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 속의 시인이란, <나의 사적인 예술가>
한때 시인이었던 우편물 분류 직원이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 잊고 지낸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본다. 윌렘 대포와 그레타 리가 빚어낸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과 변해 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에 관해 묻는다.
평범한 삶 속의 시인이란, <나의 사적인 예술가>
한때 시인이었던 우편물 분류 직원이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 잊고 지낸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본다. 윌렘 대포와 그레타 리가 빚어낸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과 변해 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에 관해 묻는다.

조예은 에디터

한 사람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모습이 담길 수 있을까? 아주 오래 산다고 가정한다면, 우리 대부분은 직업을 바꾸고, 연인을 바꾸고, 아이를 낳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 몇 번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고 느낄 때도, 여전히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켄트 존스 감독의 소박하면서도 유머가 있는 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바로 이런 질문을 다룬다. 윌렘 대포가 연기하는 에드 색스버거는 뉴욕에서 우편물을 분류하는 70대 남성이다. 그는 한때 시인이었고, 어쩌면 지금도 시인일지 모르는 사람이다. 1979년 시집 한 권을 냈고, 나름대로 좋은 평가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꽤 대단한 일이지만, 지금 그는 그저 한 명의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낮에는 편지를 분류하고, 저녁이면 동네 술집에 들러 오랜 친구들과 어울린다. 친구들도 대중교통공사(MTA) 직원처럼 각자 생업에 종사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색스버거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늘 술집에서 마주치는 친구일 뿐이다.
그렇다고 색스버거가 자기 삶을 서글프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에게는 익숙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건물 주변을 서성이는 젊은 남자를 발견한다. 한적하지만 쓸쓸하지는 않은 이곳에서, 깡마른 몸의 그는 어딘가 긴장한 듯한 인상이지만, 옷차림만은 말끔하다. 색스버거는 먼저 다가가 친근하게 말을 건다. 에드먼드 도노번이 연기한 이 청년은 반듯하고 싹싹한 모습으로 자신을 윌슨 마이어스라고 소개한다. 그러더니 색스버거가 낸 시집 한 권을 두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기 시작한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채링 크로스 로드에 있는 포일스 서점”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굳이 어디서 책을 찾았는지까지 밝힐 필요는 없었겠지만, 이 한마디만으로도 마이어스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시인과 지식인들이 모이는 ‘예술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이 동네의 비밀스러운 술집에 가끔 모인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모임 사람들 모두 색스버거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며, 언젠가 함께 자리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다. 이 젊은이들이 자기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었던 색스버거는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거절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모임 사람들은 자신을 ‘열정 협회(The Enthusiasm Society)’라고 부르고, 서로를 성으로만 부른다. 인터넷 인플루언서는 질색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 20대에서 30대 초반인 이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살아가면서도 형편은 넉넉해 보인다. 일을 하는 것은 속물적이라고 여기는 듯하고, 다행히 실제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다. 색스버거는 풋내기들의 허세를 재미있어한다. 이들이 자신과 어울리면 어떻게든 자기들도 시인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궁금해져 결국 묻는다. “그 모임에 여자는 없나요?” 이들은 한 명 있다고 답하지만, 정작 그가 마주하게 될 인물은 예상 밖이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글로리아(그레타 리)는 마치 다른 시대에서 걸어 나온 듯 매혹적이다. 그의 말은 숨결처럼 가볍게 흘러나오다가도 공작의 깃털처럼 화려하게 펼쳐진다. 빙글빙글 휘날리는 망토를 걸치고, 장난스럽고 엉뚱한 클로슈 모자를 즐겨 쓴다. 글로리아는 색스버거를 자신의 작은 카바레 공연에 초대한다. 무대에 오른 그는 ‘수라바야 조니(Surabaya Johnny)’를 관능적인 매력이 넘치는 몸짓으로 노래한다. 색스버거는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본다. 지나치게 연극적인 모습은 어쩐지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눈길을 거둘 수도 없다. 그렇게 그에게 푹 빠져버린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글쓰기를 멈춘 자신도 여전히 시인일 수 있을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의 사적인 예술가>의 중심을 이루는 질문이다. 이 영화는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1895년에 쓴 뒤 오랫동안 잊혔다가 최근에야 출간된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시인을 시인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글을 쓰는 행위일까, 아니면 영혼 깊숙이 자리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어떤 성질일까?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존스 감독의 두 번째 극영화다. 첫 작품은 메리 케이 플레이스가 주연한 2018년 작 <다이앤>으로, 잔잔하고 따뜻한 정서를 담은 드라마였다. 이번 영화는 예술가로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대가를 감수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지만, 이야기를 무겁게만 끌고 가지 않고 가벼운 웃음도 잃지 않는다. 처음에는 뻔한 유형으로 보였던 인물들도 이야기가 흐를수록 각자의 사정과 속마음을 드러낸다. 도너번이 연기한 마이어스는 아버지의 돈을 믿고 예술가 행세를 하는 철없는 부잣집 아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제 것인 양 탐내는 그의 모습에는 어딘가 안쓰러운 구석도 있다. 정작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포는 지금의 삶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온 색스버거를 인상 깊게 연기한다. 그런 그도 어쩌면 자기 삶이 아직 끝난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린다. 한 장면에서 색스버거는 술집 친구들에게 예전에 쓴 시를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를 그저 술자리에서 어울리는 친구로만 여기고, 그의 시를 듣고 웃는다. 가슴 아픈 장면이다. 영화는 색스버거가 더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슬쩍 드러낸다. 왜 술을 끊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실망을 거듭하며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그의 얼굴에 드러나며, 한 가지 잔인한 깨달음이 스친다. 자신이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조차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색스버거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나의 사적인 예술가>를 이해하는 열쇠는 어쩌면 그레타 리의 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글로리아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누구보다 능숙하게 예술가 행세를 하는 인물이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는 듯 과장되고 부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에서는 영화 <선셋 대로>의 글로리아 스완슨이 떠오른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열정 협회 회원 가운데 유일하게 위험을 감수해 본 사람이며, 진정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레타 리는 글로리아의 화려하고 과장된 겉모습과 그 이면에 숨은 여린 마음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모임의 다른 남자들도 글로리아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그의 본모습을 알아보는 사람은 색스버거뿐이다. 색스버거 역시 글로리아에게 깊이 빠져들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누구도 과거의 자신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쓰라리면서도 아름다운 사실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가는 존재라면, 어떻게 예전과 똑같을 수 있을까? 새로운 시 한 편을 쓰기조차 어려워진 색스버거는 여전히 시인일까? 색스버거는 글로리아에게서 새로운 형태의 시를 발견한다. 그 시는 종이 위가 아니라 바람결에 쓰였지만, 분명 존재하는 시다.
글 Stephanie Zacharek
한국어판 편집 조예은 기자 sophie@timekorea.co.kr
이 기사의 원본보기: Willem Dafoe Shines as a Postal Worker and Poet in the Luminous Late F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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