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출발점에 선 사람들, <인턴>

2015년 개봉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이 10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김도영 감독은 AI와 모바일 기술,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오늘의 업무 환경을 담는 한편, 다시 사회에 적응하려는 중장년과 성공한 직업여성이 겪는 현실까지 새로운 이야기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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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발점에 선 사람들, <인턴>
야근 후 사무실에 앉아 피자를 나눠먹고 있는 선우와 기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본래 유명한 작품을 다시 각색하는 것에는 품이 든다. 지난 작품의 어떤 부분들을 가져왔을지. 원래 다뤘던 내용과 형식에 비해 어떤 지점들이 달라졌을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원작과 비교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6일에 개봉한 영화 <인턴>도 마찬가지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인턴>은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작품으로 ‘온라인 스타트업’이라는 현대적인 사업장에 ‘실버 인턴’을 고용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다룬다. 보다 인간적인 순간들은 시트콤처럼 가벼운 에피소드로 풀어내고, 중간중간 나오는 ‘어른다운 대화’를 담아, 2시간에 걸쳐 천천히 따라갔다.

특히 인턴 벤을 맡은 로버트 드 니로와 대표 줄스를 맡은 앤 해서웨이는 확고한 캐릭터성으로 이 사랑스러운 오피스물을 완성했다. 당시 제작비 약 3500만 달러의 규모로 만들어졌지만 전 세계에서 약 1억 9400만 달러 이상의 흥행 수입을 기록하기도 하고, 국내에서만 약 361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던 작품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김도영 감독은 왜 <인턴>을 다시 만들었을까. 앞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과 유약영 감독의 영화 <먼 훗날 우리>를 각색한 것에 이어, 이번에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까. 인턴 기호를 맡은 최민식과 대표 선우를 맡은 한소희의 궁합을 기대하기에 앞서, 우선 반가운 장면들이 있었다.

인턴 기호의 면접 답변을 나레이션 삼아 시작하는 첫 시퀀스. 철저한 시간 약속이나 정해진 루틴에서 엿보이는 그의 품위. 대표 선우에게 잘 보이려고 조언대로 기호가 대화 중에 연신 눈을 깜빡이는 모습. 늦은 밤, 회사에서 함께 피자를 나눠 먹으며, 사실 이곳이 기호가 다니던 출판사였음을 선우가 깨닫는 순간까지. 오마주에 가까운 방식으로 촬영한 부분들은 원작의 향수를 자극한다.

반면, 전반적인 틀과 큼지막한 사건들은 가져가면서도, 자신만의 시선과 해석을 더 해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부분 역시 눈에 띄었다.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인턴>이 탄생한 것이다.

요즘의 사내 풍경을 그리다

'우투투(WOO22)'에 '실버 인턴'으로 입사한 기호. 앉아있는 그의 뒤로 사무실의 전경이 보인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벤이 ‘어바웃 더 핏(AboutTheFit)’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정렬된 맥북과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며 고객 응대를 하거나 팀원끼리 열띠게 토론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반면, 기호가 ‘우투투(WOO22)’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패션 스타트업답게 갖가지 샘플과 재고들, 조금 더 자유로워 보이는 책상과 의자 배치가 보인다.

또한, 전작과 다르게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용한 모델과의 신경전이 종종 등장하고, 플래그쉽 스토어 론칭 준비와 함께 이를 기념하는 파티를 진행하기도 한다. 온라인의 본격적인 활용을 강조하는 대신, 온오프라인 간의 이동이 익숙해진 상황에서 오늘날의 패션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여기에 영상 통화는 더 이상 업무용이 아닌 개인의 일상을 나누는 방식이 되었고, 공원에서 함께 하던 태극권은 무선 헤드폰으로 실시간 라이브 연주를 나눠 듣는 웰니스로 탈바꿈했다. 똑같이 일에 치이는 비서지만, 연신 전화로 정신없이 대응하던 베키와 달리, 민아 곁에는 이제 AI 챗봇 ‘동동이’가 있다.

줄스가 타자를 쳐서 실수로 보낸 메일은, 선우의 음성을 인식하며 핸드폰이 받아적은 DM 사고로. 이를 수습하기 위해 남의 집에 쳐들어가 노트북 속 기록을 삭제하려던 소동은, 얼굴 인식으로 상대의 휴대폰을 열어 안 읽은 채팅을 삭제하려는 꼼수로 변화하기도 한다.

전작이 일상 속 디지털 기술의 등장을 암시했다면, 이번 영화는 더 나아간 기술력이 이미 삶에 깊숙하게 스며든 모습을 자연스럽게 포착한 것이다.

한편,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 현상에 따라 실버 인턴의 고용 이유도 합리적으로 바뀌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으로서 은퇴한 경력자를 모시던 자리는 세금 절세 혜택을 받기 위한 임시 채용 건이 된다. 앞서 사회 선배에게 풍부한 경험을 구해보려던 시도와 달리, 조금은 냉철하고 현실적인 이유다.

이렇게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어 가는 환경 속에 우리의 인턴은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세대 간의 만남을 담다

기호의 입사를 영 미더워하는 민아.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사실 기호의 나이는 벤보다 6살 어린 64세다. 덕분에 노년층보다는 중장년층, 즉 인생 3막을 막 시작한 시점을 조명하니, 새롭게 어떤 것을 배워나가는 ‘인턴’의 의미가 더 두드러진다.

물론, 그는 여전히 분위기 메이커이자 만인의 해결사다. MZ세대의 줄임말을 미리 익혀갈 정도로 철저하며, 동기 인턴들의 집 상담과 연애 상담을 도맡을 정도로 친화력이 좋다. 회사 내 방치 중인 재고와 창고를 조용히 정리하며 솔선수범하고, 그만의 세심한 배려로 이 세상의 모든 어른들과 사이가 안 좋다던 대표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기호가 늘 여유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입사 후, 동기들과 달리 한참 조용하던 메시지 창을 뚫어져라 쳐다볼 때.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찍은 샘플 사진들이 디자인 누출 사고로 예민해진 선우의 신경을 건드렸을 때. 새벽부터 나와 부지런히 움직여도 ‘나이’ 때문인지 자꾸만 애물단지 취급을 당할 때. 그 역시 이곳에서 도태될까 전전긍긍했고, 또 한 번의 녹록지 않은 사회생활로 답답함을 느꼈다.

이는 평소에 굳이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낯선 이들 속에 찰나의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던 본능적인 불안과도 맞닿아 있다. 연차는 서로 다르지만 이제 막 사회에 적응 중인 직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단 경험이 많아서일 뿐 아니라, 본인도 다시 출발점에 서 있는 위치였으니까.

그래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일 하나로 미팅이 취소돼 꾸중을 듣고 터져버린 비서의 서러움을 헤아린다. 민아는 선우가 그동안의 자기 최선보다 기호를 더 신뢰하는 것 같자, 경력 37년 차를 어떻게 이기냐며 울먹거린다. 그 작아진 기분을 달래줄 대표의 칭찬 한 마디를 기호는 넌지시 끌어낸다.

사내 정치에 능숙한 선배와 밀려드는 일감에 시달리는 MD의 고군분투를 진심으로 응원하기도 한다. 밤을 새워가며 만들어낸 기획안이 통과되니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채가고, 평소 얄미운 태도로 갑질하는 팀장 윤형을 유진은 견뎌야 한다. 그렇게 더딘 인정에 지쳐버렸을 때, 그에게 덕담 한 마디를 건네는 것도 기호다.

이처럼 과거 지도를 만들던 베테랑 출판사 직원 기호는 바삐 돌아가는 사회에 다시 한번 발을 디딘 인턴으로서, 서로 다른 사정을 가진 직원들과 함께 ‘적응’해 나간다.

직업여성의 한(恨)을 풀어내다

함께 도쿄 출장을 떠난 기호와 선우. 민욱의 불륜을 목격했던 기호가 선우의 표정을 살피고 있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한편, 이들만큼이나 서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대표인 선우도 마찬가지다. 창업 3년 만에 10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우투투’를 패션업계에 다크호스로 성장시켰지만, 그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빠져있다. 선우의 선배이자 부대표인 영환과 남편 민욱 때문이다.

처음에 영환은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듯하지만, 결국 선우가 불안정하므로 경영의 대안이 필요하다며 훈수를 둔다. 그의 빛나는 아이디어와 밤낮 구분 없는 열정보다, 정신없는 틈에 발생한 사고들에 주목한 것이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기에 직접 CEO 후보들을 만나보지만, 그동안 일궈온 회사를 뺏기게 생긴 선우는 연신 혼란스러워한다.

민욱 역시 잘 나가는 아내의 성공이 기쁘지만은 않은지, 선우를 대체할 CEO의 등장을 기다리는 눈치다. 일 때문에 아이 계획을 미루고 자신과 보내는 시간도 현저히 줄어든 현실이 불편해서였을까. 와중에 그는 조교와 바람까지 피우는데, 이를 알고 있는 선우는 묵인한다. 일 때문에 남편에게 집중하지 못한 제 탓인 것 같아서다.

속 깊던 선우가 이러한 부담감과 허탈함을 내려놓은 건 기호와 함께 떠난 도쿄 출장에서였다. 그는 이자카야에서의 취중 진담으로 자신의 현 상황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그동안 비서이자 운전기사로서, 이를 직접 목격하거나 지켜봐 왔던 기호는 아무 말 없이 끝까지 들어준다. 그리고는 ‘정신 차려’라는 외마디 말과 함께 진실한 조언을 건넨다.

선우만큼 ‘우투투’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도 그렇지만,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미팅하고 지도하는 모습을 통해 느꼈다고. 또, 민욱의 불륜은 그가 잘못한 거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괜한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 없다고. 행여나 남편을 붙잡기 위해, 혹은 ‘우투투’의 미래를 위해, 섣부른 타협은 하지 말라고.

그가 자기 말을 고집하지 않는 어른이라서. 침묵을 지킬 줄 알지만, 도덕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해야 할 말은 넘어가지 않는 어른이라서. 마치 ‘딸’에게 건네는 듯한 기호의 한 마디들은 더 힘을 갖는다.

도쿄 출장에서 방문한 이자카야에 앉아 있는 선우와 기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한편, 다른 장면들보다 유난히 길게 가져간 이 대화를 통해 감독은 그동안의 직업여성들에게 씌워졌던 프레임의 의미를 곱씹게 하기도 한다.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불안하고 무책임한 이들. 이는 타고난 것인가, 상황에 의한 것인가. 실체가 있는 사실인가, 편견에 의한 가스라이팅인가. 혹시 일과 가정, 모든 것을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의한 오류와 고충으로도 볼 수 있나. 애초에 냉철한 ‘비즈니스적’ 사고가 하나의 신화이자 환상인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이를 넘어서고 있나, 아니면 아직도 다른 이에게 이를 전가하고 있나.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까슬까슬할 이야기들을 감독은 그렇게 툭 하고 건넨다.

삼삼한 드라마의 묘미

창고의 쪽창 속 달을 바라보고 있는 기호와 선우.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처음부터 <인턴>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사내에서 벌어지는 배경하에 각 인물의 역할과 내외적으로 겪는 갈등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말에 이르러서도 불필요한 잡음을 말끔하게 정리한다.

결국 디자인을 유출한 것도, 투자자에게 CEO를 따로 고용할 것을 설득한 것도 영환이었기에, 선우는 그를 내보낸다. 그리고 한번 깨져버린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움을 인정하며, 민욱과의 이혼을 결심한다. 한편, 유진은 그 역량을 인정받아 부대표로 올라서고, 3개월 간의 인턴이 끝난 기호는 회사 밖 삶으로 돌아간다.

전작에서 영환의 역할인 카메론의 캐릭터가 빌런으로 빌드업되고, 민욱의 역할인 매트가 돌보던 페이지라는 딸이 있었음을 기억해 본다면, 다소 전략적인 각색으로 극적인 전개와 간편한 해소를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피스물’이라는 장르는 가져가되, ‘가족’이 함께 봐도 불편하지 않을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에스파의 ‘Whiplash’가 흘러나오며 갑자기 이어진 춤바람에 굳이 싶어 피식하고 웃게 만든 장면도 있었다. 그래도 러브라인을 뺀 담백한 관계들에 초점을 맞추고, 새내기와 경력자의 현실적인 회사 생활이나, 세대 간의 부드러운 교류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분명하다.

극 중 기호와 선우가 창고에서 함께 바라보던 쪽창 속의 남산 타워가 그 익숙함에도 유독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처럼, 우리의 현실과 이상을 부지런히 오가던 드라마. 때로는 이런 삼삼한 작품들이 끝내 남기는 소소한 울림이 있으니까.

조예은 기자 sophi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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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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