 태양광·풍력·이차전지 등 녹색산업에 투입하는 10년 전략.

“韓배터리 어려움, 일시적”

이 의원의 목표는 현실적이다. 법안 하나로 중국을 다시 앞지를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직접환급 제도 하나로 중국과의 격차를 모두 메우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제도가 “국내 배터리 생태계를 살려내고 중국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에는 분명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다. 그가 꼽은 핵심은 배터리 공급망을 “완전히 뺏기지 않는 것”이다.

배터리가 들어가는 곳은 계속 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5년까지 세계 전력 수요가 지금보다 40%가량 늘 것으로 본다. 24시간 돌아가는 AI데이터센터에는 ESS가 필요하다. 전기차와 로봇, 위성도 배터리를 핵심 전원으로 쓴다. 이 의원은 ”피지컬 AI나 휴머노이드 등 로봇 산업의 발전, 전기차 시장 등이 성장세를 보이며 배터리 적용 영역이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반도체가 산업의 ‘두뇌’라면, 배터리는 ‘심장’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배터리 공급망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IEA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배터리 셀의 80%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됐다. 중국 밖에서 나오는 물량은 20%가 채 안 된다. 그나마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 공장에서 나오는데, 이 공장들도 거의 다 한국·일본 등 아시아 기업이 운영한다. ESS는 쏠림이 더 심하다. 저장장치의 90% 이상이 LFP 배터리를 쓰는데, LFP는 거의 전량 중국에서 나온다.

IEA는 중국의 배터리 공급망 수출이 한 달만 멈춰도 중국 밖 전기차 공장의 생산이 170억 달러어치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가정에 그치는 이야기도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양극재와 전구체, 흑연 음극재는 물론 배터리 제조 장비와 기술까지 수출 통제 대상에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김태윤 IEA 핵심광물정책국장은 “공급망 리스크는 이론이 아닌 현실”이라며 한국이 “중국 바깥에서 구축될 새로운 공급망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IEA는 한국을 중국 밖에서 배터리 소재 공급원을 다변화할 최대 거점으로 평가한다. 중국 밖 20%를 지키는 일에서 한국이 중요하단 뜻이다.

이 의원은 지금 한국 배터리의 어려움은 “일시적”이라고 봤다. 단기적 지원으로도 반등할 수 있단 뜻이다. 이 의원은 “ESS 시장 확대와 함께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반등하기 시작했고, 전기차 시장까지 정상화되면서 향후 1~2년 사이 실적 개선 가능성이 클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중요한 순간에 위기를 넘겨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초기에 지원하는 것이 업계에선 정말 절박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업체들은 긴 부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올해 3분기 LG엔솔은 영업이익 7560억 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냈다. 삼성SDI도 4078억 원 흑자로 돌아섰다. AI 데이터센터발 ESS 수요가 실적을 끌어올렸다. SK온은 805억 원 적자였다.

이 의원은 “건식전극처럼 원가를 낮추는 차세대 공정에 대한 투자가 적자 때문에 늦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가격 경쟁력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건식전극은 전극을 만들 때 용매와 건조 공정을 없애 비용을 줄이는 기술이다. 그는 “전고체 같은 신기술 경쟁에서는 한국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 서둘러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사진=최근우

“중국 제품과 국제 무대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려면”

중국 배터리 산업은 국가가 키웠다. 이 의원은 "중국 정부는 기업들이 본궤도에 올라 자립할 때까지 아낌없는 지원으로 산업을 키웠고, 패권을 확보한 현재는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 정부가 2009~2023년 전기차 산업에 쏟은 지원을 2309억 달러로 추산한다. 대부분은 소비자 구매보조금과 취득세 면제다. 배터리 업체에 준 보조금은 이 금액에 들어 있지 않다. CATL 한 곳이 2023년에 받은 정부 보조금만 8억 달러가 넘는다. 2015년부터는 중국산 배터리를 단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화이트리스트’로 자국 업체를 보호했다. 지방정부는 공장을 지어 무상으로 빌려주고 설비투자비의 20~40%를 대줬다.

미국은 세금을 현금으로 바꿔줬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는 미국에서 만들어 판 배터리 셀 1kWh에 35달러, 모듈에 10달러를 공제한다. 내야 할 세금이 없는 기업도 첫 5년 간은 공제액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공제권을 다른 기업에 팔아도 된다. 이 의원이 낸 법안 역시 미국처럼 세금을 현금으로 직접 환급해주거나 제3자에게 세액 공제권을 팔 수 있도록 해 적자 기업에 즉시 현금 유동성을 공급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래서 ‘한국판IRA’ 법안으로도 불린다.

이 의원은 “배터리처럼 초기 투자가 막대한 첨단산업은 투자를 늘릴수록 적자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지원이 가장 절실한 시기에 혜택으로부터 소외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또 “직접 환급이나 제3자 세액공제는 이미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기업의 투자여력 확보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제품과 국제 무대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 법안이 필요하단 뜻이다.

미국 IRA의 효과는 한국 기업 실적에서 바로 보인다. LG엔솔의 3분기 영업이익 7560억 원 가운데 4169억 원이 IRA 공제액이다. 이익의 절반 이상이 미국 공장에서 나온 셈이다. 이 의원은 “미국에 가면 막대한 현금성 인센티브가 있는데, 뭐 하러 한국에서 공장을 짓겠냐”며 “정부가 손을 놓고 이 상황을 방치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내에 남아있어야 할 요인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형평성 논리

사진=연합뉴스

“노동자 중심 정책을 중시하는 진보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책무가 있습니다”

한국판 IRA의 관건은 재정 당국을 설득하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진보 정권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인 데다, 현금성 지원에 대해선 재정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국가 경제를 구성하는 주요 주체인 노동자와 기업은 함께 성장해야 한다. 노동자 중심 정책을 중시하는 진보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미 법이 인정한 세액공제를 이익이 날 때까지 묵혀두지 말고 필요한 투자 시점에 쓸 수 있도록 앞당겨서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재정 부담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혜택을 만드는 것이 아닌 “시점의 차이”라는 게 이 의원의 논리다.

다만 일부 제한도 필요하다. 직접환급 기간 제한이나 환급의 원칙을 두는 등의 안전 장치를 두는 것이다. 이 의원은 “환급 받은 금액은 국내 시설 투자와 연구 개발에 쓰이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거나 일정 기간 내 국내 생산을 철수할 경우 환급액을 환수하는 등의 규정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부,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가 현행 생산세액공제로는 특정 산업이 지원 받기 어렵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이 의원은 전했다.

통상 규범도 넘어야 할 관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상대국 기업을 지원 대상에서 뺐다. 한국이 같은 방식을 따르긴 어렵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WTO의 구속력이 예전보다 약해졌지만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규범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특정 국가나 기업을 직접 배제하기보다 생산 기반·투자·기술 같은 객관적인 지원 요건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제시한 국내 투자·R&D 의무와 환수 조건도 이런 방향이다.

지역구가 말하는 것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에너지플랜트 전경. 사진=LG에너지솔루션

이 의원의 지역구는 충북 청주 흥덕구다.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와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지역구 안에 있다. 바로 옆 오창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에코프로 등 배터리 공장이 몰려 있다. 업계의 하소연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다. 그는 “충북은 반도체와 바이오, 이차전지 등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국가 미래경쟁력을 좌우하는 곳”이라고 말해 왔다.

현장도 자주 찾았다. 2024년 12월에는 동료 의원 10명과 함께 SK하이닉스 청주 공장을 찾았다. 올해는 민주당 첨단바이오산업 부스트업 TF 단장을 맡았다. 이 의원은 “산업이 침체하고 공장이 해외로 옮겨 가면 지역 경제가 흔들리고, 이것이 결국 국가 경제안보 위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산업 경쟁력이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본다. 이 의원은 “국가전략산업이 위기를 돌파해 큰 이익을 내면 결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며 “배터리 산업의 재도약 역시 국민과 중소기업에 혜택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중요한 건 얼마를 지원하느냐가 아니라, 미래 산업 투자가 국내에서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유제니 기자 jenn@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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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니 에디터

정치·사회 분야 취재 보도를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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