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를 5분만 달라” [민주당 8·17 전당대회 르포]

객석에서 한 당원이 조명탑에 올라 발언권을 요구한 29분 동안, 무대에서는 소통을 말하는 축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례 없이 치열했던 민주당 전대 현장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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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5분만 달라” 
[민주당 8·17 전당대회 르포]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남성이 "마이크를 달라"며 철제 조명탑 위에서 고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유제니

무대에서 “소통정당이 되자”는 축사가 흘러나왔다. 그 시각 객석 한복판 6미터 조명탑 위에서는 60대 당원이 “마이크를 5분만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는 이 두 장면이 29분간 동시에 진행되며 시작됐다.

오후 2시 1분. 후보들이 입장하기도 전이었다.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 제2전시장, 조명과 스피커가 매달린 철제 구조물 위로 남성 당원 A씨가 올라갔다. 그는 손에 든 이재명 대통령 포스터를 흔들다 바닥으로 던졌다. 구조대원이 다가서자 손사래를 치며 한 층씩 더 올라갔다. 철근을 붙잡고 매달렸다. 아래에서는 “자극하지 마라”는 우려와 “그냥 뛰어내려라”는 야유가 엇갈렸다.

무대는 멈추지 않았다. 내빈 소개가 이어졌고, 시도당대회 결과가 안내됐다. 한병도 원내대표가 단상에 올랐다.

“국민의 삶을 살뜰히 챙기는 민생정당,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책정당, 국민에게 귀 기울이는 소통정당으로서 단단히 뭉쳐야 합니다.”

소방대원 10여 명과 경찰 30여 명이 투입되고 구조물 아래 에어매트가 깔린 것은 오후 2시 15분께였다. 민주당이 안건 상정을 멈추고 정회를 선언한 것은 2시 30분이었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고공 시위를 벌이는 당원과 대치 중이다. 사진=유제니

전남광주특별시에서 올라온 50대 여성 당원 주영현(가명) 씨는 구조물 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분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얼마나 소통을 하고 싶었으면 그랬나 싶어요. 당원들의 축제인데, 왜 아무도 그분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A씨는 2시 45분께 구조대원의 부축을 받아 내려왔고, 곧바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현장 관계자들은 그가 술을 마신 상태였다고 전했다. 행사는 2시 48분 재개됐다.

끌려나가던 그가 취재진 앞에서 소리쳤다. “민주당에 친명, 반명이 어디 있고 신천지가 어디 있느냐. 개혁적인 사람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 왜 대통령 사진을 찢었느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왜 이상한 사람들을 픽업하느냐.” 그가 5분 동안 하려던 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지 않았다.

당원들의 옷이 비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사진=유제니

김우성 씨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사진=유제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궂은 날씨에도 당 추산 1만여 명이 모였다. 우산을 접고 들어온 이들의 등이 검게 젖어 있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40대 김효진 씨는 18년간 단 한 번도 전당대회를 빠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날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엄마 아빠가 싸우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해요? 중간에서 눈치 봐 가면서 자식들까지 싸우는 꼴이 됐어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후보들을 응원하던 20대 김우성 씨도 “네거티브 중심의 허위 비방과 흑색선전이 도가 지나쳤다”며 경쟁 수위가 여느 때와 달랐다고 했다. “전당대회는 원래 누가 돼도 기뻐하고 축하하는 당원들의 축제거든요. 적과 싸우는 것 마냥 죽어라 서로 욕하는 이런 전당대회는 처음이에요. 내일이 두려워지는 느낌이에요.”

3주간의 권역별 순회경선 내내 ‘명청 갈등’과 신천지 정치 개입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파묘’ 수준이라는 말이 당 안에서 먼저 나왔다.

이날 두 명의 대통령이 영상으로 같은 당부를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동안 민주당답게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했지만, 오늘부터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다시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번 당원대회를 바라보며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라며 “경쟁이 당을 분열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민석 후보가 최종 득표율 54.08%를 얻어 차기 당대표로 선출됐다. 사진=유제니

당선자 발표는 예정보다 40분 늦은 오후 6시 40분에 나왔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3위 송영길 후보의 2순위 표를 재배분한 끝에, 김민석 후보가 54.08%로 45.92%의 정청래 후보를 제쳤다.

김민석 신임 대표는 결과가 발표되자 옆자리의 두 경쟁자와 악수했고, 무대에 올라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김민석 신임 당대표가 낙선한 정청래 후보를 끌어안고 있다. 사진=유제니

“1인 1표의 전도사인 정청래 후보, 준비된 지도자 송영길 후보. 저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진 두 후보에게 감사드립니다. 영광이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을 위해 뛸 것입니다. 정청래, 송영길 함께 뛸 것입니다. 제가 그 장을 넓게 열고 함께 모시겠습니다. 낙오 없이, 소외 없이, 차별 없이 함께 갑시다.”

최고위원 5석은 소위 ‘친청’ 3명, ‘친명’ 2명으로 갈렸다. 경선 내내 김 대표를 가장 강하게 비판했던 최민희 의원이 18.35%로 1위, 수석최고위원이 됐다. 사퇴한 두 후보의 표까지 결집을 호소했던 친명계 김용 후보는 6위로 낙선했다.

정청래 후보를 바라보는 친정청래(친청계) 최민희 신임 최고위원. 최 최고위원은 득표율 18.35%를 얻어 1위로 당선됐다. 사진=유제니

당원들은 한 목소리로 희망을 말했다.

효진 씨는 “오늘이 지나면 내일부터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신임 대표님 보며 으샤으샤 하겠다”고 했다. 우성 씨는 “민주당은 원래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정당”이라며 “이번 지도부에서 앞으로 2년간 깨끗한 믿음과 신뢰로 성과를 톡톡히 내길 바란다”고 했다. 영현 씨는 “대통령을 탄생시킨 당, 대통령과 한마음으로 뜻을 이룰 수 있는 당이 민주당”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새 지도부 여섯 명이 마지막 인사를 위해 무대에 올랐다. 당선자들이 서로 손을 맞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 줄의 끝에서, 수석최고위원 최민희와 최고위원 박선원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지 않았다.

8·17 전당대회 팔찌를 찬 당원의 손. 사진=유제니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이 휴대전화 플래쉬를 켜 후보들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유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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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유제니

대전=유제니 에디터

정치·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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