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과 C팝, 세계의 팬을 얻는 방식은 왜 달랐나
중국은 막대한 시장과 자본에도 세계 팬덤을 만들지 못했다. K팝의 힘은 국가 통제가 아닌 산업의 개방성과 팬의 선택에서 나왔다.
K팝과 C팝, 세계의 팬을 얻는 방식은 왜 달랐나
중국은 막대한 시장과 자본에도 세계 팬덤을 만들지 못했다. K팝의 힘은 국가 통제가 아닌 산업의 개방성과 팬의 선택에서 나왔다.
조예은 에디터

18세기 민요가 팝 콘서트의 영감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이달 초 로스앤젤레스의 대형 공연장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 북미 공연의 마지막 현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수만 명의 팬이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의 전통 선율을 따라 부르던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LA에서 열린 나흘간의 공연은 총 31회 전석 매진으로 이어진 투어의 마지막 무대였다. 소속사 빅히트뮤직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투어 관객은 약 192만 명에 달했다. 참고로 비욘세의 2023년 ‘르네상스(Renaissance)’ 투어는 북미 35회 공연에서 약 173만 장의 표를 판매했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태극기의 물결은 한국 대중음악의 기념비적인 한 해를 장식했다. 앞서 BTS는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 공연에 올랐고, 연초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Golden’이 그래미를 받은 데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연을 펼쳤으며, 최우수 주제가상까지 받았다.
이 같은 공연과 수상 소식은 K팝이 한국에 가져다주는 소프트 파워의 가치를 잘 아는 서울의 외교 관계자들에게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반면 베이징에서는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은 이웃 나라 한국이 문화 콘텐츠를 수출하며 소프트 파워를 쌓아가는 모습을 부러움 속에서 지켜봤다. 2014년 전국인민대표대회 때부터 중국 공산당의 핵심 인사인 왕치산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에 주목했다. 그는 인기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예로 들었다. 싸이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최초의 K팝 스타로 꼽힌다.
중국의 관심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중국 문화부는 한국 측과 협약을 체결해 매년 문화산업 포럼을 열고 해외 문화 상품 홍보를 위한 마케팅 분야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베이징이 서울의 문화 외교를 연구하는 것과 실제로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중국은 한국보다 인구가 훨씬 많고 해외에 사는 중국인도 많으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음반 시장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적인 K팝 스타들이 만들어낸 해외 팬덤에 맞먹는 음악 산업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대만의 중국어권 스타들과 홍콩의 칸토팝 가수들도 저마다의 역사가 있지만, 아직 블랙핑크나 스트레이 키즈처럼 세계 곳곳에서 이름을 알린 그룹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왕치산이 주목했던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이제 미국과 유럽을 훨씬 넘어선다. 2024년 블랙핑크의 스포티파이 주요 시장에는 인도네시아, 멕시코, 필리핀, 브라질 등이 포함됐다. 이들 국가는 중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를 넓히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온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다. 이 지역의 팬들은 언어와 정치적 경계를 넘어 K팝을 좋아하며, 서울의 외교관들이 직접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호감을 한국에 보내고 있다.
중국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팝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한 데에는 국내 시장의 큰 규모가 한 가지 이유로 작용한다. 홍콩중문대 언론·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앤서니 펑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10개 도시를 도는 콘서트 투어는 아마 전 세계를 도는 것만큼이나 큰 규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익숙한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굳이 브라질의 10대 청소년들을 이해하는 데 수년을 들일 이유가 있을까? 중국 음악가들이 정부의 지정학적 야심과 상관없이 국내 시장에 집중하는 데에는 충분한 상업적 이유가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국내 소비자가 더 적기 때문에 해외에서 팬을 확보하는 데 따르는 위험과 비용을 감수할 이유가 더 컸다.
해외로 진출할 동기가 있었다고 해도, 외국인의 취향에 맞춰 음악과 가수를 바꾸려는 기업이 없었다면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기획사들은 체계적인 훈련과 음악 제작, 홍보를 함께 진행했고, 해외에서 활동할 인재를 영입하는 한편 외국 작곡가와 안무가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과 가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싸이의 춤을 좋아하는 데 한국어를 이해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 음악’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른 문화에서 가져온 요소들이 오히려 음악이 해외로 퍼지는 데 도움이 됐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렇게 모인 해외 팬들은 또 다른 팬을 끌어들이는 역할도 했다. 유튜브를 통해 팬들은 현지 방송사가 공연 찾아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영상을 공유할 수 있었고, 직접 영상을 만들어 참여할 수도 있었다. ‘강남스타일’이 2012년 12월 조회수 10억 회를 넘어섰을 때, 유튜브는 이미 약 75개 국가에서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4년이 지난 지금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런 가능성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넷플릭스가 배급한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영화는 한국 대중문화를 작품의 핵심적인 매력으로 내세웠다. 다시 말해 이제는 미국 기업들도 한국을 소재로 세계의 관심을 끌 만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반면 중국 가수들은 이런 흐름을 만들어내기가 더 어렵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자국에서 차단돼 있어, 중국에서 모은 팬들과 해외 팬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에 음악을 발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장 열성적인 팬들이 음악을 쉽게 퍼뜨릴 수 없다 보니, 중국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은 노래가 멕시코의 청취자에게 닿기까지는 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중국으로 들어오는 콘텐츠를 엄격하게 통제하려는 베이징의 정책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를 해외로 내보내려는 목표와 부딪힌다.
이런 규제는 가수와 팬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1년 중국 인터넷 당국은 연예인 온라인 순위를 없애고 팬 계정에 대한 관리도 강화했다. 방송 규제 당국은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을 금지하고 연예인들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했으며, 특히 이른바 ‘여성적인 남성’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일부 규제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지나치게 돈을 쓰도록 부추기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어떤 남성성을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볼 것인지까지 정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는 단순히 젊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음악이 사람들의 취향을 쫓는 방식까지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호감을 얻으려는 정부라면 이런 선택은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만든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는 “대중오락에는 개인주의와 소비자의 선택, 그 밖의 가치에 관한 미묘한 이미지와 메시지가 담기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중요한 정치적 영향을 미친다”라고 썼다. 젊은이들의 사랑과 불안을 노래하는 가사가 외교 정책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더라도, 외교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즐거움을 통해 어떤 나라를 알게 됐다면, 그 나라가 지원을 요청했을 때 더 호의적으로 대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은 여전히 설득력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하지만, K팝은 해외 대중에게 분쟁이나 위협으로 먼저 알려진 정부들보다 한국에 유리한 출발점을 만들어준다.
중국 역시 이런 호감이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보여준 적이 있다. 서울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배치하기로 합의한 뒤 베이징이 한국 엔터테인먼트에 비공식적인 제한을 가했지만, 중국의 K팝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들을 직접 보기 위해 해외로 여행하고 있다.
서울이 이런 충성도 높은 팬층을 만들어내고 유지할 수 있는 산업을 지원할 이유는 충분하다. 중국 관리들은 한국 정부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지원하는 사례를 들어, 국가가 문화 수출에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산업을 지원한다고 해서 팬과 가수의 관계까지 관리할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해외 팬들이 무엇을 좋아할지는 어떤 정부 부처도 예측할 수 없으며, 성공한 가수들에게는 그 취향에 맞춰 변화할 자유가 필요하다. 중국은 제작 시설과 훈련, 홍보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이제 중국 지도자들에게 남은 문제는 팬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팝스타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2027년에도 K팝이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BTS와 블랙핑크는 내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 누가 출연할지를 둘러싼 예상에서 주요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국 관리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그 경기를 직접 관람할 표를 구하는 일일 것이다.
글 Bobby Ghosh, 전 TIME 외신 특파원 겸 국제부 에디터
한국어판 편집 조예은 기자 sophie@tim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