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민당 주석 “중국과의 대화가 최선의 대만 방어책”
1988년 국민당 타도를 외쳤던 그는 이제 시진핑과 마주 앉아, 대화가 굴복이 아님을 대만 유권자에게 설득해야 한다.
대만 국민당 주석 “중국과의 대화가 최선의 대만 방어책”
1988년 국민당 타도를 외쳤던 그는 이제 시진핑과 마주 앉아, 대화가 굴복이 아님을 대만 유권자에게 설득해야 한다.

문상덕 에디터

정리원은 한때 자신이 지금 이끄는 정당의 해체를 촉구했던 인물이다. 1988년 10대였던 그는 농민 집회 연단에 올라 대만 국민당을 “가장 혐오스러운 지배 세력”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동포들에게 “국민당의 폭정을 타도하고 우리 자신의 나라를 세우자”고 외쳤다.
오늘날 정리원은 타이베이 국민당 중앙당사에서 당을 이끌고 있다. 당 대표 집무실에는 그의 이질적 정치 이력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놓여 있다. 캥거루 인형, 샤오미 전기차 모형, 책상을 지키는 옥 불상이다. 정리원은 TIME에 “나는 매우 독실한 불교 신자”라고 말했다.
그의 집무실에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 있다.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장면을 보도한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의 액자다. 신문에는 ‘시 주석, 양안 간 더 긴밀한 유대 촉구’라는 제목이 실렸다.
국민당 대표의 중국 방문은 10년 만이었다. 당시 중국은 거의 매일 전투기·군함·해경 함정을 동원해 대만 항구 봉쇄, 정밀 타격, 외국 개입 차단 훈련을 벌이고 있었다. 정리원은 “시 주석과의 회담 전에는 누구도 결과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중국 측이 보여준 호의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양안 디커플링

시진핑에게 대만은 국공내전의 미완 과제에 그치지 않는다.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은 대만으로 건너갔고, 이 섬엔 인구 2300만 명의 민주 사회가 자리 잡았다. 시진핑에게 대만은 중국을 세계의 기술·경제·정치 강국으로 부흥시키려는 더 큰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서방과 긴밀히 연결된 번영한 민주주의 중국 사회인 대만의 존재 자체가, 권위주의 통치만이 중국인에게 적합하다는 주장에 대한 뼈아픈 반박이기 때문이다.
정리원의 변신은 대만이 직면한 고통스러운 선택을 상징한다. 무력으로 섬을 장악하겠다고 위협하는 강대국과 거리를 두는 것이 안보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그 강대국과 가까워지는 편이 안전을 보장하는가의 문제다.
집권 민주진보당은 대만의 미래가 중국과 분리돼 있다고 보고,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 교역 및 비공식 관계를 넓히는 데 힘을 쏟아 왔다. 2010년 중국은 대만 전체 대외투자의 83.8%를 차지했다. 그러나 2026년 첫 5개월간 이 비율은 0.9%로 떨어졌다.
이 같은 디커플링 과정에서 중국은 경제와 외교를 무기로 대만을 압박해 왔다. 민진당 집권 10여 년 동안 중국은 대만산 제품 수입을 제한하고, 소비력 큰 중국인 관광객의 방문도 줄였다. 또 대만의 외교 우방 10곳을 빼앗아 현재 대만의 공식 수교국은 12개국에 불과하다.
대만 정치권에는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국민당 내부에는 미국을 언제까지나 믿을 수 없으며, 타이베이가 불리한 처지에서라도 베이징과 대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국민당의 암묵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만은 당장 통일을 택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미래를 공식적으로 선택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정리원의 부상은 이런 타협을 상징한다. 그는 독립 지향적 과거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정체성, 양안이 ‘하나의 중국’에 속한다는 이른바 ‘1992년 합의’, 베이징과의 직접 대화를 받아들였다. 시진핑과의 회담은 중국이 오랫동안 내세우지 못했던 당근을 꺼내 보일 기회가 됐다. 경제적 유인책, 교류 복원, 안정의 약속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리원은 선거 경험이 많지 않고 워싱턴 인맥도 얕다. 국민당 전통 지지층에 대한 호소력 역시 기대만큼 강하지 않다. 그가 더 넓은 대만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민진당 의원이자 차기 타이베이 시장 선거 후보인 푸마 선은 정리원의 시진핑 회담에 대해 “대만에 좋은 움직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대만을 침공하려는 나라이고, 회색지대 전술도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WHY WE WROTE THIS
대만 국민당은 통일은 거부하면서 중국과 대화하려고 한다. 그게 대만해협을 안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하지만 중국은 한 번 대화하면 더 많은 통합을 요구한다. 그런 대만을 미국은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국민당의 ‘외교적 줄타기’가 동아시아의 화약고를 관리해 낼까.
그렇다고 시진핑이 전쟁을 서두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역사가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기다릴 여유가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억지력은 중국에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설득하는 데 있지 않을 수 있다. 인내가 가장 적은 비용이 드는 길이라는 점을 납득시키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정리원은 “나는 냉전적 사고방식을 없애고 싶다”며 “제1도련선이 군사 충돌의 최전선으로 인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평화의 최전선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긴장을 낮춰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추산에 따르면 대만 유사시 전 세계 공급망은 전례 없는 충격을 받고, 경제적 비용은 약 10조달러에 이를 수 있다. 다만 충돌을 막는 해법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민진당은 당 강령에 대만의 공식 독립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도자들은 중국이 분리 독립에 군사 대응하겠다고 공언해 온 현실을 의식해 이 목표를 실용적으로 피해 왔다. 하지만 이런 모호한 태도는 중국 지도부에 거의 통하지 않았다. 중국은 라이칭더 총통을 “평화의 도발자이자 파괴자”라고 부른다.
정리원의 처방은 직접 대화와 중재자 역할의 복원이다. 민진당이 두 차례 반의 임기를 집권하는 동안 양안 정부는 사실상 전투기와 해군 훈련을 통해서만 소통해 왔다. 그러나 더 강한 상대가 제시하는 평화에는 대개 조건이 따른다. 정리원의 과제는 자신이 그 위험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일이다.
그는 “대만에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우리가 전쟁을 향할 것인가, 아니면 양안 평화를 향할 것인가. 그것이 내가 당 대표 출마를 결심한 이유”라고 말했다.
본성인 어머니, 외성인 아버지
키 178㎝의 정리원은 강렬한 존재감과 거침없는 연설로 유명하다. 인터뷰에서도 그의 답변은 유세 현장에서 다듬어진 듯한 호방하고 단호한 리듬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석의 그는 친절하고 다소 내성적이다.
그는 “사실 나는 아주, 아주 조용한 사람”이라며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정치적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살아온 그의 이력에 비추면 뜻밖의 고백이다. 그의 정치 여정은 대만의 복잡한 사회 역학을 보여준다. 대만의 정치적 균열은 오랫동안 토착 대만인과 국공내전 뒤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이들 사이에서 형성돼 왔다.
정리원은 대만 남부 도시 타이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대만인이고, 아버지는 중국 남서부 윈난성 출신의 국민당 군인이었다. 아버지는 1953년 동남아의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을 거쳐 대만으로 건너왔다.
그는 “아버지는 정치를 싫어했고, 전쟁과 군대도 싫어했다”며 “국민당도 싫어했다. 아버지는 모든 정치인이 개자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지금의 딸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정리원은 웃으며 “내가 아버지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리원은 1990년대 초 대만의 와일드 릴리 민주화 운동에서 학생 지도자로 활동했다. 부모는 그의 활동을 몰랐다. 그는 “어느 날 집을 나서려는데 아버지가 ‘오늘은 나가지 마라. 아주 위험할 것’이라고 했다”며 “아버지는 내가 지도자인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정리원은 국립대만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미국 템플대에서 학업을 마쳤고,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후 민진당 소속으로 현재는 폐지된 국민대회 대표를 지냈다. 본토 출신 아버지를 둔 그는 토착 대만인 기반을 넘어 지지층을 넓히려던 민진당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정리원은 상사의 성희롱 의혹 처리 방식을 비판하다 민진당을 떠났다. 이 의혹은 결국 무혐의 처리됐고, 정리원에게는 당 차원의 징계 절차가 이어졌다. 그는 탈당이 개인적 불만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각성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진당의 대만 독립 주장은 사실 사기라는 것을 깨닫고 매우 실망했다”며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꺼내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원은 2005년 국민당에 입당했고, 3년 뒤 입법위원에 당선됐다. 당 대변인을 지냈고, 의원직을 잠시 잃었을 때는 TV 시사 프로그램 진행도 맡았다. 그는 “돈 때문에 했을 뿐”이라고 웃었다. 이후 다시 입법부로 돌아온 그는 지난해 10월 중국과의 관계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는 “1992년 합의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고 제도화된 평화적 양안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부상은 논란 속에서 이뤄졌다. 비판자들은 정리원의 국민당 대표 선거를 지원한 소셜미디어 공세가 베이징의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푸마 선은 “이는 중국의 정보 작전 일부”라며 “정리원을 칭찬하는 유튜브 채널이 대거 등장했다. 그것이 그가 당선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리원은 자신이 중국 공산당의 꼭두각시라는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터무니없는 농담”이라며 “완전한 날조”라고 말했다.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대만 시민의 중국 본토에 대한 친밀감은 줄어들고 있다. 통일을 거부하는 대만인의 비율은 2005년 39%에서 올해 61.7%로 상승했다. 그러나 중국의 강압과 지속적인 전쟁 위협은 환멸과 갈등 피로감도 키웠다. 별도 조사에서는 지난해 응답자의 40.8%만이 대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2년 전보다 4%포인트 낮은 수치다. 반면 58.3%는 베이징과의 정부 간 대화 재개와 민간 교류 완화를 지지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대만 관계 전문가 라이언 하스는 “대만인들은 흔히 양안 관계에서 ‘골디락스식 접근’을 원한다고 말한다”며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딱 알맞은 관계를 바란다는 것”이라고 했다.
외교적 줄타기

문제는 대화만으로 베이징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다. 2008~2016년 국민당 정부 시절 시진핑은 당시 마잉주 총통에게 더 긴밀한 정치 통합을 위한 협상에 나서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마 총통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버텼다.
2028년 대만 차기 총통 선거가 치러질 때면, 이 전략이 마지막으로 시험된 지 12년이 된다. 관건은 시진핑을 여전히 기다리게 할 수 있느냐다. 하스는 “베이징은 관계를 다시 진전시키고 싶어 할 것이며, 국민당이 기대하는 것보다 다소 더 야심 찬 시간표를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며 “국민당이 권력을 유지할 경우 간과되기 쉬운 위험이다. 실현되지 않은 기대는 실망과 그에 따른 행동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만에는 중국이 제시해 온 ‘일국양제’ 방식의 통일을 받아들일 의향이 거의 없다. 이는 홍콩에 적용된 틀이지만, 홍콩에서는 자유가 크게 훼손됐다. 정리원은 4월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일국양제’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진핑의 “매우 우호적인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는 “시 주석은 우리에게 진심 어린 감정과 호의를 표현했다”며 “우리를 같은 가족의 일원처럼 대했고, 자신이 전쟁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보여줄 기회를 소중히 여겼다”고 말했다.
통일 국민투표를 고려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현상 변경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며 “국민투표는 큰 변화에 해당하며, 대만 국민의 이익과 의지에 부합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리원의 발언은 그가 걸어야 할 외교적 줄타기를 보여준다. 국민당은 오랫동안 ‘미국에는 친밀하게, 일본과는 우호적으로, 중국은 안정시킨다’는 구호를 내세워 왔다. 그러나 세 차례 연속 대선 패배와 지지율 하락 뒤, 정리원은 급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약으로 당 대표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아래 미국의 안보 보장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리원의 주장은 베이징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국민당의 승부수라는 것이었다.
정리원은 이제 ‘대만의 국민당’ 서사를 만들려 하고 있다. 지역 정서를 고려하면서도 더 큰 중국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쉽지 않은 전환이다. 민주적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베이징을 자극할 수 있고, 양안 중국인의 혈연적 유대를 앞세우면 워싱턴을 멀어지게 할 위험이 있다. 대만의 자율성을 조금씩 훼손하지 않으면서 중국과 가까워질 구체적 방안은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그는 “나는 양안 화해뿐 아니라 미·중 관계 개선도 추구한다”며 “그것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전체의 평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못 만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만 방위 의지를 확보하는 일이다. 미국은 1979년 외교적 승인을 타이베이에서 베이징으로 전환했지만,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대만의 자위에 필요한 무기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사상 최대 규모인 140억 달러 무기 지원 패키지는 아직 트럼프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했다. 워싱턴에서는 트럼프가 다음 달로 예상되는 시진핑의 백악관 국빈 방문을 방해할 일을 원치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리원의 베이징 방문은 국민당 대표로서는 중국보다 미국을 먼저 찾지 않은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역사적이었다. 그는 이후 6월 미국을 찾았지만, 이것이 양안 관계를 태평양 관계보다 우선시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는 “양안 상황은 매우 긴장되고 적대적”이라며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 첫발을 내디뎌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 가기 전에 양안 평화를 만들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먼저 평화 방문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방미가 워싱턴을 안심시키는 데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정리원은 트럼프를 만나지 못했다. 뉴욕에서는 대만이 “다음 호르무즈 해협”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미국 외교정책을 비판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그는 또 미국 사회에서 중국계가 유대인 공동체와 비슷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을 되풀이한 듯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논란성 발언은 중국 방문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대만의 든든한 후원국 중 하나인 일본의 식민지 유산을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사나에 다카이치 일본 총리는 중국의 대만 공격이 일본의 군사 대응을 촉발할 수 있다고 언급해 베이징과 외교 마찰을 빚기도 했다.
정리원은 다시 줄타기를 시도했다. 그는 “일본 총리는 대만에 문제가 생기면 일본에도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며 “나는 그것이 부정적인 말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대만해협에 문제가 없다면 세계에도 문제가 없다는 긍정적 의미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만의 미래는 세계적 난제다.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대만 반도체 산업이다. 이는 AI 혁명의 기반이며, 대만 증시를 세계 5위 규모로 끌어올린 동력이기도 하다.
이 첨단 반도체 공장은 오랫동안 충돌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만드는 ‘실리콘 방패’로 불려 왔다. 동시에 중국이 장악할 경우 AI 시대의 결정적 우위를 안겨줄 수 있는 탐나는 목표물이기도 하다.
정리원은 중국과의 “군비 경쟁”에 반대해 왔으며, 라이칭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1조2500억 대만달러, 약 380억 달러 규모의 특별 국방예산안을 저지했다. 그는 미국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무기 구매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지출은 적법 절차와 재정 규율을 따라야 하며 부패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 승인된 특별예산은 7800억 대만달러, 약 240억 달러로 제한됐다.
그는 “국방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며 “향후 새로운 규모의 예산안에 더 구체적인 내용이 있다면, 역시 입법부 심의에 부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의 압박 방식은 더 교묘해지고 있다. 군사적 위협은 계속되지만, 중국은 언어·법·국제적 정당성을 둘러싼 전쟁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유엔에서 중국 대표권을 타이베이에서 베이징으로 넘긴 유엔총회 결의 2758호를 ‘중국의 대만 주권 인정’으로 재해석하려 한다.
이는 향후 위기 때 외교적 지지가 전장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다는 계산을 반영한다. 유엔에서 중국이 결정적 표결 승리를 거둘 경우, 중국은 국제질서의 수호자로, 미국은 무모한 질서 파괴자로 묘사될 수 있다.
정리원은 자신이 한때 경멸했던 국민당이 대만의 미래를 지키는 최선의 비전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오는 11월 지방선거는 그의 메시지가 대결도 정치적 흡수도 원치 않는 대만 유권자에게 얼마나 먹혀들었는지를 보여줄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정리원의 과제는 중국과 대화하는 것이 중국에 굴복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점을 대만 국민에게 설득하는 일이다.
그는 시진핑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말해 시 주석과 나는 서로 낯선 사람입니다. 나는 그를 이전에 만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뢰는 양측이 함께 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안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 본토의 사람들도 나를 신뢰해야 합니다.”
글 Charlie Campbell, Editor at Large
편집 문상덕 에디터
이 기사의 원본보기: Taiwan’s Opposition Leader Says Talking to China Is the Island’s Best Def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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