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옆에 원자로, 관건은 ‘대피구역 좁히기’
한국형SMR 단장은 설계 특성에 맞는 기준을 산정해 달라고 했고, 환경단체는 격납용기가 버틴다는 전제부터 검증하라고 했다.
데이터센터 옆에 원자로, 관건은 ‘대피구역 좁히기’
한국형SMR 단장은 설계 특성에 맞는 기준을 산정해 달라고 했고, 환경단체는 격납용기가 버틴다는 전제부터 검증하라고 했다.

장유정 에디터

“원자로에서 200m만 떨어지면 영향이 없다.”
지난해 9월 김한곤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단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원자로를 땅속에 묻는 구조여서 사고가 나도 방사성물질이 멀리 퍼지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그러니 법령도 여기에 맞춰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가 겨눈 규제는 원전 사고 때 주민 대피와 보호조치를 미리 계획해 두는 방사선비상계획구역(EPZ)이다. 대형 원전은 반경 20~30㎞가 이 구역에 들어가고, 그 안에 사람이 많을수록 대피 계획과 도로·경보 체계를 갖추는 부담이 커진다. 그래서 원전 부지는 인구가 드문 해안으로 밀려났다. 역으로 이 구역을 좁힐 수 있다면 전력을 쓰는 곳 옆, 가령 데이터센터 인근에도 원자로를 세울 수 있다.
1년이 지난 21일 국회 토론회에서 김 단장은 한 발 물러섰다. “SMR이라는 이유만으로 EPZ 축소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방청석에서 지난해의 ‘200m’ 발언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사고 시나리오와 설계 특성에 맞는 기준을 산정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토론회는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열었다. 진재용 변호사와 유에스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가 발제를 맡고, 김 단장과 이성진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SMR개발 그룹장, 김성길 원자력안전위원회 안전정책과장, 김종천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홍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 집행위원장, 박다혜 변호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좌장은 김혜정 시민환경연구소 상임이사가 맡았다.
현행 EPZ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14년에 만든 기준으로, 애초에 대형 상업용 원전을 전제로 설계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해부터 SMR의 설계 특성을 반영해 구역 산정 방법을 정비하겠다고 밝혀왔다.
산업계는 SMR이 사고 자체를 일으키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앞세운다. 김 단장은 i-SMR의 핵심으로 피동안전계통을 들었다. 외부 전기가 끊기고 운전원이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중력 등 자연의 힘만으로 원자로를 식히는 장치다. 이성진 그룹장은 구역 크기가 수출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했다. 국토가 좁아 태양광·풍력을 늘리기 어렵고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 SMR의 잠재 수요층인데, 대형 원전과 같은 구역을 적용하면 국토 상당 부분이 한 비상계획권에 들어가 사실상 입지가 불가능하다.
축소 논의의 근거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2022년 뉴스케일의 SMR에 대해 EPZ 산정 방법론을 승인했다. 다만 승인한 것은 “반경 몇 ㎞”라는 숫자가 아니라, 설계와 부지별 분석으로 반경을 계산해보라는 방법론이었다. 실제 크기는 건설·운전허가 심사에서 부지마다 따로 정하도록 했다.
방법론이 다루는 사고 범위도 좁지 않다. 설계 단계에서 상정한 사고는 물론, 지진 같은 외부 위험과 여러 모듈이 동시에 영향을 받는 상황, 사용후핵연료 냉각이 끊기는 경우까지 포함한다. 특히 방사성물질이 새어 나가지 않게 원자로를 감싼 방어벽인 격납용기가 견디는 경우와, 깨지는 경우를 나눠 각각 평가하도록 했다.
유에스더 활동가는 축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했다. 문제는 축소를 판단할 안전성 검증 기준이 먼저 서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격납용기가 중대사고에서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가정을 규제의 출발점으로 삼는 방식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승인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조건들의 묶음”이라고 했다.
김 단장은 사고 시나리오와 설계 특성에 맞는 기준을 산정해 달라는 요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2035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첫 i-SMR은 현행 EPZ를 바꾸지 않더라도 주민 대피가 필요 없는 입지에 건설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혜정 상임이사는 “SMR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며 “방사성물질이 유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업자의 목표일 뿐, 그 자체로 안전이 보증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주희 의원은 이날 논의를 토대로 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간담회로 의견을 모은 뒤 내년 중 발의할 계획이다.
이 기사 공유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