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맞대어 꾸는 꿈, <룩백> [아시아의 장면들]
만화를 향한 열정으로 서로를 만나고, 이별 뒤에야 함께한 시간의 의미를 되짚는 두 사람의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섬세한 그림과 소리, 자연과 일상의 풍경을 통해 창작의 기쁨과 상실의 여운을 담아낸다.
서로 맞대어 꾸는 꿈, <룩백> [아시아의 장면들]
만화를 향한 열정으로 서로를 만나고, 이별 뒤에야 함께한 시간의 의미를 되짚는 두 사람의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섬세한 그림과 소리, 자연과 일상의 풍경을 통해 창작의 기쁨과 상실의 여운을 담아낸다.

조예은 에디터
![서로 맞대어 꾸는 꿈, <룩백> [아시아의 장면들]](/_next/image?url=https%3A%2F%2Ftime-korea-images-prod.s3.ap-northeast-2.amazonaws.com%2Farticles%2F339%2Fcec27c84d53b4171a67eff0693b333e0.jpg&w=3840&q=75)
아시아의 장면들
아시아 영화를 통해 지금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아시아 영화가 다루는 불안과 욕망은, 지금 우리가 매일 겪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TIME 한국판의 조예은 문화·예술 에디터가 아시아의 감수성, 그리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함께 짚어본다. 한 편의 영화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이야기한다. [편집자 주]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했던 서로 닮은 한 쌍의 장면 사이,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어린이일 때도 어른일 때도, 창문 앞에 앉은 후지노는 부지런히 무언가를 그린다. 낮에도 밤에도, 아침에도 새벽에도, 그의 펜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런 후지노의 손과 시야에는 언제나 한 뼘 길이를 조금 넘는 직사각형의 만화 틀이 있다. 초등학교 신문에 실었었던 네 컷 만화. 그 작은 칸들 덕분에 쿄모토와 이어졌다. 그리고 아마도 그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선의의 경쟁 속에 피어난 것

자타공인 인정받은 만화 실력으로 장밋빛 꿈을 꾸던 초등학교 4학년 후지노가 있었다. 동급생 쿄모토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신문에 실을 또 다른 만화 작가로 추천된 그는 등교 거부 학생이라 얼굴조차 모른다. 그러나 정교한 그림체 하나만큼은 분명 수준급이다.
이에 후지노는 수련과도 같은 연습에 돌입한다. 초보 미술 해부도부터 만화로 배우는 원근법까지, 공부도 친구도 멀리하고 식음도 전폐하며 실력을 쌓아 나갔다. 그러나 1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여전히 쿄모토의 생생한 작품에 비할 데가 못 되자, 그는 전의를 상실한다. 선의의 경쟁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어느 한 겨울, 담임이 쿄모토에게 전달할 졸업장을 후지노에게 건네지 않았다면. 그의 집 한쪽 복도에서 자기가 산 것과 같은 연습장이 산같이 쌓여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쿄모토를 소재로 즉석에서 그린 만화가 굳게 닫힌 그의 방문 틈 사이로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마 후지노 ‘선생’의 얼굴을 보기 위해 쿄모토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후지노 쿄’로서의 동행도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일 때 <메탈 퍼레이드>로 공모전 준수선작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고, 단편 일곱 작을 점프에 싣지 못했을 것이다. 연재라는 목표를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도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 동경과 갈망으로 뭉친 두 사람은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후지노가 빛나는 아이디어로 캐릭터와 서사를 꾸리면, 쿄모토가 섬세한 솜씨로 이를 받쳐주는 바탕을 완성한다. 덕분에 한 명은 꿈을 이뤘고, 한 명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길이었다.
그 길 끝에서 쿄모토가 떠나지 않았다면. 담대하게 이끌어 주던 후지노의 손을 놓지 않았다면. 그가 뒤를 돌아볼 일도 없었을까.
이별 후 비로소 마주한 마음

자신의 배경이 되어줬던 쿄모토가 독립했어도, 공허함을 애써 누르며 작업을 이어가던 후지노였다. ‘후지노 쿄’로서 처음 구상했던 <샤크킥>은 어느덧 성공 가도에 올라 굿즈를 거쳐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진행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야마가타 미대에서 끔찍한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고, 이제는 영영 쿄모토를 볼 수 없게 됐다.
텅 빈 빈소를 방문한 후지노는 복도 위 스케치북 속에서 두 사람을 이어준 네 컷 만화를 발견한다. 눈물과 함께 이를 박박 찢어버리던 그는 후회로나마 그려본다. “나오지 마, 나오지 마!” 그날, 자신과 마주치지 않는 쿄모토를. “그럼, 또 보자구” 또 다른 날, 무사히 살아남은 그와 처음 만나는 순간을.
조금 외롭고 쓸쓸하더라도 쿄모토가 홀로 인생을 꾸려나갔다면. 작품 속 적에게 날리던 ‘샤크킥’처럼 후지노가 때에 맞춰 범죄자를 멋지게 제압했다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방문 틈 사이로 다시 한번 흘러 들어간 염원에 답하듯 미지의 답이 도착하자, 후지노는 방문을 열고 쿄모토의 세계를 목격한다.
하얗게 펼쳐진 설원, 환한 빛이 들어오는 터널, 노을이 물든 기차 안. 쿄모토가 손수 그렸을 풍경화들은 두 사람의 기억을 품고 있다. 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후지노는 곱씹는다.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다’던 쿄모토의 말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자신 역시 ‘만화는 그리는 게 아니라 보는 거’라 하면서도 왜 멈추지 않았을까.
함께 했을 때의 즐거움과 벅차오름. 그동안 잊었거나 어쩌면 회피했을 장면들은 현실과 상상을 경유하며 하나의 꿈결처럼 떠오른다. ‘룩백(look back)’. 늘 자신의 등을 쳐다보며 만화를 그렸을 쿄모토처럼, 이제는 후지노가 뒤를 돌아 그의 등을 쳐다본다. 그리고 유품 위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조용히 매만진다.
만화에 대한 초심과 쿄모토에 대한 진심. 그렇게 지난 관계들의 의미를 확인했을 그는, 비로소 그 방으로부터 나와 한 걸음을 뗀다.
이토록 눈 시린 세계를 그려내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전부터 애도와 아이들의 서사에 주목해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남은 사람들이 해결하고 해소해야 하는 여남은 감정들, 어른들의 세계만큼이나 복잡한 사연과 심경을 가진 아이들의 다층적인 세계를 관찰해 온 것이다.
<환상의 빛>에서는 할머니에 이어 남편까지 잃은 상실의 상처를 재혼으로 서서히 보듬어가는 유미코의 일상을 그렸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바다에 빠진 낯선 소년을 구하려다 희생한 장남의 제사를 위해 매년 모이는 가족을 조명하며, 각자의 마음속에 있던 울분과 열등감을 풀어낸다.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불현듯 떠나버린 엄마를 기다리며 의지하고 다투는 아이들의 위태롭고도 서글픈 날들을 담았다. <괴물>에서는 반복되는 어른들의 오해와 편견, 당장의 혼란을 무마하기 위한 사회적 명분 속 서로를 향한 마음을 깨우치는 미나토와 요리의 애증 어린 관계를 다룬다.
이번에도 그는 예측할 수 없는 만남과 이별, 반복되는 삶과 죽음이라는 순환에 주목했다. 동시에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화 제작이 잇따라 중단되던 시기에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의 단편 만화 『룩백』을 접한 후 느꼈던 감독의 감상과도 느슨히 연결된다.

창작자로서의 일이 더 이상 세상에 필요한지 고민하던 그는 덕분에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무언가에 열중하고 몰두했던 마음까지 선명하게 되살려준 이 만화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더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영화만의 미감과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가령, 사계절을 지나며 변화하는 광활한 자연을 조감으로 담아내고, 그 안에 놓인 자그마한 사람을 비추며 인생의 덧없음을 품어주기도, 반짝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룩백>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학교의 하루와 후지노 가족의 모습, 할머니와 함께 살다 홀로 남은 쿄모토의 사정도 세심히 포착한다.
깊이 있는 묘사에 청각적인 효과를 더해 물성의 표현 역시 극대화한다. 샤프로 선을 긋고, 만년필로 색칠하며, 종이를 만지거나 넘기고, 디지털 작업으로 칸을 채우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잦은 백색 소음의 활용과 달리 배경 음악은 비교적 절제했다. 손바닥을 문질러 귓가에 대고 바다를 들을 때나, 첫 상금으로 시내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을 때 등, 인물들의 의미 있는 순간을 기념하듯 잠깐씩 들릴 뿐이다.
이런 흐름 속 적재적소에 귓가를 가득 채우는 메인 테마와 눈앞에 펼쳐지는 2차원으로의 회귀는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쿄모토에게 인정받고 절로 나온 후지노의 콧노래는 기타 반주 위의 현악기 음률을 거쳐, 두 사람이 자유롭게 뛰고 유영하는 환상 속 오케스트라 연주로 이어진다. 각 장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남겨둔 여백에 다채로운 색과 움직임의 그림을 채우며, 그동안의 잔잔함을 깨고 극적인 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만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애니메이션에서 실사화로. 한 권의 책에서 한 편의 영화가 된 <룩백>은 언젠가 자기 작품이 영상으로 만들어지길 바라는 이 세상 모든 후지노에게 또 다른 영감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어디선가 숨어있는 쿄모토에게 일말의 용기를 심어줬을지도 모른다.
노력, 협력, 독립, 극복. 혹은 경쟁, 만남, 이별, 기억. 결국 네 컷의 칸을 채운 건, 단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예은 기자 sophi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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