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험을 숫자로 바꾸는 법, 기업 내부 정보가 관건
기후모델이 재해를 정교하게 예측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가진 설비·운영·방재 정보가 더해져야만 손실을 구체적으로 추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기후위험을 숫자로 바꾸는 법, 기업 내부 정보가 관건
기후모델이 재해를 정교하게 예측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가진 설비·운영·방재 정보가 더해져야만 손실을 구체적으로 추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장유정 에디터

기후위험 평가를 공시 대응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에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를 위해 기후 예측뿐 아니라 사업장별 설비와 방재 현황 등 내부 정보를 확보해 기후재해의 재무적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제1회 서울 기후금융 컨퍼런스 2026’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전환과 회복탄력성을 위한 기후 데이터 분석과 기관투자자 활용 전략’을 주제로 논의했다. 기후변화 대응과 기업의 투자·경영 전략을 연결하자는 취지다. 행사는 한국ESG커뮤니티(KEC)와 영국 기후금융 전문 비영리기관 아크(Arc)가 공동 주최하고, 비영리 에너지·기후 연구기관 플랜잇(PLANiT)과 KAIST, 서울대 기후테크센터가 함께 주관했다.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최종안에 따르면, 연결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2028년부터 기후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첫 공시 대상은 2027회계연도 정보다.
주성호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실장은 그동안 기업들이 전환 리스크를 주로 고민했지만, 물리 리스크로 인한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탄소 감축과 저탄소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등의 위험이 전환 리스크라면, 물리 리스크는 홍수나 폭염 등 기후재해에서 비롯되는 위험이다.
장민희 서울대 기후테크센터 기후리스크팀장은 물리 리스크를 평가하는 틀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활용하는 HEV 프레임워크를 소개했다. 재해 자체의 강도와 발생 가능성(Hazard),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산·생산활동 등 노출(Exposure), 피해에 대한 민감성과 대응 역량 등 취약성(Vulnerability)을 함께 살펴보는 방식이다. 같은 강도의 폭우가 내려도 핵심 생산설비가 있는 사업장과 보조설비만 있는 사업장의 손실은 다를 수 있다.
장 팀장은 “노출 정보는 기업이 가장 상세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과학 전문가가 재해의 강도와 발생 가능성을 분석하더라도, 핵심 설비와 사업장의 대비 현황은 기업이 알려줘야 한다. 그는 “기후리스크 진단은 어떤 전문가가 단독으로 개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민지 삼성화재 기업안전연구소 프로는 실제로 사업장 방재 현황을 반영해 예상 자산손실률을 조정한 C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C사의 폭우 예상 자산손실률은 2024년 지속가능성보고서에서 0.53%였지만, 삼성화재의 현장 평가를 반영한 2025년 보고서에서는 0%로 산출됐다. 두 수치 모두 2026~2050년의 연평균 예상치다.
삼성화재는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지면 고도와 배수체계, 차수판 설치 현황 등을 확인했다. 강 프로는 바뀐 예측치가 “건물마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방재 효과를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기후위험 평가, 비용이 아니라 투자가 되려면
패널 토론에 참여한 권미엽 삼일PwC 파트너는 “기업의 준비는 공시 대응까지는 왔고 경영 의사결정 반영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투자 심의에 ESG 평가 항목이 있더라도 체크리스트나 정성적 평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고, 기후위험과 기회가 재무에 미치는 영향까지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권 파트너는 “노출(Exposure) 관련 정보는 기업 내부에서 관리해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리스크 정량화로 연결하는 체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업장별 자산 유형과 핵심 설비의 복구기간, 전력·용수 공급에 대한 의존도 등이 필요한 정보다. 이런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분석 결과도 투자 의사결정의 근거로 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컨설팅 기관도 어떤 데이터와 가정으로 손실률을 산출했는지 기업에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를 추정하는 만큼 기관마다 결과는 다를 수 있지만, 기업이 산출 근거를 이해해야 경영 판단에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권 파트너는 기업도 완벽한 모형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보다 현재 보유한 정보를 점검하고, 이를 분석에 활용할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런 중요한 정보가 공시에만 쓰이면 비용이 될 것이고, 의사결정에 쓰이면 투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유정 기자 chlo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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