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레임덕 시대가 열렸다
[美중간선거 특집]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대한 심판이 내려졌다. 남은 임기 2년간 트럼프는 의회의 견제와 각종 조사에 직면하게 됐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준비하는 권력 재편이 시작될 전망이다.
트럼프의 레임덕 시대가 열렸다
[美중간선거 특집]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대한 심판이 내려졌다. 남은 임기 2년간 트럼프는 의회의 견제와 각종 조사에 직면하게 됐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준비하는 권력 재편이 시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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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Trump’s Lame-Duck Era
유제니 에디터
정치·사회 분야 취재 보도를 담당합니다.

중간선거 전날인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반영 연못(Reflecting Pool)을 찾았다. 수백만 달러를 들인 연못 보수 사업은 트럼프가 직접 감독했다. 그러나 새로 입힌 코팅이 벗겨지고 조류가 번식해 물이 녹색으로 변하는 등 공사는 사실상 실패했다. 참모들은 대통령이 치솟는 휘발유 가격과 장바구니 물가, 새로 터진 중동 전쟁 등 미국인의 삶을 짓누르는 문제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트럼프는 53분 연설 대부분을 국정 현안이 아닌 건설 사업 얘기에 썼다.
이 연설은 기이했던 선거운동의 마지막을 장식한 당혹스러운 장면이었다. 전국을 돌며 선거 메시지에서 번번이 벗어나는 트럼프를 지켜본 측근들은 혀를 내둘렀다. 미국인들이 에너지 비용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그는 석유회사들이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고 자랑했다.
트럼프는 뉴욕 시민들이 더는 어머니를 ‘엄마(mom)’라고 부를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고, 뉴멕시코주를 ‘뉴아메리카(New America)’로 개명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가 고기를 보고 구토하는 모습을 반복해 흉내 내기도 했다. 남성의 신체 특징을 둘러싼 기이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일도 거듭됐다.
한 트럼프 참모는 이렇게 말했다. “후보가 아널드 파머의 성기나 존 휴스테드의 엉덩이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휘발유 살 돈조차 없는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겠습니까.”
민주당의 승리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민주당은 상원과 하원을 장악했다.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에서도 큰 표차로 주지사직과 상원의원 자리를 가져갔고, 공화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한 하원 지역구에서도 이겼다.
이번 참패는 트럼프에 대한 명백한 심판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대통령이 직접 낙점한 후보들이 큰 표차로 졌다. 텍사스에서는 각종 스캔들에 휩싸인 켄 팩스턴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고(故)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의 여동생 달린 그레이엄이 낙선했다. 두 사람은 다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 당 지도부의 반대에도 트럼프가 공천을 밀어붙인 인물이었다.
개표가 마무리될 무렵 트럼프는 야당의 승리를 인정했다. 이란 전쟁이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시인했다. 그는 폭스뉴스에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 경제는 세계 최고입니다. 하지만 휘발유 가격 때문에 사람들이 그 사실을 예전만큼 체감하지 못하는 겁니다. 휘발유 가격은 이란 때문에 오른 것이고요.”
트럼프 측근들은 그가 중간선거 결과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자주 말해 왔다. 트럼프는 집권당이 중간선거에서 의석을 잃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패턴으로 여겼다.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민주당은 연이은 중간선거에서 큰 타격을 입었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공화당도 2006년 참패했다. 트럼프 자신도 2018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의석 수십 석을 잃었다.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선거 흐름을 바꿀 힘이 있다고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한 핵심 참모는 “그는 역사적 흐름을 넘어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앞으로 이어질 의회 교착과 난타전에 체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이 착수할 수 있는 각종 조사와 탄핵 절차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9월 말 TIME 인터뷰에서 “그들이 아마 나를 공격하겠죠. 그러면 나도 그들을 공격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10년 넘게 현대 미국 정치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공화당 의원들의 충성심을 장악해 왔다. 의원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였고,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정치 생명을 끝내는 일로 만들었다. 그러나 11월 3일 공화당이 입은 참패와 트럼프가 정치적 부담이 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레임덕에 접어든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를 수 있다. 공화당에 대한 트럼프의 장악력이 마침내 느슨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NBC뉴스가 화요일 발표한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43%는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기 위해 투표했다고 답했다.
민심 잃은 트럼프의 오판
두 번째 임기의 마지막 2년에 접어든 대통령들은 의회나 법원의 제약을 덜 받으며 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교정책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트럼프는 이미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음을 시사했다. 또 다른 고위 행정부 관계자는 트럼프가 임기 후반 서반구에 더 집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지역에서는 친트럼프 성향의 정상들이 잇따라 집권했다. 트럼프와 측근들은 중국·이란과의 지역 영향력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고 본다. 한 고위 행정부 관계자는 “세력을 결집할 엄청난 기회”라며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한층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년간 행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해 온 트럼프 앞에는 새로운 견제 장치가 놓인다. 당장 자신이 지명한 인사들의 상원 인준부터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참모들은 상원 인준이 필요한 자리에 인준을 거치지 않은 직무대행을 계속 기용하려는 트럼프의 구상을 두고 대법원 소송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럼에도 측근들은 그가 권력의 제약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더 대담하고 반항적인 태도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싸우려 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측근은 “더 온화하고 유순해진 트럼프를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직의 한 장이 끝나는 것일 수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장이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9월 말 중간선거 유세전이 본격화했을 때 참모들은 트럼프가 평소보다 더 선거에 무관심해 보인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과 가까운 정치활동위원회(PAC)가 보유한 4억 달러 규모의 선거자금을 아직 본격 투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공화당 인사들은 특히 절박한 한 지역에 자금을 쏟아부어 달라고 호소했다. 공화당의 아성인 텍사스에서 켄 팩스턴 후보를 지키기 위한 선거전이었다. 결국 트럼프는 장외 정치 조직 운영을 맡긴 크리스 라시비타와 제임스 블레어에게 공화당의 상원 다수당 지위를 지키고 하원 의석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대규모 자금 투입을 승인했다.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과 참모들은 트럼프에게 자신이 공화당의 구원자라는 점을 내세워 유세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 참사를 피하기 위해 공격적인 일정을 짰다. 한 달간 경합 지역구 32곳을 돌고, 자신의 정치적 부상을 이끈 트레이드마크인 대규모 유세를 연이어 여는 일정이었다. 트럼프는 새 의지를 다지며 유세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선거 메시지에서 거듭 벗어나 참모들이 피하고 싶어 한 논란을 불러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서는 시위대를 주먹으로 때린 것으로 보이는 지지자를 칭찬하며 전 헤비급 복싱 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에 비유했다. 지지자들의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테네시주 클라크스빌 유세에서 그는 청중에게 “내가 가장 멍청한 말을 해도 여러분은 박수를 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 전략을 재현하려 했다. 정치 관심도가 낮은 유권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비정치적 경로와 미국인들이 점점 더 많이 소비하는 대안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참모들은 지역 호소력을 더할 프로 스포츠 선수와 유명 인사들을 유세장에 동원했다. 메릴랜드 행사에는 볼티모어 레이븐스 선수들을, 조지아주 유세에는 조지아대 미식축구팀의 전설적 선수 토드 걸리를 데려왔다.
오하이오주 영스타운 유세에는 복서 제이크 폴을 초청했다. 미시간주 유세에는 역대 음반 판매량이 가장 많은 여성 래퍼 니키 미나즈가 합류했다. 트럼프는 미나즈를 두고 “정말 끝내주게 아름다운 엉덩이를 가졌다”며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후 참모들은 미나즈가 차기 백악관 대변인을 맡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흘렸다.
중간선거 기간 내내 트럼프의 정치적 판단은 유권자 정서와 점점 멀어졌다. 그는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면 미국인들에게 5000달러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윤리 감시 단체들은 매표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을 케이티 자카리아로 교체하기도 했다. 뉴스맥스 출신으로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던 자카리아는 참담한 기자회견을 치른 데다,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도 자신을 변호사로 소개한 사실이 드러나 닷새 만에 물러났다.
트럼프는 J.D. 밴스 부통령 등 참모들의 만류에도 미국 내 인기가 낮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선을 지지했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지지 선언은 네타냐후의 가장 강력한 미국 내 지지자인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미국대사와 폭스뉴스 진행자 마크 레빈이 직접 개입을 요청한 뒤에야 나왔다. (허커비 대사와 레빈은 논평 요청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공화당 상원의원을 당선시키지 못한 주에는 재난 지원금을 보류하겠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의 선거 개입은 정치적 문제를 풀기보다 오히려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워싱턴포스트와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67%는 트럼프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신중하게 숙고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럼프와 밀접한 공화당 후보들의 참담한 성적은 그의 직접적인 선거 개입과 일론 머스크가 투입한 5억 달러에 가까운 자금에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발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다. 유권자들은 사상 최고 수준의 휘발유 가격과 인기 없는 중동 전쟁, 지속되는 경제난에 직면해 있었다. 여기에 엡스타인 문건 처리 과정과 트럼프 및 측근들이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챙겼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행정부는 거센 검증 공세를 받았다.
불만은 생활비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폭스뉴스가 10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등록 유권자의 60%는 정부 부패를 매우 우려한다고 답했다. 인플레이션과 고물가 우려보다 높은 수치였다.
화요일 밤 개표 결과가 속속 집계되자 백악관의 트럼프 측근들은 기존 정치 규범을 뒤흔든 급진적 두 번째 임기의 한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알았다. 동시에 또 다른, 어쩌면 더 위험한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도 인식했다. 유권자들은 지난 2년간의 트럼프와 그를 뒷받침해 온 공화당을 심판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표로 보여준 것이다.
공화당의 새로운 권력 지형
그러나 트럼프의 최측근들은 민주당의 감시와 견제에 직면한 대통령이 더 거칠어지고 타협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했다. 참모들은 민주당이 권한을 지나치게 행사하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가 자초한 위기의 책임자가 아니라 정치적 박해의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참모는 “역사적으로 그는 공격 대상이 됐을 때 늘 좋은 성과를 거뒀다”며 “그것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할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참모들은 백악관 인력의 대규모 교체에 대비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이탈과 함께 트럼프가 자신을 불편하게 한 관료들을 해임하는 일이 맞물릴 전망이다. 그 결과 트럼프는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충성파로만 구성된 폐쇄적 측근 집단에 더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에게 불편한 진실을 전하거나 충동적 행동을 제어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인물들이다.
백악관 안에서는 분점 정부가 가져올 결과를 두고 참모들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 고위 참모는 “그의 본능은 민주당이든 무소속이든 누구와도 협력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그는 상대 진영이 어떤 조사와 정치적 술수를 벌일지 알고 있고,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승은 이미 당 지도부에 힘을 싣고 있다. 차기 하원 감독위원장으로 유력한 인사는 엑스(X)에 짧고 단호한 경고를 남겼다. “변호사를 선임하라(LAWYER UP).”
그러나 트럼프 앞에 놓인 정치적 여정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다를 것이다. 헌법상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트럼프는 공화당이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셈법에 직면하게 된다.
2028년 대선 구도가 형성되면서 J.D.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와 거리를 두지 않으면서도 독자적 정치 정체성을 구축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대선 출마에는 여전히 트럼프의 지지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긴장은 두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트럼프가 10년에 걸쳐 구축한 정치 연합 전체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이미 터커 칼슨과 마저리 테일러 그린 등 한때 충성스러웠던 측근들이 등을 돌리며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남은 질문은 하나다. 공화당이 트럼프 이후를 바라보기 시작한 가운데, 그동안 트럼프의 당 지배력을 떠받쳐 온 두려움과 충성심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까.
글 Eric Cortellessa TIME 선임기자
한국어판 편집 유제니 기자 jenn@tim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