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은 어떻게 카슈미르를 진압했나

생활고에서 시작된 시위가 대표성과 자치 요구로 번지자 파키스탄 정부는 대테러법을 앞세워 강경 대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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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은 어떻게 카슈미르를 진압했나
2026년 7월 31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최대 도시 무자파라바드에서 열린 시위에서 시위대가 도로를 차단하기 위해 불을 지르고 있다.사진=REUTERS/연합뉴스

아일랜드 시인들과 미국 대통령들은 오랫동안 카슈미르를 이야기해 왔다. 아일랜드 시인 토머스 무어는 1817년 서사시 ‘랄라 루크(Lalla Rookh)’에서 카슈미르를 낭만과 신비가 깃든 ‘동방의 낙원’으로 그렸다. 반면 미국 대통령들에게 카슈미르는 핵보유국 인도와 파키스탄이 맞선 세계적 화약고였다. 카슈미르는 그 아름다움과 위험으로 기억돼 왔다.

카슈미르 문제는 1947년 8월 영국령 인도가 분할되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독립한 이후 두 나라의 운명을 규정해 왔다. 양국은 카슈미르 전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고, 현재도 각각 영토 일부를 통치하고 있다. 카슈미르를 둘러싼 관심은 대체로 인도·파키스탄 간 영유권 분쟁이나 인도령 카슈미르의 폭력과 인권 문제에 쏠렸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는 국제사회의 시야에서 대체로 비켜나 있었다. 지난 6월 이 지역에서 시위가 시작된 뒤 보안군의 진압으로 80명 이상이 숨졌다. 이곳에서 번지는 움직임은 영토 주권을 다투는 전통적 카슈미르 분쟁과는 결이 다르다. 주민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전기요금, 식료품 물가 상승, 일자리 부족 등 생활고와 정치적 배제에 항의하고 있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은 파키스탄 전역을 덮친 경제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물가 상승과 재정난, 전력 부족,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반복은 정부로 하여금 보조금을 축소하고 공공요금을 올리게 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이를 불가피한 재정정책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좌우하는 결정에서 배제돼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WHY WE WROTE THIS

생활고는 언제나 정치의 문제다. 전기요금을 정하는 권한이 주민이 뽑은 정부에 없다면, 요금 인하는 시혜에 그친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시위가 그 지점을 겨눈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 국가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는 주요 수력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이다. 주민들은 이 지역이 생산하는 전력에 비해 전기요금 부담이 과도하다며 지역 요금이 발전 기여도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기요금과 생필품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는 2022년 이후 반복돼 왔다.

지방정부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새로운 형태의 정치 조직이 등장했다. 상인·변호사·학생·지역사회 지도자들이 참여한 시민위원회가 각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2023년 9월 지역 전체의 행동을 조율하는 공동인민행동위원회(JAAC)로 통합됐다.

JAAC는 밀가루와 전기요금 인하, 장관·관료 특권 축소, 실질적 권한을 가진 선출직 지방정부를 요구했다. 파키스탄무슬림리그-나와즈(PML-N), 파키스탄인민당(PPP), 파키스탄정의운동(PTI) 등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두며 초당파 조직을 표방했다.

운동의 힘은 생활 문제와 통치 문제를 매개로 정치적 연대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당국은 JAAC 관계자들을 형사 혐의로 체포하고 집회를 제한했지만, 운동은 가라앉지 않았다. 교통 파업과 지역 시위, 철시가 이어졌다. 소도시와 농촌 마을에 퍼진 지부 조직은 필요할 때마다 지역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풀뿌리 기반이 됐다.

2024년 5월 정부가 요구사항 검토를 약속하고도 실질적 조치를 미루자 JAAC는 장거리 행진과 철시, 파업을 선언했다.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카슈미르 최대 도시 무자파라바드를 향해 모였다. 행진을 차단하려던 당국의 시도는 오히려 시위 확산으로 이어졌다. 체포와 도로 봉쇄, 인터넷·휴대전화 통신 제한에도 무자파라바드의 시위 규모는 커졌다.

충돌 과정에서 시위대 3명과 경찰관 1명 등 최소 4명이 사망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결국 보조 전기요금과 밀 가격 인하를 포함한 230억 루피, 약 8290만 달러 규모의 지원책을 내놨다. 그러나 강경 진압은 전기·밀가루 가격 문제를 넘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주민이 실질적인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로 번졌다.

시민인가, 통치 대상인가

2024년 5월의 타협은 집단행동이 이슬라마바드(파키스탄 수도)로 하여금 당장의 경제적 요구를 수용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 즉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는지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 지역에는 대통령과 정부, 입법의회, 법원이 있다. 그러나 행정·안보·외교의 핵심 권한은 여전히 파키스탄 중앙정부가 쥐고 있다. 이슬라마바드가 수석서기와 경찰청장 등 주요 고위 공무원을 임명한다. 지역 선출정부는 유권자에게 책임을 지지만, 정작 주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서는 통제권이 제한적이다.

파키스탄 총리가 의장을 맡는 카슈미르위원회는 한때 입법·재정·개발계획에 대한 중앙정부 통제의 핵심 기구였다. 2018년 헌법 개정으로 권한 상당수가 축소돼 자문기구에 가까워졌지만, 실질적 권한은 여전히 연방정부에 남아 있다.

파키스탄은 국제적 지위가 미결인 분쟁지역인 만큼 예외적 통치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이는 책임과 권한이 분리된 통치로 받아들여진다. 선출직 정치인은 주민에게 답해야 하지만, 주민의 일상을 바꾸는 결정은 이슬라마바드에서 내려진다.

선거제도도 논란거리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입법부는 53석이다. 여성·종교학자·기술관료·해외 거주자를 위한 8석을 제외하면 45석이 선거 대상이다. 이 중 지역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의석은 33석이다. 나머지 12석은 파키스탄 내 다른 지역에 사는 인도령 카슈미르 출신 난민들에게 배정된다. 1960년대 도입돼 1970년대 제도화된 이 장치가 지역 유권자의 정치적 비중을 낮추고, 이슬라마바드 집권당이 의회 구성을 좌우하는 통로가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6월 이 지역 최고법원은 이 12석이 법률로 보호되며 이를 바꾸려면 정식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정부 조치의 법적 근거는 확인됐지만, 핵심 정치 문제는 남았다. 직접 선출되는 의석의 4분의 1 이상을 외부 유권자가 선출하는 의회가 지역 주민의 의사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상 군부 통치

파키스탄 군부의 영향력은 정치 공간을 더욱 좁힌다. 파키스탄은 민간정부가 존재하지만, 국가안보·외교·정치 경쟁의 경계는 군부가 사실상 설정하는 혼합 체제라는 평가를 받는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는 이런 구조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곳이다.

카슈미르 분쟁의 지정학적 중요성 탓에 독자적 정치활동의 여지는 제한적이다. 소장이 지휘하는 파키스탄 육군 제12보병사단은 산악 도시 머리에 본부를 두고 이 지역의 작전을 통제한다. 군부가 지역 안보에 직접 관여하는 구조다.

인권단체들은 파키스탄 군부와 정보기관이 이 지역의 정치활동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인권침해에 관여해 왔다고 지적해 왔다. JAAC와 인권운동가들은 조직적 정치활동과 비판적 발언이 쉽게 안보 위협으로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선출 제도는 형식만 남고, 불만을 표출하고 조직할 수 있는 범위는 안보기관이 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군사 통치는 올여름 시위가 재개되면서 드러났다. 파키스탄 당국은 지난 6월 JAAC를 대테러법에 따라 금지하고 공공질서 위협 단체로 규정했다. 이어 7월 27일부터 8월 10일까지 예정된 지역 의회 선거를 앞두고 시위대에 대한 광범위한 단속에 나섰다.

7월 말 JAAC 지도부는 수십 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보안군의 대응을 옹호했고, 한 파키스탄 정부 장관은 시위대를 ‘무장세력’이라고 불렀다. 민간인 사망자 수는 엇갈리지만, 정치적 함의는 분명하다. 경제적·민주적 요구를 내건 대체로 평화적 운동을 테러 집단으로 취급한 대응은, 이슬라마바드가 주민의 요구를 듣기보다 억누르려 한다는 인식을 키웠다.

JAAC는 투표 보이콧을 요구하며 난민 배정 의석 12석의 폐지를 핵심 요구로 내걸었다. 투표율은 1단계 약 46%, 2단계 약 50%로 집계됐다. 2016년과 2021년 선거의 약 60%보다 낮은 수준이다. 3단계 투표는 계속된 소요로 연기됐다.

잠정 개표 결과 파키스탄 집권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나와즈는 일반 의석 24석을 확보했다. 다만 연기된 선거구가 있어 선거는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 이는 투표만으로 카슈미르에서 실질적 권력을 누가 행사하느냐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JAAC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슬라마바드 집권당이 국가 자원과 군부의 뒷받침을 활용해 선거 환경과 의회 구성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비판론자들은 이런 개입이 투표일 이전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지역 군 지휘체계 아래 활동하는 파키스탄 군 통합정보국(ISI)과 군사정보국(MI) 요원들이 카슈미르의 파키스탄 편입을 지지하는 후보에게 압력과 후견을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난민 배정 12석은 헌법적 쟁점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충성스러운 후보를 의회에 진입시키는 수단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카슈미르가 요구하는 것

이 운동의 지속성은 단순한 경제 격차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감당할 수 있는 생활비, 통치의 정당성, 권력의 책임성에 관한 위기다. 특히 청년층의 JAAC 지지는 지정학적 명분을 내세워 정당화해 온 정치적 종속에 대한 인내가 한계에 이르렀단 걸 보여준다.

이 소요는 카슈미르를 둘러싼 파키스탄의 공식 논리에도 모순을 드러낸다. 이슬라마바드는 오랫동안 인도령 카슈미르 주민에 대한 인도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비판해 왔다. 이 비판 자체에는 근거가 있다.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주민에게 도덕적·법적 자결권이 있으며, 최종 지위는 유엔 관리 아래 주민투표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통치가 파키스탄이 인도를 비판할 때 제시하는 기준에 못 미친다면, 그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슬라마바드가 얻어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권력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일시적 경제 지원만으로 안정을 살 수는 없다. 소외감과 분노를 키우는 강경 진압도 해법이 아니다. 주민이 요구하는 것은 반응성 있고 신뢰할 만한 정부, 그리고 자신들이 중앙정부의 시혜에 기대는 통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권리를 지닌 시민이라는 인정이다.

카슈미르 주민들은 전기요금과 빵값 인하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존중과 대표성을 요구하고 있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마을과 계곡에서 커지는 이 요구는 힘만으로 잠재우기 어렵다.

글 Aqil Shah, 미 맥대니얼 칼리지 정치학 교수

편집 문상덕 에디터

이 기사의 원본보기: The Other Side of Paradise: How Pakistan Crushed Protests in Kashm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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