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진실을 감추다, <베러티>

베러티의 원고는 끔찍한 고백일까, 아니면 편지가 주장하듯 치밀하게 꾸며낸 허구일까. 소설에 이어 영화도 답을 내놓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베러티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흔들며, 무엇을 믿어야 할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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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진실을 감추다, <베러티>
미스터리한 베러티 크로퍼드(앤 해서웨이 분)의 모습.사진=소니 픽쳐스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크쇼 ‘핫 원스’ 촬영장. 진행자 숀 에번스와 마주 앉은 베러티 크로퍼드(앤 해서웨이)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앞서 우리는 누군가 노트북으로 이 인터뷰를 봄으로써 그 일부를 본 적이 있다. 이제 영상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노트북 화면이나 원고에 가려지지 않은 채, 베러티와 관객이 마침내 온전히 마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 촬영됐다. 베러티가 자동차 사고를 당해 말을 잃기 전, 한 작가가 그의 집에 들어와 작품을 대신 쓰기 전, 그리고 남편과 그 작가가 베러티의 몸을 호숫가로 옮긴 밤이 오기 전의 모습이다. 추후 인터뷰는 베러티의 확신에 관한 한마디를 마지막 대사로 던진다. 이윽고 화면이 어두워진다.

이처럼 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제목과 같은 이름의 베러티에게 다시 돌아간다. 그가 반사회적인 괴물인지, 아니면 비극의 희생자인지 끝내 밝히지 않은 채,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대담한 결말이다. 마이클 쇼월터 감독과 원작자 콜린 후버에게는 이 모호함이 핵심이기도 하다. 영화 <베러티>는 2018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각색했다. 당시 출판사의 도움 없이 출간됐지만,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큰 성공을 거두며 현대 출판계에서 손꼽는 스릴러로 자리 잡은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 속 형편이 어려운 작가 로웬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던 중 베러티가 쓰던 시리즈를 마무리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자동차 사고를 당한 그는 더는 직접 글을 쓸 수 없게 됐다. 말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베러티의 서재에서 로웬은 『그렇게 하라(So Be It)』라는 자전적 원고를 발견한다. 사고를 당하기 전, 베러티가 쓴 이 글에는 쌍둥이 자녀 하퍼와 크루를 원망했다는 고백과, 하퍼가 집 뒤편 호수에서 물에 빠졌을 때 구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로웬은 베러티의 남편 제러미도 만난다. 아내를 잃을 위기에 처한 그는 슬픔 속에서도 로웬을 세심하게 챙기고,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결말을 큰 틀에서 유지한다. 크로퍼드 부부의 집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끝내 확실하게 밝히지 않는 점도 같다. 달라진 점은 마지막 말을 하는 인물이다. “이 이야기에는 굉장히 강렬한 무언가가 있어요. 정말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죠. 무섭기도 하고, 관능적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요. ‘잠깐, 방금 그런 일이 일어난 거야?’하고 놀라게 되는 순간들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어요.” 쇼월터 감독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 제작에도 참여한 후버에게는 기준이 좀 더 단순했다. “독자들이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영화에서도 똑같이 느끼고 돌아가기를 바랐어요.”

원고와의 위험한 사랑

로웬(다코타 존슨 분)이 베러티의 책을 읽고 있다. 사진=소니 픽쳐스

영화는 로웬이 아니라 인터뷰에 출연한 베러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진행자 게일 킹은 베러티를 세계에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며 치켜세우고, 베러티는 자신의 삶을 두고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킹이 받아친다. “악당들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 말은 이후 벌어질 모든 일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역 앞 인도. 헤드폰을 낀 로웬 애슐리(다코타 존슨)는 근처에서 차에 치인 자전거 운전자의 피를 뒤집어쓴다. 그런 그를 커피숍 화장실로 데려가 깨끗한 흰 셔츠를 건네는 사람은 제러미 크로퍼드(조쉬 하트넷)다. 그는 로웬보다 침착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보다 더 심한 일도 겪어봤어요.” 제러미가 이렇게 말하자 로웬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는 지난봄 여덟 살 딸의 시신을 호수에서 건져 올렸다고 답한다. 로웬 역시 자신의 상실을 털어놓는다. 어머니가 지난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몇 분 뒤, 로웬은 해셰트 출판 그룹과의 미팅에서 제러미를 다시 만난다. 베러티의 편집자는 그에게 베러티의 시리즈를 대신 마무리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제러미는 로웬에게 제안받은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다며 따로 50만 달러를 요구하라고 조언한다. 로웬은 그의 말대로 금액을 제시하고, 실제로 그 돈을 받아낸다.

이후, 로웬은 베러티의 원고가 보관된 버몬트주의 크로퍼드 부부 집으로 향한다. 제러미는 그곳에서 지낼 방을 내준다. 집 뒤편에는 모서리가 도드라진 건물과 낮은 천장 너머로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로웬은 살아남은 쌍둥이 중 한 명인 크루(브래디 와그너)를 만난다. 작고 조심스러운 아이는 경계하는 눈빛이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세운 채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 베러티와도 마주한다.

로웬은 이내 베러티의 책상에서 원고를 발견한다. 이는 담뱃갑 안에 숨겨진 USB 메모리에 저장된 글로, 출판사가 의뢰한 작품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베러티가 자신의 결혼 생활을 기록한 이 이야기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가 처음으로 제러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밤부터 시작된다. 이후 영화는 로웬이 집에서 보내는 일상과 『그렇게 하라』의 각 장을 번갈아 보여준다. 원고의 내용을 영화 속 장면으로 옮기는 방식은 이 작품에서 가장 대담한 시도이기도 하다.

로웬이 원고를 읽기 시작하면 글 속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베러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때로는 책장을 넘기는 로웬의 움직임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작가의 서문은 도발적인 문장으로 끝난다. “여기까지 왔군요. 인간이여. 호기심 많은 존재여.” 베러티는 이어 쓴다. “계속 읽으세요. 하지만 한 가지만 알아두세요. 우리가 향하는 곳에는 빛이 없습니다.”

해당 연출은 살인 사건을 다루는 스릴러의 익숙한 틀을 흔든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는 일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후버는 이러한 방식이 처음에는 걱정스러웠다고 인정한다. “아주 잘되거나, 아주 나빠질 수 있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성된 장면을 본 뒤에는 걱정이 사라졌고, 결과물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쇼월터에게는 원고를 읽는 행위 자체가 영화의 중요한 주제였다. “하나의 관계예요. 아주 내밀하고, 온통 그 관계에 사로잡히게 되죠.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요.”

원고에 담긴 이야기는 냉혹하다. 베러티는 제러미를 누구와도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 쌍둥이가 태어난 뒤에는 두 아이 중 한 아이를 유독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크루는 꽤 조용했지만, 하퍼는 끊임없이 울어댔다. 마치 내가 나쁜 엄마라고 말하면서 나를 벌주려는 것 같았다.”

베러티가 하퍼를 처음 죽이려 한 것은 쌍둥이가 갓난아이였을 때다. 그는 하퍼의 얼굴에 베개를 눌러 질식시키려 한다. 영아 돌연사로 위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제러미가 잠에서 깨어 베러티를 발견하면서 시도는 중단된다. 다만 제러미는 아내가 무슨 일을 하려 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두 번째 시도는 몇 년 뒤에 벌어진다. 하퍼와 크루가 식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보스턴으로 떠나려던 제러미는 베러티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카누를 타러 가보라고 권한다. 베러티는 실제로 아이들을 데리고 호수로 나간다. 하퍼는 앞쪽에, 크루는 가운데에 앉는다. 베러티는 원고에 이렇게 적는다. “우리 중 누구도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 나는 몸무게를 한쪽으로 실었고, 배는 뒤집혔다.”

그는 크루는 구하지만, 하퍼는 물에 빠져 죽도록 내버려둔다. 하지만 나중에 발견되는 편지에서 베러티는 자신의 원고가 진실한 고백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평범한 엄마라면 느낄 법한 원망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하지 않은 일을 저지른 것처럼 과장해 썼다는 것이다.

한편, 원작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영화에서 가족의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후버의 소설에는 자녀가 셋 등장하고, 그중 둘이 죽는다. 반면 영화에서는 하퍼와 크루가 쌍둥이로 설정되고,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아이의 죽음만 남는다. 이는 쇼월터가 연출을 맡기 전부터 결정된 것이었다. 그는 각색 과정에서 이야기를 “간결하게 만들었고”, 영화가 “한 아이와 그 아이를 둘러싼 미스터리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고 말한다.

서서히 베러티가 되어가는 로웬

시간이 지날수록 베러티의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로웬. 사진=소니 픽쳐스

『그렇게 하라』를 읽을수록 로웬은 베러티의 삶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틈틈이 노트북으로 베러티가 ‘핫 원스’에 출연한 영상도 다시 본다. 제러미는 뒤늦게나마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며 로웬을 저녁 식사에 데려간다. 그러면서 특별한 날에 입을 만한 옷을 아내의 옷장에서 골라보라고 한다. 로웬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날 베러티가 입었던 것과 비슷한 빨간 드레스를 고른다.

버몬트 시골에서 가장 훌륭한 바이에른식 식당이라고 자랑하는 곳에서 와인과 비너 슈니첼을 즐기던 중, 제러미는 앞서 로웬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베러티는 로웬의 책을 읽지 않았다. 읽은 사람은 제러미였다. “사실 로웬, 당신이 쓰는 글은 내게 중요하거든요.” 제러미가 말한다.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입을 맞춘다. 그때 로웬은 제러미 뒤편의 어두운 복도에 베러티가 서 있는 듯한 모습을 본다. 제러미는 아내가 걸을 수 없다고 말한다. 로웬은 섬뜩한 광경을 목격하고도 그날 밤 제러미와 연인이 된다. 이후 영화에서 가장 몽환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장면이 펼쳐진다. 베러티는 잠든 로웬의 꿈속까지 따라온다. 제러미와 입을 맞추던 로웬은 문득 몸을 떼고, 자신 아래에 베러티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입술에는 피가 묻어 있다.

빨간 드레스와 남편, 그리고 꿈. 쇼월터는 이 장면들을 통해 자신이 어떤 영화적 전통을 이어가려는지 드러낸다. 그는 히치콕의 영화에서 인물의 분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언급하며, <현기증>과 <이브의 모든 것>, 브라이언 드 팔마의 <침실의 표적>을 참고 작품으로 꼽는다. 모두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차지하려는 욕망과 맞닿아 있는 작품들이다. “로웬은 베러티의 성공을 탐내요. 두 사람의 관계도 탐내고, 베러티가 가진 모든 것을 원하죠.” 쇼월터는 말한다. “그는 서서히 베러티가 되어가는 셈이에요.”

집에 숨겨진 마지막 비밀은 크루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엄마에 관해 물어보면 누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크루가 로웬에게 말한다. 로웬이 엄마가 말을 못 하는 척하는 거냐고 묻자, 크루는 칼을 세게 문다. 로웬은 베러티를 찾아가 말한다. “당신은 완벽한 삶을 살고 있어요. 누구나 바랄 만한 걸 전부 가졌죠. 내가 바라는 것까지도요. 그런데 당신은 그걸 누릴 자격이 없어요. 그러니 내가 전부 빼앗을 거예요. 집도, 경력도, 남편도.” 이 장면은 로웬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에 가장 가깝다. 하지만 베러티가 그 말을 아무 의미 없는 소리로 흘려듣는지, 아니면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베러티의 원고는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 즉, 자동차 사고로 끝난다. 마지막 장에서는 하퍼가 죽은 뒤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일과 슬픔에 잠겨 지내는 제러미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는 남편의 슬픔마저 성가시게 여긴다. “하퍼가 죽고 나니 제러미는 정말 지긋지긋한 사람이 됐다. 내가 하퍼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어차피 그렇게 된 거라면, 그냥 그렇게 두면 된다. 차를 몰고 나무에 들이받기나 해야겠다.” 로웬은 이 대목을 읽으며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가 나무에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고, 그 뒤로 줄곧 말하지 않은 채 위층에 머무는 여자가 있다.

호수에서 맞이한 죽음

모든 것이 뒤집히는 순간은 폭풍우가 치던 밤에 찾아온다. 제러미는 로웬이 베러티의 거짓말을 밝혀내려고 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추궁에 로웬은 더는 해명하지 않고 오히려 제러미를 몰아붙인다. “당신이 아는 아내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에요.” 로웬은 그렇게 말하며 원고를 출력한 종이를 건넨다. 제러미는 원고를 다 읽고 나서야 아내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굳은 얼굴로 변한다. 그는 곧장 베러티의 방으로 달려간다.

“당신이 우리 딸을 죽였어, 베러티!” 제러미가 소리친다. 그 순간, 베러티는 자신의 상태를 둘러싼 의문을 단번에 끝내 버린다. 몸을 움직인 것이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척해 왔다. 그동안 자신만의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제러미가 베러티의 목을 조르려 하자, 로웬이 그를 막는다. 베러티를 살리려는 게 아니라 제러미를 구하기 위함이다. “크루를 생각해요. 이렇게 하면 아이에게 엄마도 아빠도 남지 않아요.”

로웬은 베러티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제러미에게 코와 입을 막아 질식시키라고 말한다. 죽음을 사고처럼 보이게 하고 흔적도 남기지 말라는 것이다. 제러미는 침대에 누운 아내의 코와 입을 막아 질식시킨다. 로웬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쇼월터의 카메라는 살인을 부추긴 로웬보다도 더 가까이 다가가, 관객이 죽음의 현장에 더 가까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두 사람은 베러티의 시신을 물가로 옮긴 뒤 호수에 떠내려 보낸다. 시신을 발견한 사람들이 믿게 될 이야기까지 꾸며낸다. 오랫동안 의식을 잃었던 베러티가 깨어나 걸어 나갔고, 결국 딸의 목숨을 앗아간 바로 그 호수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끝났다.” 로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이킬 수 없었다. 우리는 베러티에게서 벗어났다.”

쇼월터 감독이 보기에 로웬의 제안은 이야기의 흐름을 뒤집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는 그때까지 관객이 로웬의 시선을 따라 유령의 집에 들어가, 현실을 뛰어넘을 만큼 강렬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살인을 사고로 위장하자고 제안하는 순간, 관객은 자신이 딛고 있던 바닥이 갑자기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감독은 이것이 이야기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본다. “이제야 확실한 기반 위에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죠.”

베러티가 호수에서 죽는 장면은 영화에서 새롭게 더해진 설정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소설에서 두 사람은 베러티가 토사물에 질식해 죽은 것처럼 꾸민다. 반면 영화에서는 베러티의 죽음으로 하퍼의 죽음을 되풀이한다. 또 한 번의 익사, 또 한 번 사고로 위장된 죽음이다. 로웬이 범행을 감추는 데 직접 가담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제 그는 살인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을 은폐하는 데까지 손을 보탠다.

경찰이 찾아왔을 때 로웬은 글을 쓸 때처럼 능숙하게 거짓말을 한다. 경찰관 한 명이 베러티의 최신작인 『노블 버추스』 시리즈를 함께 작업하고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도 있죠.” 로웬이 답한다. 그 경찰관이 베러티의 팬이라고 털어놓자, 그는 덧붙인다. “이번 작품이 지금까지 나온 것 중 최고일 거예요.”

7개월 뒤, 로웬은 임신한 몸으로 크로퍼드 부부의 집을 떠날 준비를 한다. 이삿짐 트럭에는 짐이 실리고, 로웬과 제러미, 크루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사우스포트로 이사할 예정이다. 로웬은 자신이 쓴 베러티 시리즈의 최신작 『딜리전스』의 출간 전 원고를 제러미에게 건넨다. 한편, 크루는 아무에게도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던 비밀 장소에서 자신의 그림들을 꺼내 온다. 로웬은 그 장소를 찾아내고, 느슨하게 들리는 마룻바닥 판자 아래에서 손으로 쓴 종이 몇 장을 발견한다.

베러티가 자동차 사고를 당한 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척하며 지내던 몇 달 동안 제러미에게 쓴 편지다. 베러티는 편지에서 『그렇게 하라』가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 글이 아니라 글쓰기 연습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편지에 따르면, 베러티는 편집자 어맨다와 저녁 식사를 하던 중 한 가지 글쓰기 방법을 배웠다. 어맨다는 이를 ‘적대적 일기 쓰기’라고 불렀다. 자신의 삶을 일기에 적되, 속으로 생각한 것과 정반대되는 생각을 품은 사람처럼, 자신의 본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물처럼 써보라는 것이다.

악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베러티에게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가 “현실적이면서도 무서운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비결이자, 책이 잘 팔린 이유이기도 했다. 하퍼가 죽은 뒤 마음이 “몹시 어두운 곳”에 빠지자, 베러티는 이 방법에 더 의지했다. 원고를 “더 충격적이고, 더 불편하게”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제러미가 컴퓨터에 열려 있던 파일을 우연히 발견했고, 원고 속 악인을 아내의 실제 모습으로 착각했다.

“그건 그저 글쓰기 연습이었어요. 진짜가 아니었죠.” 베러티는 편지에 쓴다. “그토록 오랫동안 부부로 살아놓고, 어떻게 단 한 순간이라도 그 원고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죠? 정말이지, 제러미. 당신은 나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나요?” 이어 베러티는 제러미가 원고를 읽은 뒤 어떤 일을 벌였는지 설명한다. 그가 글을 읽을 때마다 두 사람의 가족에 관한 기억이 “새로운 문장이 쓰일 때마다 지워졌다”는 것이다. 베러티는 당시 제러미의 얼굴을 떠올린다. “완전한 절망, 그 자체였어요.” 그 뒤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어지러웠고, 모든 것이 흐릿해졌어요. 그리고 당신이 그 글을 진짜라고 믿는다는 걸 깨달았죠.”

베러티의 주장에 따르면, 제러미는 그에게 약물을 먹였다. 그런 다음 그를 차에 태워 운전석에 앉히고, 나무를 향해 차를 몰아 충돌하게 했다. 베러티가 원고에 쓴 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처럼 사고를 꾸미려 한 것이다. 베러티는 차가 충돌하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고 말한다. “앞 유리 너머로 보이는 건 온통 나무뿐이었어요. 그 순간 당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죠. 나를 죽이고, 내 죽음을 사고처럼 보이게 하려는 거였어요. 나는 내가 쓴 원고의 마지막 두 문장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죽음을 적어 넣었던 거예요.”

그 두 문장은 로웬이 원고에서 읽었던 마지막 문장이자, 원고의 제목과도 연결되는 구절이다. 이 편지가 사실이라면, 제러미는 아내가 쓴 결말을 그대로 이용해 그의 죽음을 꾸민 셈이다. 베러티가 편지에서 쓴 “죽음을 사고처럼 보이게 하려 했다”는 말은 조금 전 침실 장면에서 로웬이 했던 말과 똑같다. 편지는 베러티가 몇 달 동안 침묵했던 이유도 설명해 준다. “불행하게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어요. 그래서 계획을 세웠죠.”

베러티는 원고가 글쓰기 연습에 불과했다고 해명해 봐야 소용없었다고 쓴다. 게다가 제러미가 자신이 회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경찰에 넘기거나, 아예 일을 끝내버릴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척하며 크루를 데리고 달아날 기회를 기다렸다. 편지에 따르면 베러티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크루뿐이었다. 그렇다면 로웬이 원고를 출력해 제러미에게 건넸을 때, 그는 이미 그 원고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충격을 받은 듯 보였던 모습도, 베러티가 침묵을 지켰던 것처럼 연기였을 수 있다.

이 편지는 후버의 소설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재이자, 작품의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되묻게 하는 장치다. 후버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바로 제가 이 책을 쓴 목적이자, 제목을 정한 이유이기도 해요.” 영어로 ‘Verity’는 ‘진실’을 뜻한다. 후버는 처음부터 결말을 계획해 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편지라는 발상이 떠오르자 “너무 신이 나서 그 장면을 쓰는 동안 아마 사흘 내내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편지를 읽은 로웬은 제러미에게 그 내용을 보여주지 않기로 한다. 후버는 그의 침묵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본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로웬이 편지의 내용을 온전히 믿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라고 후버는 생각한다. 다만 제러미의 아이를 밴 채 앞으로 살아가려면, 진실이 무엇이든 두려움이 남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덧붙인다.

그럼에도 작가는 로웬이 스스로 위안으로 삼는 한 가지 사실을 짚는다. 제러미는 아이들을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죠.” 후버는 말을 잇는다. “자기 아이들을 위해 아내까지 죽일 사람이라니, 물론 그렇다고 올해의 아버지상을 받을 만한 건 아니지만요.”

원고를 믿을 것인가, 편지를 믿을 것인가

사실과 허구를 가려내려는 로웬의 모습. 사진=소니 픽쳐스

후버의 독자들은 지난 10년 가까이 어떤 글을 믿어야 할지를 두고 두 편으로 나뉘어 왔다. ‘원고파’는 베러티가 쓴 원고를 진실한 고백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편지파’는 베러티가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희생자가 됐다고 본다. 영화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끝난다. 과연 어느 쪽이 진짜 베러티의 모습일까?

후버는 과거에는 원고파에 가까웠다.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뒤 생각이 복잡해졌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도 어느 쪽이 진실인지 계속 헷갈리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바라던 것보다 더 큰 혼란을 느꼈다. “최근에 주석을 달기 위해 책을 다시 읽어야 했는데, 처음 글을 썼을 때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연민이 베러티에게 생겼어요. 영화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후버는 쇼월터가 “여러 관점이 모두 진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줬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다시 접할 때마다 생각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책을 처음 썼을 때는 한 가지 방식으로 생각했어요. 영화를 봤을 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그 모든 경험을 한 뒤 다시 책을 읽으니, 또다시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쇼월터 역시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최종 결말을 정하기까지 여러 가지 결말을 시도했다. 그중 상당수는 로웬이 모든 일을 훨씬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영화가 끝나는 방식이었다. 베러티의 분신처럼 변해가는 로웬의 이야기도 완결되고, 그가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불사조 같은 존재로 완전히 거듭나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쇼월터는 최종적으로 선택한 결말을 지지한다. “결국 우리는 그 정도까지 나아가지는 않고, 아주 모호한 상태로 남겨두기로 했어요.”

마지막 말은 베러티에게로

소설은 로웬이 어떤 베러티를 믿어야 할지 고민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도 그에게 같은 순간을 허락한다. 집 안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시작된 로웬의 내레이션은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베러티의 원고, 베러티의 편지, 베러티의 남편. 무엇을 믿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는 말한다.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건 베러티가 진실을 교묘하게 다루는 데 능했다는 사실이에요.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예요. 베러티는 어떤 진실을 감추고 있었을까요?”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순간, 로웬에게서 마지막 말을 빼앗아 간다. 제러미와 로웬, 크루를 태운 차가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길을 따라 멀어지자, 쇼월터는 다시 ‘핫 원스’ 인터뷰 장면으로 돌아간다. 크로퍼드 부부의 집에서 로웬이 노트북으로 보았던 바로 그 영상이다. 이번에는 화면 속 화면이라는 틀도 사라진다.

에번스는 베러티에게 소설 시리즈에 담긴 아홉 가지 도덕적 주제 가운데 어떤 주제를 비틀어보는 일이 가장 재미있었느냐고 묻는다. “진실이요.” 베러티가 답한다. “사람들이 어디까지 믿게 만들 수 있는지, 관객이 얼마나 확신하게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어쩌면 그렇게 확신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죠.”

베러티는 자신의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방금 끝난 영화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영화는 상영 내내 관객이 베러티의 정체를 확신하도록 이끌다가, 모든 것을 뒤집을 수도 있는 편지를 내민다. 그는 영화 속 인물들을 넘어 극장에 앉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 원고 속에서 로웬을 넘어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것처럼 말이다. 로웬이 과제로 읽었던 인터뷰 영상은 마지막에 베러티가 관객에게 건네는 최후의 말이 된다.

쇼월터에게 이 장면은 반전이라기보다 관객에게 확실한 답을 주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여러분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었는지 확신한 채 이곳을 나가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말한다. “베러티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 거죠.”

후버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베러티가 두 가지 모습이 아니라, 사실상 세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로웬이 원고를 읽으며 상상한 베러티, 침대에 누워 지내는 베러티, 그리고 인터뷰에 등장하는 대중 앞의 베러티다. “영화를 보고 나면 어느 모습이 진짜 베러티인지 생각하게 되죠.” 후버는 말한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관객이 확신하지 못한 채 극장을 나서게 되니까요.”

로웬은 영화 초반부터 탐내던 것을 거의 모두 손에 넣은 채 크로퍼드 부부의 집을 떠난다. 베러티의 남편과 살아남은 아이, 태어날 아기, 그리고 베러티의 이름과 연결되며 한층 주목받게 된 작가로서의 경력까지. 하지만 차에 나란히 앉은 남자가 딸을 잃은 슬픔에 잠긴 아버지인지, 베러티의 편지에 등장하는 악인인지는 끝내 알 수 없다. 두 사람이 호수로 옮긴 여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마찬가지다. 로웬이 끝내 놓고 떠나야 하는 것은 확신이다.

그리고 의문을 품은 채 남겨지는 사람은 그만이 아닐 것이다. 2018년 소설이 출간된 뒤 독자들은 베러티의 진실을 두고 논쟁해 왔다. 이제 영화를 보러 온 관객 누구나 그 논쟁에 뛰어들 수 있다. 앞으로 며칠, 몇 주 동안 극장 로비나 단체 대화방에서는 누군가는 원고가 진실이었다고 주장하고, 다른 누군가는 편지가 진실이라고 맞설 것이다. 두 글을 모두 쓴 베러티는 그 답을 호수 속으로 가져갔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의심이고, 죽은 사람에게 남는 것은 진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떠난 사람은 답을 품은 채 침묵한다.

글 JP Mangalindan

한국어판 편집 조예은 기자 sophie@tim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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