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전시 선거 정면 반박…“국가 파괴”
임기가 끝난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시 선거를 거부하면서 우크라이나가 또 다른 내부 갈등에 휩싸였다.

유제니 에디터
정치·사회부 기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시(戰時) 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강하게 반박했다. 러시아와의 전면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은 국가를 분열시키고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최근 대통령 측근들의 부패 의혹까지 불거진 데다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 시각) 기자 간담회에서 전시 선거론에 대해 “이 같은 전쟁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 자체가 엄청난 위험 요소”라며 “지금 선거를 강행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두 동강 낼 쓰나미와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참혹한 전쟁 중에 선거판을 벌이는 것은 우리가 나라를 망가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시 선거 실시론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미하일로 페도로우(Mykhailo Fedorov) 전 국방장관이다. 그는 지난주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을 통해 “민주주의가 러시아의 인질이 돼서는 안 된다”며 선거 실시를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우방이었던 페도로우는 러시아와의 전쟁 수행 방식을 놓고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 지난 7월 전격 해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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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4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 사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는 만료됐다. 전쟁과 계엄, 국가 안보 문제가 맞물린 상황에서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을지, 우크라이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젤렌스키 리더십 시험대
젤렌스키 대통령의 5년 임기는 2024년 5월 만료됐지만, 현재 계엄령에 따른 전시 규정에 따라 임기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행법상 계엄령이 선포된 동안에는 대통령을 포함한 각종 선거가 중단된다.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실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부패 스캔들이 불거진 것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본인이 직접 연루된 것은 아니지만 핵심 보좌관을 해임하는 등 수습에 나서면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페도로우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공개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페도로우에 대해 “지금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우리가 함께 수많은 고비를 넘겼지만, 그가 스스로 잘못된 길로 들어섰거나 누군가에 의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지도자들 간에 이 정도 수준의 갈등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페도로우와 올렉산드르 시르스키(Oleksandr Syrsky) 전 군 총사령관 간 갈등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앞서 페도로우의 해임에 반발해 군 내부와 키이우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시르스키 총사령관도 전격 교체했다.
시르스키가 구태의연한 군 수뇌부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은 반면, 페도로우는 드론 등 첨단 군사기술 도입을 주도해 온 소장파로 분류된다.
국방비 36조원 적자…러, 추가 동원 경고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방 재정난도 젤렌스키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270억 달러(약 36조 원)에 달하는 예산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연초 국방부가 하반기에 집행할 자금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해 드론 생산 등에 투입했다”며 “하반기에 들어선 지금 구멍 난 예산을 긴급히 메우고 충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3일 키이우에서 열린 북유럽·발트 8개국 정상회의에서도 국방 재정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덴마크·에스토니아·핀란드·아이슬란드·라트비아·리투아니아·노르웨이·스웨덴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재정 지원을 계속하기로 뜻을 모았다.
영국의 앤디 번햄(Andy Burnham) 신임 총리도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우크라이나를 택했다. 번햄 총리는 24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러시아는 우리의 단호한 의지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며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민 사이에서도 전시 선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KIIS)가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쟁이 끝난 뒤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응답은 57%였다. 지난 3월 조사(69%)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과반이었다.
전문가들도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공정하고 안전한 선거를 치르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전쟁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국민이 해외로 피란했고,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에서는 투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연장이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일축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휴전안도 거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추가 병력 동원에 나설 가능성도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는 9월 18~20일 예정된 러시아 의회 총선이 끝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할 30만명의 병력을 추가 징집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가 2027년에도 대규모 추가 동원령을 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증원된 러시아군 병력 상당수가 현재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전선에 집중 배치될 것으로 전망했다.
글 Chad de Guzman
편집 유제니 에디터
이 기사의 원본보기: A ‘Tsunami’ for Ukraine: Zelensky Rejects Wartime E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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