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도 어른이 되려 한다, 다만 성장통이 부산하다
신작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는 전례 없이 불행하다. 분노한다. 그럼에도 친절한 이웃이려고 한다. 어른이 되려는 그와 마블 앞에 과잉 특수효과는 오히려 방해물이다.
마블도 어른이 되려 한다, 다만 성장통이 부산하다
신작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는 전례 없이 불행하다. 분노한다. 그럼에도 친절한 이웃이려고 한다. 어른이 되려는 그와 마블 앞에 과잉 특수효과는 오히려 방해물이다.

문상덕 에디터

2021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끝에서, 톰 홀랜드가 연기한 피터 파커는 정처 없이 떠도는 청년이었다. 곁에서 함께 버텨준 절친 네드(제이컵 배털런)와 연인 MJ(젠데이아)는 마법 주문으로 기억을 잃는다. 명목상으론, 영원히.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는 그린 고블린(윌럼 더포)이 던진 화염구에 목숨을 잃었다. 피터는 고립을 원한으로 굳히기엔 너무 밝은 청년이고, 고향 뉴욕의 범죄와 싸우는 일에 여전히 헌신적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때로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의 마음이 부서지더라도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원성(duality)을 주제로 한 논문 몇 편은 족히 나올 만한 대사다.
연구할만한 주제는 더 있다.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 스파이더맨조차도”. 이 말을 주제로 2천 단어는 뽑아낼 수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걸로 다섯 장을 못 채운다면, 그건 노력을 안 한 것이다.
WHY WE WROTE THIS
한국은 한때 ‘마블민국’이었다. 2018년 ‘인피니티 워’를 1121만 명이 봤다. 하지만 지난해 개봉한 ‘썬더볼츠’ 관객 수는 91만 명으로 내려앉았다. 왜 예전만큼 한국 관객들은 마블에 설레지 않을까.
데스틴 대니얼 크리턴이 연출하고 크리스 매케나와 에릭 소머스가 쓴 ‘브랜드 뉴 데이’는 상투적 경구와 복잡한 줄거리, 뒤섞인 감정들로 가득 차 있어서 핵심 스토리는 물론이고 주인공의 고뇌에 집중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충분히 즐거운 여름 오락영화가 될 수 있었다. 어지럽게 등장하는 기계들만 없었다면.
그 기계 장치들은 이제 눈부시기보다 관행으로 느껴진다. 정교하지만 가짜 티가 나는 특수효과도 그렇다. 그것들이 지금의 마블 영화를 설명한다. 그것들 없이는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없는 듯하다.
‘브랜드 뉴 데이’의 줄거리를 설명하려면 깜짝 등장 캐릭터를 발설하지 않을 수 없으니, 대략만 옮긴다. 슬픔에 잠긴 피터 파커는 4년이라는 긴 시간을 스파이더맨 노릇으로 견뎌낸다. 그 사이 MJ와 네드는 MIT에서 열심히 공부한다. 셋이 함께 다니기로 했던 그 학교다. 졸업 후 두 사람은 뉴욕으로 돌아온다. 피터는 애틋하게 그들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 말을 걸지만, 돌아오는 것은 텅 빈 눈빛이다. 그는 메이 숙모의 묘에 꼬박꼬박 새 꽃을 놓는다. 나머지 일상은 자잘한 범죄를 막는 데 쓰인다. 그러던 어느 날, 기묘한 사건들이 도시를 흔든다. 사람의 몸과 정신을 장악하는 정체불명의 힘이 난동을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스파이더맨의 거미줄 발사 능력도 어긋나기 시작한다. 척척박사 AI 조수 E.V.I.E.는 “거미류 호르몬”이 급증한 탓이며, 그래서 그가 더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요컨대 그는 화가 나 있고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으며, 그 분노를 다룰 방법을 모른다.
이따금 브루스 배너/헐크(마크 러펄로), 프랭크 캐슬/퍼니셔(존 번설), 맥 가건/스콜피온(마이클 만도)이 나타나 판을 뒤집는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중량급 CGI 전투는 의무적이고 심심하다. 그나마 플로렌스 퓨의 옐레나/블랙 위도우가 러시아식 목욕탕 물속에서 좌중을 휘어잡으며 잠깐 등장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은 동시에 슬프고 분노하며 좌절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것은 십대의 감정만이 아니라 성인의 감정이며, ‘브랜드 뉴 데이’가 마블 상품을 좀 더 정서적으로 성숙한 영역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쁜 시도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마블의 핵심 관객조차, 거대한 특수효과 장면 사이에 세계 파멸을 예고하는 무감각한 선언을 끼워 넣던 낡은 공식을 이미 졸업한 듯하니 말이다. 그러나 2021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연출하기도 했던 크리턴이 옳은 길에 서 있음에도, 이 영화의 속도는 하나의 감정이나 사건이 가라앉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상실, 애도, 갈망, 분노, 당혹. ‘브랜드 뉴 데이’에서 감정은 진지하게 다뤄지지만, 동시에 차례로 처리해야 할 과제처럼 소비된다.
그럼에도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더 나은 마블 영화를 만들려는 시도가 가능하다는 증거다. 결함이 있어도 이 영화는 대다수 마블 영화보다 낫다. 그 공의 일부는 홀랜드에게 있다. 신축성 있는 슈트를 걸쳤든 아니든, 캐릭터의 감정적 고투를 딱 필요한 만큼 진지하게 받아 안는 영민하고 섬세한 배우다. MJ 역의 젠데이아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것 이상을 할 수 있게 허락받은 점도 나쁘지 않다. ‘오디세이’와 ‘듄’ 시리즈에서 그녀의 불꽃은 ‘진지한 연기’라는 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졌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녀는 대사에 망설임의 박자가 있을 때 가장 빛난다. 웅장함과 고결함을 요구하는 역할은 그녀의 기운을 짓누를 뿐이다. ‘브랜드 뉴 데이’는 최소한, 우리를 극장으로 계속 불러들이는 것은 영혼을 갉아먹는 과잉 특수효과가 아니라 배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얼굴로부터 시선을 빼앗는 방해물이다. 어쩌면 우리가 더는 감당할 수 없는 방해물.
글 Stephanie Zacharek, Film Critic
편집 문상덕 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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