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의 2인자’는 어떻게 트럼프의 대리인이 됐나
카라카스에 크레인이 다시 서고 미국 석유 기업이 돌아왔다. 그러나 선거 시점을 묻자 그는 “준비가 되면”이라고만 답했다. 이 거래가 보통 국민의 삶을 바꿀지, 특권층의 배만 채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마두로의 2인자’는 어떻게 트럼프의 대리인이 됐나
카라카스에 크레인이 다시 서고 미국 석유 기업이 돌아왔다. 그러나 선거 시점을 묻자 그는 “준비가 되면”이라고만 답했다. 이 거래가 보통 국민의 삶을 바꿀지, 특권층의 배만 채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문상덕 에디터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 델시 로드리게스는 카라카스 중심부의 19세기 신고전주의 건물, 미라플로레스궁에서 국정을 본다. 금박을 두른 시몬 볼리바르, 우고 차베스의 초상의 궁의 회랑을 내려다본다. 잘 다듬어진 정원에선 새소리가 흘러나온다. 로드리게스의 걸음은 가볍지 않다. 삼중 경호가 따라붙는다. 그도 그럴 만하다. 얼마 전 미군 델타포스가 인근 군기지 관저에서 그가 오랫동안 섬긴 전임자를 체포해 갔다.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정기적으로 대화한다. 그런 그가 통역사를 불렀다. “인터뷰는 스페인어로 하는 걸 좋아한다”며 영어 인터뷰를 사양했다. “이번 인터뷰는 영어로 하는 편이 낫겠다”고 재차 제안했지만, 그는 옅은 미소를 띈 채 말했다. “제게는 이게 최선입니다.”
셈은 뻔하다. 통역을 거치면 대화 속도가 느려지고, 지면에 실릴 표현을 더 고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냉혹한 정치체제에서 수십 년을 버틴, 노련한 정치인의 본능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전례 없는 외교적 국면을 홀로 헤쳐 가고 있다.
반미의 얼굴에서 화해의 관리자로
차베스의 핵심 측근으로 자라 마두로의 2인자로 일해 온 인물. 57세의 로드리게스는 수십 년간 반미(反美)로 규정돼 온 이 나라 사회주의 진영의 대표적 얼굴이었다. 지금은 워싱턴과의 화해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미국 지원을 받는 대신, 트럼프와 루비오가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속국으로 만드는 걸 용인했다.
한 시간 인터뷰에서 그는 주권을 내준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국민 이익을 위해 경제를 열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선의를 갖고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의 속에서 이런 관계들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도 설명했다. 그가 내건 목적은 국익이었다.
“제 현재와 미래의 전략은 언제나 나라의 평화와 평온, 즉 사회적·경제적 안녕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통치하는 나라는 마두로 체포 이전의 그 나라가 아니다. 마두로의 베네수엘라는 내려앉고 있었다. 부패가 만연했고, 경제는 붕괴 직전이었다. 미국과 국제 감시단체들은 마두로가 2024년 선거를 훔쳤다고 봤다. 초인플레이션은 국민의 저축을 지웠다. 경제 생명줄인 석유 생산은 착복과 투자 부족, 제재를 겪으며 곤두박질쳤다. 800만 명 가까운 국민이 나라를 떠났다. 서반구 역사상 최대 이주 위기였다. 순환 정전, 물 부족, 무너지는 병원, 식량과 의약품 부족이 일상이 됐다. 한때 라틴아메리카의 최부국이었던 나라가 최빈국 중 하나로 주저앉았다.
1월 로드리게스가 임시 대통령을 맡은 뒤 회복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라카스 스카이라인에 건설 크레인이 다시 섰다. 상점 진열대가 채워졌다. 멈춰 있던 유전이 다시 돈다. 엑슨모빌, 코노코필립스, 핼리버튼, GE 베르노바가 돌아왔거나 새 투자 협상에 들어갔다. 미국과 베네수엘라를 잇는 하늘길이 2019년 이후 처음 열렸다. 달러가 공개적으로 돈다. 외국 기업 임원과 외교관, 투자자들이 호텔을 메운다. JW메리어트 로비는 석유 업계 임원들의 집합소가 됐다. 더 은밀한 곳인 ‘카예나 카라카스’에선 잘 차려 입은 금융인과 정부 관료들이 대리석과 재즈 사이에서 탐사권과 인프라 계약,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로드리가토
대가가 따랐다. 루비오가 감독하는 합의 아래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정 깊이 들어왔다. 양국 고위 관계자 3명이 본지에 설명한 합의는 이렇다. 미 국무장관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입과 공공재정을 규율하는 틀을 감독하고, 사실상 공동 기금을 운영한다. 수출 수익의 배분, 에너지 부문 재개방, 미국 기업 우대까지 모든 사안에서 워싱턴의 손이 닿는다. 로드리게스와 루비오 두 사람은 전화와 왓츠앱으로 거의 매일 연락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국방장관 인선 같은 국내 인사도 그와 상의한다고 사정에 밝은 관계자 3명이 전했다.
“말하자면 ‘로드리가토’가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로드리가토(Rodrígato)=로드리게스를 앞세운 대리 통치 체제(-gato)를 뜻함.)
트럼프·바이든 정부에서 주베네수엘라 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스토리는 로드리게스 정부가 워싱턴의 전략을 대행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우리가 요구하는 건 전부 하고 있습니다.”
워싱턴과 카라카스는 정보와 마약 단속에서도 손잡았다. 협력은 지난 6월 초국가적 범죄조직 ‘트렌 데 아라구아’의 수괴 니뇨 게레로의 사살로 이어졌다. 볼리바르주에 있던 그의 은거지를 양국이 함께 찾아냈다. 로드리게스는 베네수엘라가 게레로의 위치를 찾아냈고, 지상 병력을 투입했으며, 그 덕분에 미군이 공습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건 공동 협력의 기회가 있다는 점”이라면서 이어 설명했다.
“예컨대 마약 밀매에 맞서, 또 초국가적 조직범죄에 맞서서 말입니다. 우리에게 그건 아주 중요합니다.”
미국이 제안한 사면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천 명의 정치범이 풀려났다. 협상팀은 수십 건의 추가 경제 협정을 계속 다듬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하나의 사례가 됐다. 외교 관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우선순위대로 세계를 재편하는 트럼프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다. 트럼프는 초법적 힘과 강압으로 캠페인을 벌였다. 마약 밀수 의심 선박에 대한 타격에서 시작해, 현직 국가원수의 체포로 끝났다. 그 원수는 마약과 무기 혐의를 받아 미국으로 끌려왔다. 마두로는 지금 뉴욕의 연방 구치소에 있다. 그 자리는 순종적인 후임자가 채웠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가 미국의 이익을 따르면서 카라카스의 안정을 지켜 줄 것이라 믿고 있다.
작고 마른 체구, 잘 재단된 정장, 큼직한 안경. 로드리게스는 선동가가 아니라 테크노크라트의 분위기를 낸다. 미국과의 협력은 그가 격변기에 권력을 다지도록 해 줬다. 이 거래는 대담한 만큼 위태롭다. 다만 지렛대는 미국뿐 아닌, 로드리게스도 쥐고 있다. 20여 년에 걸쳐 그는 차비스모(※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통치체제)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됐다. 그가 아닌 다른 지도자가 미국과의 이런 합의를 버텨 내리란 보장은 없다. 베이징이나 모스크바가 아니라 워싱턴을 택할지도 알 수 없다.
그에게 이 자리는 정교한 줄타기를 요구한다. 오랜 억압과 경제 붕괴를 겪은 국민 가운데 마두로의 퇴장을 아쉬워하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그 안도가 후임자에 대한 열광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많은 이에게 그는 구원자보다 배신자에 가깝다. 그의 앞날은 국민의 애정보다 다른 것에 걸려 있다. 트럼프의 요구를 채우는 능력, 그리고 미움 받는 외세의 종속국이 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이다.
6월 카라카스는 대지진을 겪었다. 5000명 이상이 숨졌고, 추산 피해액은 67억 달러에 이른다. 워싱턴과의 새 관계는 이익을 가져왔다. 미 국무부가 3억 달러 규모의 재건 패키지를 꾸렸고, 미 남부사령부가 구호에 군사 지원을 붙였다. 로드리게스의 한 측근은 이런 장면을 거래가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증거로 든다. 정작 국민은 그가 참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고 비판했다. 그의 기자회견은 여드레가 지나서 열렸다.
미국과의 합의가 궁극적으로 보통 베네수엘라인의 삶을 낫게 할지, 아니면 특권층의 배만 채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로드리게스는 민주적 개혁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현재 망명 생활을 하는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돌아오고 싶어 하는 수백만 명은 자신의 권리가 존중된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서 민주적 권리를 옹호한 공로로 202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직전 선거에서 출마를 봉쇄당한 마차도가 보기에, 로드리게스는 권력과 자기 보전을 위해 워싱턴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요구받는 건 무엇이든 내줄 겁니다. 무엇이든요.” 마차도는 비판 수위를 높였다. “범죄자들이 사고하는 방식이 바로 그렇습니다.”
로드리게스는 마차도의 비판을 물리친다. 그는 “저는 다른 나라의 국내 정치가 베네수엘라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려 한다”며 “베네수엘라가 다른 어떤 나라의 정치 의제에서 볼모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월 3일 새벽
매끈한 대리석과 금박으로 장식된 방에 함께 앉아 있는 동안, 로드리게스는 자신을 권좌로 밀어 올린 그날의 일들을 되짚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권한을 행사하는 데 익숙한 사람의 낮고 절제된 말투였다.
1월 2일, 그는 마두로를 만났다고 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계획, 그리고 12월부터 미국이 걸어 놓은 해상 봉쇄가 의제였다. 회의를 마친 뒤 그는 마르가리타 섬으로 날아갔다. 북부 해안 앞바다의 카리브 휴양지였고, 오빠와 조카들이 거기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도착은 밤 11시쯤. 다급한 전화들이 걸려 오기까지 몇 시간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다음날 새벽, 미군 부대가 포르트 티우나 군기지 안 마두로의 관저로 침투했다. 그는 잠들어 있었다. 병력은 잠옷 차림의 그를 찾아내 체포했고, 부인과 함께 국외로 빼냈다. 그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살해당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큰 고통의 순간을 지나야 했다”며 “그 다음 그들이 그를 미국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으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돌이켰다.
로드리게스는 뜻밖의 인물에게 가장 먼저 전화했다. 카타르 군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그가 공들여 관계를 쌓아 온 상대였다. ’이제 책임은 당신의 어깨에 있다, 당신에게는 베네수엘라를 지킬 책임이 있다.’ 로드리게스는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로드리게스와 미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카타르 측은 1월 3일 오후 그와 루비오의 전화 회의를 주선하는 데 힘을 보탰다. “마두로는 살아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루비오는 그렇다고 확인해 줬다. 증거로 미국 관계자들은 사진을 보냈다. 수의 차림으로 뉴욕행 헬기에 오른 마두로가 있었다. 이어 국무장관은 최후통첩을 건넸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든지, 계속되는 군사 압박을 감당하라는 것이었다. 로드리게스는 받아들였다. 다른 길이 없다고 봤다고 한 측근은 말했다. “완전히 솔직히 말하면,” 그가 말했다. “우리는 수도가 공격받을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일어난 일은 상상조차 못 했다.”
이튿날 아침 트럼프와 처음 통화했다. “우리는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외교 관계를 어떻게 수립할 수 있을지, 어떤 공동의 이해 영역을 찾을 수 있을지 논의했다.” 그가 말했다. 트럼프가 원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원유 매장량이었다. 세계 공급을 늘리고 에너지 가격을 낮춰,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경제를 떠받칠 수단으로 봤다. 다만 실무는 루비오에게 맡겼다. 쿠바 이민자의 아들인 그에게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을 뿌리 뽑는 일은 오랜 숙제였다. 국무장관이 된 그에게 그 야망을 밀어붙일 기회가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합의의 골자는 이렇다.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 대금의 대부분을 미국이 먼저 받는다. 그 돈은 다시 베네수엘라 은행 체계를 통해 풀린다. 한 미국 고위 관계자는 이 구조가 에스크로 계좌처럼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카라카스가 합의된 조건을 이행할 때만 워싱턴이 돈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수익의 흐름을 쥐면 미국은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에 대한 지렛대를 얻는다. 동시에 부패와 경쟁 강대국의 영향력도 눌러 둘 수 있다. 대가로 로드리게스는 대통령 자리를 지킨다. 미국 자본의 유입과 재통합의 경제적 이익이 그를 받쳐 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간명한 교환으로 봤다. 정치적 안정을 주고, 경제 감독권과 에너지 접근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자원이 풍부한 나라 하나의 전략적 재편을 받는 거래였다.
루비오의 야망
몇 주 뒤 어느 아침, 루비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뜻밖이었다. “당신에게 인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연결해 드리겠다.” 루비오가 말했다. 트럼프였다. 로드리게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압송 이후 그의 협조에 만족한다고 했다. 보상으로 미국이 베네수엘라 상업 항공편을 복원하겠다고 했다. 4월 아메리칸항공이 마이애미–카라카스 노선을 재개했다. 5월에는 유나이티드항공이 휴스턴발 노선을 띄웠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집착은 재집권 이후 커졌다. 그는 루비오를 엘살바도르로 보내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과 전례 없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미국은 구금한 베네수엘라 이민자 수백 명을 엘살바도르의 악명 높은 테러범수용센터(CECOT)로 넘겼다. 인권 단체와 이민 옹호 단체의 격한 비판이 쏟아졌다. 트럼프는 그들이 트렌 데 아라구아 조직원이라고 했다. 그가 국경 위기의 화신으로 지목해 온 베네수엘라 갱단이다.
이후 상황은 더욱 격화했다. 행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를 떠난 선박들이 미국을 향해 마약을 실어 나른다는 정보 보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 2명은 루비오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마약 밀수 의심 선박에 대한 군사 타격으로 대응하라고 트럼프를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타격을 승인했다. 군사 압박이 마두로를 움직여 밀매망을 해체하고 범죄 조직을 단속하게 하며, 베네수엘라의 거대한 석유 부문을 미국 투자에 열게 하리라 기대했다.
마두로가 체포될 무렵, 미군의 선박 타격은 10개월에 걸쳐 100명 넘는 목숨을 앗아 갔다. 저스트시큐리티 집계다. 6월 21일 기준 사망자는 두 배 넘게 늘었다. 66차례 타격에 215명이 숨졌다. 다수의 법률 전문가는 이 타격이 국제법과 미 헌법상 대통령 전쟁 권한의 한계를 모두 넘었다고 본다. 브루킹스연구소의 국가안보법 전문가이자 국무부 출신인 스콧 앤더슨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자국에 무력 공격을 했거나 임박한 무력 공격을 위협했을 때뿐”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본 것은 석유 매장량에 대한 접근권이었다. 루비오가 본 것은 달랐다. 서반구의 힘의 균형을 다시 짜는 기회였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도 곧 합류했다. 이민을 넘어 국가안보로 자기 영역을 넓히려는 의욕이 커지던 그에게, 베네수엘라는 두 사안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밀러가 제한적 군사 압박으로는 마두로의 계산을 결코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본지에 전했다. 그는 더 공격적인 방식을 밀었다.
루비오와 밀러, 참모들은 선박 타격을 대통령에게 계속 보고하면서 한 가지를 강조했다.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적대 세력에게 점점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쿠바와 러시아, 중국이 석유와 군사·정보 협력, 경제 지원을 통해 거점을 넓혀 놓은 상태였다. 한 국무부 관계자는 “그 나라에 존재했던 종류의 영향력은 미국의 이익과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마두로의 행동을 바꾸거나,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목표는 단순했다. 마두로를 설득해 그 관계들을 끊게 하는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이 국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행정부는 터키를 설득해 마두로에게 안전한 도피처를 제안하게 했다. 그가 평화롭게 베네수엘라를 떠나기로 동의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거절했다. “변곡점은 12월이었다. 우리는 터키를 통해 그에게 제안을 보냈다. 요지는 이랬다. 터키든 다른 수용 가능한 곳이든 영구히 나라를 떠난다면 당신을 건드리지 않겠다, 다만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거다.” 또 다른 국무부 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사실상 제안을 무시했다. 떠나서 다른 곳에서 편히 살 수 있는 출구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베네수엘라 정부 안의 다른 누군가와 함께 변화를 만들 기회를 얻었을 거다. 그런데 그는 춤추고 노래하는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영상만 올렸다.”
그 “다른 누군가”가 델시 로드리게스라고, 루비오는 믿었다.
운동권의 딸
로드리게스는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투철한 좌파 가문의 하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호르헤 안토니오 로드리게스는 혁명적좌파운동의 학생 지도자였다. 그는 1976년 정부 보안기관에 체포돼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그때 로드리게스는 일곱 살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의 삶을 규정하는 사건이 됐다. 지금 국회의장을 맡고 있는 오빠 호르헤 로드리게스와 함께, 그는 베네수엘라 좌파 이념 속에서 자랐다. 법률가로 훈련받은 그는 아버지의 길을 따랐다. 차베스 정부에서 올라섰고, 이어 마두로의 최측근 가운데 하나가 됐다. 외교장관을 지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체제의 가장 전투적인 국제 대변자가 됐다. 미국의 제재를 규탄하면서 러시아, 중국, 이란, 쿠바와의 관계를 다졌다. 2018년 마두로는 그를 부통령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국제 외교가는 그를 이념적 강경파가 아니라 기술관료로 봤다. “그는 더 실용적인 인물로 여겨졌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라틴아메리카 전문가 크리스토퍼 에르난데스-로이는 말했다. “머리에 총을 겨눈 상태에서 그를 고른 셈이지만, 그는 이 나라 경제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고 오래도록 석유 부문에 깊이 관여해 왔다. 그게 분명히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회복.” 로드리게스는 오래전부터 경제의 더 큰 개방을 주장해 왔다. 외국인 투자 유치와 국제 에너지 기업과의 관계 재건도 그의 몫이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루비오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로드리게스는 정부에 지렛대를 쥔 현실주의자이며, 워싱턴의 요구를 받아들일 뜻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로드리게스는 미국과의 관계가 이미 나라에 이득을 안겼다고 말한다. 마두로 시절 상당한 규모를 유지한 미국 석유 대기업은 셰브런뿐이었다. 이제 엑슨모빌과 코노코필립스, 핼리버튼이 합류할 수 있다. 더그 버검 미 내무장관과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은 30건이 넘는 협정을 협상하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가장 중요한 건 미국 기업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당초 트럼프가 약속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그에게 베네수엘라가 미국 자본과 세계 시장에 다시 접근하게 해 주겠단 당근을 내밀었다. 트럼프와 루비오는 경제적 통합이 지정학적 정렬(※친미 정권의 수립)을 끌어낼 수 있다는 데 판돈을 걸었다. 다만 이렇게 밀려든 자본이 보통 베네수엘라인에게 얼마나 닿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믿을 만한 여론조사는 여전히 드물다. 많은 국민이 마두로의 퇴장을 반겼다. 그러나 로드리게스에 대한 경계는 남아 있다. 자신의 정치 인생을 바쳐 온 명분을 버린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마두로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나?” 루비오의 한 보좌관은 본지에 말했다.
“그가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고 불안정을 낳은 존재였다는 걸 국민은 충분히 알고 있다. 석유는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엄청나게 값진 자산이었다. 그것을 매우 부패한 엘리트들이 훔쳐 중국과 쿠바 등에 진 막대한 부채를 갚는 데 썼다. 이젠 아니다.”
그러나 일부 국민에게 로드리게스는 같은 체제의 새 얼굴일 뿐이다. 그는 오랜 시간 한 정부의 운영을 도왔다. 국제 조사관들이 광범위한 인권 침해로 지목한 정부였다. 임의 구금과 고문, 재판 없는 처형이 그 내용이다. 애틀랜틱카운슬의 베네수엘라 정치 전문가 디에고 아레아는 “그는 인권을 조직적으로 침해한 체제의 일부였다”고 지적했다.
선거는 “준비되면”
온갖 변화가 진행 중이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여전히 멀어 보인다. 진짜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다. 한 국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루비오는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 독재 정권을 없애고, 언젠가 선거를 치러 민주적 이행을 이뤄내는 걸, 적어도 그 토대를 마련하는 걸 자기 임무로 여기고 있다.
그의 요구에 따라 로드리게스 정부는 2월 사면법을 제정했다. 1999년 차베스 집권부터 현재까지의 정치적 폭력을 포괄하는 법이다. (2002년 차베스에 대한 쿠데타 시도에 가담한 혐의를 받은 이들, 2014년과 2017년 유혈 사태에 연루된 이들도 포함된다.) 베네수엘라 당국은 법 통과 이후 약 9000명이 석방됐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스는 이 절차를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검증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석방 실태를 감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외부의 검증이 정부가 약속을 지켰음을 확인해 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로 가고 있다고 볼 만한 징후는 없다. 전 주베네수엘라 미국대사 스토리는 “트럼프는 민주주의 건설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며 “무엇이든 잘못되면 불안정이 커지고, 기업들이 들어와 투자할 가능성은 더 깎여 나간다, 그게 두려운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로드리게스도 급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는 “베네수엘라는 준비가 되면 선거를 치를 것”이라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침략을 요구한 극단 세력이 있고, 국민은, 특히 그 공격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나라 안에서 서로 겨루는 권력 축들과,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정치 폭력의 위험을 두고 한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준비는 뭘까. 공개 선거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이 나라의 모든 정치 주체가 서로 이해에 도달하고, 우리 정치인들이 준비됐다고 국민에게 말할 수 있을 때 그 순간이 올 것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주권을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서 국제 선거 감시단의 참관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선거에 나설 생각이 있는지 묻자 그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모르겠다.”
이어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논할 때마다 걸려 있는 질문을 던졌다. 마차도의 귀국과 출마를 허용할 것인가. 그는 피해 갔다. “우리는 새로운 정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그럼 답은 ‘아니오’인가?”
"제 답은 '아니오'가 아니다.” 그가 답했다. “공존,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해지는 정치적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게 제 답이다.”
이 답은 마차도를 달래지 못한다. 마차도는 “미국 정부가 안정화 과정부터 시작하기로 한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정당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들이 선거를 두려워하는 건 국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베네수엘라 국민이 무엇을 절실히 원했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사에 대한 로드리게스의 더딘 대응은 “체제의 본질을 드러냈다”고 마차도는 덧붙였다. “인간성의 결여, 그리고 끝없는 부패와 무능의 전시였다.”
로드리게스에게는 모든 것이 생존으로 돌아온다. 애틀랜틱카운슬의 아레아는 “그는 미국 정부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그 지침에는 어느 시점에 민주적 제도와 규칙을 되살리는 일도 포함될 것”이라며 “하지만 그는 그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는 수단으로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목표란 단순히 정치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그리고 어쩌면 차비스모 자체가, 권력을 내려놓은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보장을 원한다. 국가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여성이, 미래의 어느 정부로부터 투옥이나 보복을 겁내지 않고 베네수엘라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이다. “그에게 생존은 그런 뜻이다.” 아레아는 말했다. “체제가 안정되고 스스로 통치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거기에는 그가 새로운 베네수엘라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들어간다. 생존의 문제다.”
지금 그는 나라를 세계 시장에 다시 편입시키는 데 열심이다. 경제를 다각화하고, 장기 외국인 투자를 끌어오고, 이 나라의 번영이 더는 하나의 원자재에 매달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인터뷰 하루 전, GE 임원들이 그와 마주 앉았다. 낡은 전력망을 현대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런 구상이 트럼프의 임기를 넘어 살아남을지는 불확실하다. 지금의 미국 외교는 지렛대와 경제적 유인, 강압, 거래식 합의로 움직인다. 베네수엘라의 앞날은 로드리게스가 현재의 상대들과 관계를 관리하는 능력에만 달려 있지 않다. 트럼프의 후임자가 이 전략을 이어받을지, 다른 길을 택할지에도 달려 있다.
인터뷰가 끝나 갈 무렵, 우리는 햇빛이 든 궁의 정원을 걸었다. 다음 날 귀국한다고, 새로 복원된 상업 노선을 타고 마이애미를 경유한다고 말했다. 그가 웃었다. 머지않아 경유는 건너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번엔,” 그가 말했다. “워싱턴에서 카라카스로 곧장 오시라.”
글 Eric Cortellessa/Caracas, Senior Correspondent
취재 지원 Leslie Dickstein
편집 문상덕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